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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주님 공현 후 토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10 조회수1,524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10일 (토) - 주님 공현 후 토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3,22-30

<신랑의 친구는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22) 그 뒤에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유다 지방으로 가셔서 그곳에 머무르시면서 세례를 베푸셨다. 23) 한편 살림에서 가까운 애논이라는 곳에 물이 많아서 요한은 거기에서 세례를 베풀었는데 많은 사람들이 찾아와 세례를 받았다. 24) 이것은 요한이 감옥에 갇히기 전의 일이었다. 25) 그런데 요한은 제자들과 어떤 유다인 사이에 정결 예식을 두고 논쟁이 벌어졌다. 26) 그 제자들은 요한을 찾아가 "선생님, 선생님과 함께 요르단 강 건너편에 계시던 분이 세례를 베풀고 있습니다.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 하고 말하였다. 27) 요한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은 하늘이 주시지 않으면 아무 것도 받을 수 없다. 28) 나는 그리스도가 아니라 그분 앞에 사명을 띠고 온 사람이라고 말하였는데 너희는 그것을 직접 들은 증인들이다. 29) 신부를 맞을 사람은 신랑이다. 신랑의 친구도 옆에 서 있다가 신랑의 목소리가 들리면 기쁨에 넘친다. 내 마음도 이런 기쁨으로 가득 차 있다. 30)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예수 안에 사는 세례자 요한

 

  복음서들이 시사하는 예수님 공생활 시작의 정확한 시점과 장소에 관하여는 이미 논한바 있다.(목요일 복음산책) 마르코와 마태오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투옥 직후 갈릴래아 지방으로, 루가복음은 자신의 고유한 시간과 공간개념을 도입하여 "지금과 여기"로, 요한복음은 세례자 요한과 예수를 비교하는 대비구조 안에서 요한으로부터 예수에로의 점진적인 이양작업으로 예수님 공생활 시작의 시점과 장소를 각각 논하고 있다.

 

  요한복음이 말하는 구원사적 활동의 점진적인 이양작업은 말보다 쉽게 되는 것은 아니었다. 세례자 요한 스스로는 자신의 철저한 선구자적 임무에 충실한다 하더라도 적지 않은 문제가 요한의 제자들에게 있었던 것이다.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온 유다 지방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이 와서 죄를 고백하며 요르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마르 1,5)는 보도를 미루어 볼 때 세례자 요한은 상당히 많은 수의 제자들을 이미 확보하고 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제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를 어떻게 생각하고 받아들이느냐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세례자가 세례를 베풀던 요르단강에 인접한 베다니아에 처음으로 등장하신다.(1,29) 여기서 요한복음은 세례자가 예수께 세례를 베푼 것에 관한 보도는 생략하고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를 ’세상의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으로 증언한다. 세례자의 증언이 성공적으로 이루어졌음은 그의 제자 안드레아와 다른 제자가 예수를 따라갔고, 안드레아의 형 베드로와 함께 예수의 첫 제자가 되었음으로 보증된다. 나아가 필립보와 나타나엘까지도 예수와의 대화를 통하여 첫 제자단에 합세한다.(1,35-51) 그후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첫 번째 기적(2,1-12), 해방절 축제를 맞아 예루살렘에서 치러진 성전정화와 활동(2,13-25), 니고데모와의 대화(3,1-13 또는 15), 그리고 제3인칭의 독백형식으로 기록된 복음에 관한 요약설명(3,16-21) 등의 보도는 세례자 요한의 활동 가운데를 파고드는 예수님의 활동을 한층 돋보이게 만드는 동시에 첫 제자단의 예수께 대한 신뢰심을 높이는 역할을 수행한다.

 

  그러는 동안에도 세례자 요한의 활동은 계속된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세례자 요한과 그 제자들은 살림 가까이에 위치하여 물이 많은 애논에서 계속 세례를 베풀고 있었다.(23절) 살림과 애논지역은 갈릴래아 호수에서 요르단강 남쪽으로 약 40Km 떨어진 곳으로서 사마리아 지방과 베레아 지방의 경계지역으로서 데카폴리스 지방에 속하는 곳이었다. 한편 예수의 일행은 유다지방에 머물면서 세례를 베풀었다.(22절) 그러나 예수께서 직접 세례를 베푼 것은 아니고 예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고 한다.(4,2) 예수의 세례는 분명 요한의 세례와 다르다. 공관복음서 어디에도 언급이 없는 예수의 세례는 ’성령의 세례’를 의미하는 것으로서 이는 예수부활 이후에 가서야 비로소 베풀어졌을 것이다. 여기서는 다만 ’성령의 세례’(1,33; 3,5)가 요한이 베풀던 ’물의 세례’(1,26)와 대비하여 이를 능가하는 것으로 제시하고 있을 뿐이다. 예수의 제자들이 세례를 베풀었다면 이는 예수의 제자가 되는 조건부의 세례였을 가능성도 있다.

 

  어쨌든 오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와 예수의 제자들이 벌이는 활동에 대하여 노골적인 불만을 토로하는 가운데 언급된 세례자의 마지막 증언인 셈이다. 이 증언은 요한의 제자들이 표시하는 불만과 질투가 부당함을 설명하는 것이며, ’신부’인 예루살렘이 준비하고 맞이하여야 할 ’신랑’이 바로 예수임을 증명하는 증언인 것이다. 이 증언을 끝으로 요한은 역사 속의 인물로 사라지게 된다. 구원역사의 장(場)에는 오직 예수만이 있을 뿐이다. 오직 예수만이 메시아요 구세주이시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은 예수께 대하여 마지막 증언을 외치는 세례자 요한의 입에 "그분은 더욱 커지셔야 하고 나는 작아져야 한다"(30절)는 말을 담았다. 점점 작아져 없어질지라도 ’신랑’의 친구로 있었던 것만으로도 기쁨에 벅찼던 세례자 요한은 이제 역사 속으로 사라진다. 그러나 점점 작아 없어지는 세례자 요한의 삶은 점점 커져 전부가 되실 그리스도 예수의 삶 안에 영원히 살아 있을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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