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행복한 일
작성자노우진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09 조회수1,810 추천수24 반대(0) 신고

몇일 전부터 이발을 해야겠다는 생각만하다가

집에 가지 못하고 남아있는 아이들 중에서

초등학교 3학년에 다니는 2명의 아이를 데리고 이발소를 갔다.

 

가는 길에 이렇게 물었다.

"너는 이발을 어떻게 할 건데?" 아무 생각없이 뱉었던 말인데

아이는 기회를 잡았다는 듯이 나의 말투를 흉내내며 웃으면서

"잘!"이라고 대답하는 것이었다.

 

난 웃으며 "그래 어떤 머리를 하고 싶은데?"라고 묻자.

"스포스요"라고 대답했다.  "그래"라고 웃으며 대답한 후

다른 아이에게도 "넌 어떤 머리로 깍고 싶어?"라고 물었다.

아이는 약간 상기된 듯한 얼굴을 하고서

"가운데 5센티 정도로 한 줄만 남기고 나머지는 빡빡 깍고 싶어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난 사실 우리 집 아이가 그런 인디언과 같은 닭 벼슬 머리(?)를 한다는 것을

받아들이기가 너무 힘들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생각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다른 사람의 생각에 따라 부자유로울 필요가 뭐 있을까?

윤리적인 죄를 짓는 것도 아닌데..

아이가 나이가 들면 그런 머리를 하라고 해도 안할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먼 기억속에 묻어둔 나의 어린 시절의 기억도 떠올리게 되었다.

나 역시 그런 머리를 흉내내보고 싶었던 시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런 기억이 떠올랐다는 것은

무척이나 그렇게 해보고 싶었음에도

이런 저런 눈치를 보며 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그래?  그렇게 하고 싶어? 하지만 염색은 안된다.

방학이니 하고 싶은데로 해보렴"

그리고 이어서 "어떻게 너는 스포스를 할래?  너도 그 머리를 하고 싶으면

해도 되는데." 라고 말하자

다른 아이는 "신부님 진짜요?"라는 질문을 여러차례 반복했다.

그리고 나서도 "영복이가 자르는 것 봐서요." 라고 말하는 것이었다.

 

아이는 자신도 자신 만의 개성을 살려 말하싶었으나

늘 "스포스"를 요구했던 어른들에게 길들여져

안전하게, 착하게 어쩌면 수동적으로 "스포스요"를 말했을지도 모르겠다.

결국 이발소에서 자신의 의사를 결정하게 된 아이는

다른 아이와 "쌍둥이냐?" 라는 말을 들음에도 불구하고

요 몇일 싱글벙글이다.

물론 다른 녀석도 그렇다.

 

오늘 독서 안에서 요한 사도는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따라

우리가 청하는 것을 들어주신다고 가르침을 주신다.

 

우리가 해야할 것은 그저 청하는 것일 수도 있겠으나

그보다 먼저 해야 할 것은

그분의 뜻을 따른 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는 일일 것임이요.

나아가 그보다 더 먼저 행해야 할 것은

우리가 자유롭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우리가 청하는 바를 들어주시려는 하느님의 그 마음을

이해하고 그에 대해  감사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행복하세요...*^^*

 

 

P.S. 이발 후에 우리는 대전에 있는 한 백화점에 갔다. 사람들의 반응이 가지 각색이었다.

난 "창피하지 않니?"라고 물었고 "뭐가 창피해요?"라고 동그랗게 눈을 뜨고 말하는 아이앞에서 조금은 부끄러움을 느꼈다.  녀석은 주차 정리를 하고 있는 청년을 "아저씨"라고 부른 후에 "나 빠박"하고 특유는 표정으로 웃는 것이었다. 청년은 화들짝 놀란 눈을 했고 매장에 있는 아가씨는 "일본 얘들인가봐!"라고 말했다.

공동체로 돌아와 직원들, 함께 사는 수사님들은 아이들의 모습에 박장 대소를 하는 것이었다. 아이들은 요즘 그 머리를 하고 자전거를 신나게 타고 돌아다닌다.

그런데 머리에 모자를 쓰고 다닌다. 녀석들도 다른 사람의 눈길이 부담스러운가보다.

어쨌든 요즘 우리 집은 웃는 시간이 많아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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