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연중 제3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25 조회수1,630 추천수8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25일 (일) - 연중 제3주일

 

▣ 성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 (없음)

 

[오늘의 복음] 루가 1,1-4; 4,14-21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이루어졌다>

 

  1) 존경하는 테오필로님, 우리들 사이에서 일어난 그 일들을 글로 엮는 데 손을 댄 사람들이 여럿 있었습니다. 2) 그들이 쓴 것은 처음부터 직접 눈으로 보고 말씀을 전파한 사람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사실 그대로입니다. 3) 저 역시 이 모든 일들을 처음부터 자세히 조사해 둔 바 있으므로 그것을 순서대로 정리하여 각하께 써 보내 드리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였습니다. 4) 그러하오니 이 글을 보시고 이미 듣고 배우신 것들이 틀림없는 사실이라는 것을 알아주시기 바랍니다.

 

  4,14) 예수께서는 성령의 능력을 가득히 받고 갈릴래아로 돌아가셨다. 예수의 소문은 그곳 모든 지방에 두루 퍼졌다. 15) 예수께서는 여러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모든 사람에게 칭찬을 받으셨다. 16) 예수께서는 자기가 자라난 나자렛에 가셔서 안식일이 되자 늘 하시던 대로 회당에 들어가셨다. 그리고 성서를 읽으시려고 일어서서 17) 이사야 예언서의 두루마리를 받아 들고 이러한 말씀이 적혀있는 대목을 펴서 읽으셨다. 18)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 주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으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게 하셨다. 주께서 나를 보내시어,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고,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며 19)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20) 예수께서 두루마리를 말아서 시중들던 사람들에게 되돌려 주고 자리에 앉으시자 회당에 모였던 사람들의 눈이 모두 예수에게 쏠렸다. 21) 예수께서는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 하고 말씀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예수님의 프로그램

 

  우리는 주님세례축일 다음 월요일부터 연중시기를 시작하였다. 그 주간이 연중시기 제1주간이었고, 이어진 주일이 바로 연중 제2주일이었다. 그런데 연중시기 제2주일의 복음은 가해, 나해, 다해 모두 요한복음이다. 복음의 내용을 잠시 살펴보자. 가해의 복음은 세례자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예수를 가리켜 ’세상에 죄를 없애시는 하느님의 어린양’이라고 지적한 내용이다.(요한 1,29-34) 나해는 요한의 제자 둘이 예수와 함께 하루를 묵고 시몬을 찾아가 ’우리가 찾던 메시아를 만났다’고 고백하는 내용을 복음으로 택했다.(요한 1,35-42) 다해의 복음은 가나의 혼인잔치에서 베푸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에 관한 내용이다.(요한 2,1-11) 이들 복음의 내용은 주님세례축일의 복음과 마찬가지로 주님의 공현(公顯)과 상당히 관련이 있는 것으로 분석된다. 따라서 주일로 따질 때, 연중시기의 첫 주일인 연중 제2주일의 복음은 그 내용상 모두가 주님 공현의 연장이고, 연중 제3주일부터 연중시기의 고유한 신비인 ’예수님 공생활 따라잡기’가 연출된다는 결론이다. 연중시기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신비를 그 공생활 시작부터 마지막까지 포괄적으로 묵상하는 시기라는 것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다.

 

  그러므로 본격적인 연중주일의 시작은 연중 제3주일부터이다. 이 결론이 마냥 추측이 아니라는 것은 오늘 연중 제3주일에 봉독되는 복음으로 증명된다.(가해: 마태 4,12-23/ 나해: 마르 1,14-20/ 다해: 루가 1,1-4; 4,14-21) 이 복음들은 모두가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을 보도하고 있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세례자 요한이 투옥된 후 갈릴래아 지방 가파르나움에서 개시(開始)한 예수님의 공생활을 보도하고 있으며, 루가는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예수께서 자라나신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 회당에서 테이프를 끊은 공생활의 시작을 전해주고 있는 것이다. 즉, 다해 연중 제3주일은 루가복음의 서문과 예수님의 첫 공생활 활동내역을 복음으로 삼고 있다.

 

  이미 논하였던 바이지만, 루가복음에서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어느 장소와 시점에 두고 말하기가 어렵다. 이 점은 사실 알고 보면 상당히 매력적인 부분이다. 루가는 우선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다른 시간과 공간 개념을 가지고 있다. 루가가 예수의 족보를 언급하면서 "예수께서 서른 살 가량 되어 전도하기 시작하셨다"(3,23)고 하지만, 이것을 공생활 시작의 시점으로 볼 수는 없다. 세례자 요한의 활약과 예수의 세례장면 사이에 요한의 투옥사건을 삽입한 것, 예수의 세례에서 요한의 이름을 거명하지 않은 것 등은 문맥상 매끄럽지 못한 편집으로 지적될 수 있는 부분이다. 그러나 이런 몇 가지 이유들로 루가의 심오한 시간과 공간 개념을 무시할 수 없다. 루가는 마르코나 마태오복음에서처럼 예수님의 공생활 시작을 세례자 요한이 투옥된 후부터라는 시간적 서술에 묶어두지 않았다. 루가는 새계약의 복음선포가 시작된 시간적 서술보다 복음이 선포되는 원동력을 더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그 원동력은 바로 예수님의 정신을 가득히 채운 하느님 성령의 능력이다.(14절) 예수님의 메시아적 사명의 근거와 내용을 밝히는데 "주님의 성령이 나에게 내리셨다"(18절)는 이사야 예언서의 말씀인용(61,1-2)도 그런 이유로 알아들을 수 있다.

 

  루가가 생각하는 심오한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루가가 파악하고 있는 시간과 공간의 개념은 오늘 복음의 핵심적인 "이 성서의 말씀이 오늘 너희가 들은 이 자리에서 이루어졌다"(21절)는 말씀에 담겨있다. 이는 예수님의 복음선포 활동의 모든 것이 집중된 바로 ’오늘’, 그리고 ’이 자리’를 말한다. 루가가 말하는 시간은 ’오늘’이고, 장소는 ’이 자리’인 것이다. 따라서 루가는 예수님 공생활의 시작을 어느 시점과 어느 장소에 국한하여 보지 않고 언제나 ’지금과 여기’로 보는 것이다. 하느님 성령의 능력으로 "가난한 이들에게 복음을 전하며, 묶인 사람들에게는 해방을 알려 주고, 눈먼 사람들은 보게 하며, 억눌린 사람들에게는 자유를 주고, 주님의 은총의 해를 선포하는" 바로 지금과 여기에 예수님의 공적인 복음선포와 활동은 실존한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공적인 복음선포와 활동은 교회의 봉사를 통하여 오늘, 그리고 여기에 또한 실현되어 실존하는 것이다. 이것이 루가복음 전체가 지향하는 바이며, 바로 예수께서 계획하시는 프로그램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