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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주님 공현 후 목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08 조회수1,966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8일 (목) - 주님 공현 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루가 4,14-22a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14)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 예수의 소문은 그곳 모든 지방에 두루 퍼졌다. 15) 예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17)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 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22) 사람들은 모두 예수를 칭찬하였고 그가 하시는 은총의 말씀에 탄복하였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루가의 시간과 공간 개념

 

  공관복음은 저마다 예수님의 공생활이 시작된 시점을 시사하고 있다.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은 예수님의 공생활이 세례자 요한의 투옥(마르 1,14; 마태 4,12)과 동시에 시작되어 그 첫 무대가 갈릴래아 지방 호숫가 근처인 것으로 보도한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예수님은 갈릴래아 나자렛에서 요르단강까지 먼길을 가셔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1,9) 다음 광야에서 40일간 공생활 준비시간을 가지셨다. 여기서 사탄의 유혹을 받으셨고(1,13), 요한이 투옥되자 곧바로 갈릴래아로 가셔서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다. 마태오는 마르코와 같은 과정을 더욱 상세하게 보도하고 있다. 예를 들어 마태오는 예수의 세례장면(3,13-17), 악마의 유혹장면(4,1-11) 등을 세세히 열거하고, 갈릴래아 지역에 속하는 즈불룬과 납달리 지방의 가파르나움이라는 장소를 구체적으로 지명하여 이곳에서 공적생활이 시작되었음을 알리고 있다.

 

  루가복음을 살펴보기 전에 요한복음을 먼저 보자. 요한복음은 그 시작부터가 공관복음과 전혀 다르다는 것은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요한복음은 프롤로그(서문)에서 우선 성자이신 말씀의 선재성과 말씀을 통한 세상창조와 말씀의 육화사건을 계시하고 있으며, 이 계시의 증언자로 세례자 요한을 등장시킨다.(1,1-18) 이어서 세례자 요한의 사명과 역할을 상당히 부각시키고 있다. 그런 다음 요한과 예수의 대비구조를 도입하여 요한 스스로가 자신은 아무 것도 아니고 예수가 전부임을 고백하게 한다.(1,19-28) 요한은 스스로 세상에 와 계신 예수를 하느님의 어린양, 메시아, 하느님의 아들로 증언하면서 자신의 제자 등 모든 것을 점진적으로 예수께 이양(移讓)시킨다.(1,29-37) 요한의 이양작업은 요한의 제자들과 예수의 접촉에서, 대화와 고백으로 발전하고, 나타나엘의 고백과 예수의 계시말씀으로 완료된다.(1,38-51) 이러한 점진적인 이양작업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확실하게 복음선포의 정면(正面)에 서신다.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푸신 첫 번째 기적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시고 제자들의 믿음을 얻어내는 공생활의 시작을 선포하신 것이다.(2,1-12)

 

  루가복음은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어떻게 보도하고 있는가? 루가복음이 예수의 전사(前史)에서 다루고 있는 12살 시절의 어린 예수에 관한 이야기와 성가정의 나자렛 생활에 관한 짧은 보도는 예수의 성장과정을 어느 정도 짐작하게 한다.(2,41-52) 루가복음도 상당부분을 할애하여 세례자 요한의 사명과 활약상, 특히 인상적인 회개설교를 제보한다.(3,1-18) 그런데 요한의 메시아 도래선포와 예수의 세례사건 사이에 헤로데에 의한 요한의 투옥사건(3,19-20)이 보도되는 점은 좀 특이하다. 루가가 예수의 세례장면(3,21-22)에 요한의 이름을 거론하지 않고 막연히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셨다"고 서술하는 점도 이상야릇하다. 그런 다음 예수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그 서두에 "예수께서는 서른 살 가량 되어 전도하기 시작하셨다"(3,23)고 기록하고 있다. 그 다음에 광야에서의 유혹(4,1-13)을 상세하게 다루고 있는데, 세 가지 유혹의 순서가 마태오의 그것과 사뭇 다르다.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신 예수께서는 오늘 복음이 말하고 있듯이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가신다.(14절) 갈릴래아에 오신 예수께서는 먼저 여러 회당을 다니시며 가르치셨고,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고향 나자렛 회당에서 가르치신 내용이다.

 

  루가복음에서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어느 장소와 시점에 두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은 사실 알고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루가는 우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시간과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 루가가 예수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서른 살 가량 되어 전도하기 시작하셨다"(3,23)고 하지만, 이것을 공생활 시작의 시점으로 볼 수는 없다. 세례자 요한의 활약과 예수의 세례장면 사이에 요한의 투옥사건을 삽입한 것도, 예수의 세례에서 요한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것도 문맥상 매끄럽지 못한 편집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이유들로 루가의 심오한 시간과 공간 개념을 무시할 수 없다. 루가는 마르코나 마태오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활동을 시간적 서술에 묶어두지 않았다. 루가는 복음선포의 시간적 서술보다 복음이 선포되는 원동력을 더 강조한다.

 

  그 원동력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기도와 성령의 능력이다. 루가는 "기도" 라는 단어를 복음에서 28번, 사도행전에서 30번, "성령"이라는 단어를 복음에서 17번, 사도행전에서 57번 사용하고 있다. 이는 다른 복음서와 서간들에 비하여 엄청나게 높은 빈도(頻度)의 사용이다. 예수께서 (요한으로부터) 세례를 받고 기도하셨음을 강조한 것도,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오신 것도,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18-19절)의 근거와 내용을 밝히는데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18절)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인용(61,1-2)으로 시작한 것도 모두 그런 이유에서다.

 

  다음으로 루가의 심오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도대체 어떤 것인가? 루가가 파악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오늘 복음의 핵심적인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21절)는 말씀에 담겨있다. 바로 "오늘", 그리고 "이 자리"이다. 루가가 말하는 시간은 "오늘"이고, 장소는 "이 자리"이다. 즉, 기도와 성령의 능력이 오늘과 이 자리에 집중되는 것이다. 따라서 루가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어느 시점과 어느 장소에 국한하여 보지 않고 언제나 "지금과 여기"로 보는 것이다. 기도와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고,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바로 지금과 여기에 예수님의 공적인 복음선포와 활동은 실존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적인 복음선포와 활동은 교회의 봉사를 통하여 오늘, 그리고 여기에 또한 실현되어 실존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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