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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안토니오 아빠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17 조회수1,497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17일 (토) - 성 안토니오 아빠스 기념일

 

▣ 성 안토니오(251-356) 아빠스

 

  안토니오 성인은 251년경 이집트의 아주 부유한 그리스도교 집안에서 에서 태어났다. 20살에 양친을 잃은 성인은 어린 여동생을 돌보고 많은 재산을 관리해야 했다. 안토니오의 친구였던 성 아타나시우스(295-373) 주교가 쓴 《성 안토니오의 생애》에 의하면 안토니오의 삶을 바꾸어 놓았던 것은 다름 아닌 복음말씀과 사도행전의 말씀이었다. 예수께서 부자청년에게 하신 말씀이 곧 자기를 향하여 하신 말씀이었다: "네가 완전한 사람이 되려거든 가서 너의 재산을 다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어라. 그러면 하늘에서 보화를 얻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나를 따라 오너라."(마태 19,21) 뿐만 아니라 초대교회의 신자들이 자기 재산을 모두 팔아 그 돈을 사도들 앞에 가져다 놓고 저마다 쓸 만큼 나누어 받았기 때문에 그들 가운데 가난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다(사도 4,34-35)는 말씀이 성인의 귀에 메아리쳤다. 결국 성인은 여동생을 동정녀들에게 맡기고 재산을 모두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주고는 사막으로 들어가 은둔생활을 통하여 철저한 참회와 청빈의 삶을 시작하였다. 성인의 모범적인 은둔생활이 사방에 알려지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를 따라 살았다. 이는 곧 초기 수도생활의 시작이었다. 성인은 당시 박해 중에 있던 신자들과 아리우스 이단에 맞서 정통교리를 수호하던 아타나시우스를 위해 기도와 단식을 멈추지 않았다고 한다. 356년 105세의 고령에 세상을 떠난 안토니오 성인은 ’수도자의 사부(師父)’, ’이집트의 의사’로 불린다. 성 안토니오 아빠스의 가르침은 단편적으로 전해져 오고 있다.

 

  "나는 온 땅에 원수들이 쳐 놓은 올가미들이 있는 것을 본다. 나는 한숨을 내어 쉬며 중얼거렸다. ’누가 이들을 피해 갈 수 있겠는가?’ 그 때 내 귀에 한 음성이 들려왔다. ’오직 겸손뿐이다.’"

"함께 살아가는 사람들이 나에게 생명도 주고 죽음도 준다. 내가 형제를 얻으면 하느님을 얻은 것이요, 내가 형제를 죄짓게 하면 그리스도를 거역하여 죄를 지은 것이다."

 

[오늘의 복음] 마르 2,13-17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13)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로 나가셨다. 군중도 모두 따라왔으므로 예수께서는 그들을 가르치셨다. 14) 그리고 그 후에 길을 가시다가 알패오의 아들 레위가 세관에 앉아 있는 것을 보시고 "나를 따라오너라" 하고 부르셨다. 그러자 레위는 일어나서 예수를 따라 나섰다. 15) 어느 날 예수께서는 레위의 집에서 음식을 잡수시게 되었다. 예수를 따르던 사람들 중에는 세리와 죄인들도 많았는데 그 중 여럿이 예수와 그의 제자들과 함께 그 자리에 앉아 있었다. 16) 바리사이파의 율법학자들은 예수께서 죄인이며 세리들과 한자리에서 음식을 나누시는 것을 보고 예수의 제자들에게 "저 사람이 세리와 죄인들과 어울려 같이 음식을 나누고 있으니 어찌 된 노릇이오?" 하고 물었다. 17)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 하고 대답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죄를 용서하는 권한

 

  드디어 예수님 주위에 군중이 따라붙기 시작했다. 예수께서 시몬의 집을 떠나 다시 호숫가로 가시는데 제자들뿐 아니라 군중도 함께 따라나섰다. 예수를 따르는 군중은 대략 두 부류로 나뉘어 있다. 한 부류는 얼마 전 예수님의 한마디 말씀에 냉큼 요(침상)를 걷어들고 걸어가던 중풍병자를 눈앞에서 지켜보고는 하느님을 찬양하면서 놀라움과 즐거움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예수께서 죄사함을 운운하여 하느님을 모독했다고 생각하며 언짢은 마음으로 따라가는 율법학자들이다. 전자(前者)는 또 어떤 놀라운 일이 벌어질까 하는 호기심과 신명으로 따라가는 사람들이오, 후자(後者)는 예수가 또 어떤 발상으로 하느님을 모독할까 하는 조바심이나 경계심, 또는 감시(監視)적 차원에서 따라붙은 사람들이다.

 

  호숫가를 걸어가시는 예수님은 어떤 생각을 하고 계실까? 아마 두 가지 생각이 있었을 것이다. 첫째는 제자들과 이미 호감을 가진 군중을 제대로 교육시켜나가는 것이고, 둘째는 반대자의 어리석은 생각을 밝혀내는 것이다. 이 두 생각을 한꺼번에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어제 복음에서 이미 언급된 "이제 땅에서 죄를 용서하는 권한이 사람의 아들에게 있다는 것을 보여 주겠다"(2,10)는 말씀이다. 이 말씀을 증명이라도 하시려는 듯 예수께서는 세관에 앉아 업무를 보고 있던 알패오의 아들 레위를 제자로 부르셨다.(14절) 그런데 이 대목에서 말하는 알패오의 아들로 세리출신인 레위는 12제자단의 하나는 아니었던 것 같다. 12사도 중 하나로서 알패오의 아들은 야고보이며, 세리였던 제자는 마태오이다.(마태 10,3; 마르 3,18; 루가 6,15; 사도 1,13) 그러나 알패오가 두 명의 서로 다른 사람일 수도 있고, 세리인 레위가 마태오일 가능성도 있다.

 

  오늘 소명(召命)을 받은 레위는 세리였다. 세리들은 예수님 당시에 동족들로부터 죄인 취급을 받았으니, 예수께서는 죄인을 제자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님의 이런 처사는 당시 유대인 랍비들이나 지도자들에게 있어서 분명 스캔들이다. 이어서 율법학자들이 보기에 사태는 더욱 심각해지고, 제자들이 보기에 예수님의 가르침은 한 차원 더 높아진다. 예수께서 제자로 삼은 레위의 집에서 다른 세리들과 어울려 죄인들과 함께 음식을 나누신 것이다.(15절) 세리들은 되도록 멀리하고 죄인들과는 상종을 하지 않는 것이 스스로 거룩하여 성별(聖別)되었다고 생각하는 바리사이파 출신 율법학자들의 원칙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셨다: "성한 사람에게는 의사가 필요하지 않으나 병자에게는 필요하다. 나는 의인을 부르러 온 것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왔다"(17절)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어제 복음에서도 언급하였듯이 죄(罪)는 격리와 이별을 초래한다. 따라서 죄인은 모든 인간적인 공동체의 삶으로부터 소외된다. 이러한 죄인들과 함께 하는 예수님의 식사공동체라니? 이는 죄인들의 인간성을 회복하는 일이며, 죄인들을 공동체에 복귀시키는 일이다. 공동체에로의 복귀는 ’용서’ 없이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예수와의 식사공동체에 초대받은 이들은, 그가 죄인이라면 이미 죄의 용서가 선행(先行)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예수께서는 죄스런 현실로부터 우리를 불러내신다. 죄와 떨어지라고 우리를 부르신다. 그러나 그분은 죄인들을 떨어내시지는 않는다. 그분은 오히려 죄인들을 찾아가시는 분이며 그들을 용서하여 식탁에 불러 기꺼이 음식을 나누시길 원하신다. 죄를 지은 사람들은 상처 입은 사람들이며, 예수님은 이들을 고쳐주실 의사이기 때문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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