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성 디모테오와 디도)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26 조회수1,531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26일 (월) - 성 디모테오와 성 디도 주교 기념일

 

▣ 성 디모테오(+97) 성 디도(+97) 주교 기념일

 

  에페소의 주교 성 디모테오와 그레데의 주교 성 디도는 성 바오로 사도의 가장 널리 알려진 제자이며 협력자들이다. 디모테오의 이름은 사도행전과 바오로의 서간들에 31번 등장하고, 디도의 이름은 서간들에만 16번 등장한다. 그래서 바오로 사도의 개종 축일(1월 25일) 바로 다음 날인 오늘 두 성인의 축일을 함께 지내는 것이다.

 

  디모테오는 그리스인 아버지와 예수를 믿는 유다인 어머니의 아들로서 터키의 리스트라 출신이다.(사도 16,1-3) 그는 사도 바오로의 첫 번째 전도여행(45-48년경) 중에 믿음을 얻어 바오로의 선교활동에 절친한 동반자요 협조자 역할을 수행하였다. 바오로는 그를 ’참된 믿음의 아들’(1디모 1,2), ’아들같이 사랑하는’(2디모 1,2) 제자라고 불렀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그리스의 베레아 (사도 17,13-15), 아테네와 데살로니카(1데살 3,1-6), 고린토(1고린 4,17)를, 나중에는 에페소(1 고린 16,8-10), 마케도니아(사도 19,22) 등지를 선교하였다. 그는 바오로와 함께 예루살렘 사도회의(49년경)에도 참석하였으며(사도 20,4), 바오로가 감옥에 갇혔을 때도 함께 있다가 필립비로 파견된 것으로 추정된다(필립 2,19.23). 감옥에서 풀려난 바오로는 디모테오를 에페소 교회의 주교에 임명하고, 에페소 교회의 막중한 심각성을 고려하여 첫 번째 사목서간(1디모)을 보냈고, 다시금 옥중에서 두 번째 사목서간(2디모)을 보냈다. 이 서간들은 교회의 조직과 주교로서 성직자와 신자들을 지도하는 데 지침이 될 권고들이 담겨있다. 물론 이 사목서간의 바오로 친저성에 대한 논란은 끊이지 않고 있다. 디모테오는 주교직을 수행하면서 투옥된 경험이 있었고(히브 13,23), 네로 황제의 박해시기에도 심한 고문을 받은 적이 있으며, 97년경 에페소에서 순교한 것으로 전해진다. 성 디모테오의 유해는 콘스탄티노플의 사도성당에 루가와 안드레아 사도 곁에 안치되었다.

 

  그리스 출신 이방인이었던 디도에 관해서 사도행전이 보도하는 바는 없다. 그 대신 바오로 사도의 서간들에는 바오로의 동료요 협조자로 소개된다.(2고린 8,23) 디도는 예루살렘 사도회의(49년경) 직전에 사도 바오로를 만나서 개종한 것으로 추정된다.(갈라 2,1) 그는 뛰어난 협상 주도자였던 모양이다. 그는 바오로와 고린토 교회 사이에 야기되었던 격심한 불화를 제거하는데 성공하였고, 이에 바오로의 찬사를 받았으니 말이다.(2고린 8,16-23) 그 이후 디도는 바오로의 명을 받고 마케도니아와 고린토에서 예루살렘 신도들을 위한 모금운동에도 참가하였다. 디도가 그레데(크레타)섬의 대표 사목자였다는 사실은 바오로가 디도에게 보낸 사목서간에 따른 주장이다.(디도 1,5) 디도서를 읽어보면 사도 바오로가 디도와 함께 그레데 섬을 선교하고 여기에 디도를 남겨둔 것으로 보도하고 있지만, 사도 바오로는 그레데 섬을 선교한 적이 없고, 예루살렘에서 체포된 후(60년경) 그레데 섬을 거쳐 로마로 압송되었을 뿐이다(사도 27,7-21). 따라서 바오로가 디도를 그레데 섬으로 파견한 것으로 추측된다. 교회사의 아버지이자 체사레아의 주교였던 에우세비오스(263-339)의 《교회사》를 보면 디도가 크레타 섬의 주교였다는 기록이 있다. 전설에 의하면 디도는 이교도의 신전을 말로써 무너뜨리기도 했고, 향연 94세로 97년경에 세상을 떠났다.

 

[오늘의 복음] 루가 10,1-9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

 

  1) 그때에 주께서 달리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찾아가실 여러 마을과 고장으로 미리 둘씩 짝지어 보내시며 2) 이렇게 분부하셨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 3) 떠나라. 이제 내가 너희를 보내는 것이 마치 어린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 것과 같구나. 4) 다닐 때 돈주머니도 식량 자루도 신도 지니지 말 것이며 누구와 인사하느라고 가던 길을 멈추지도 마라. 5) 어느 집에 들어가든지 먼저 ’이 댁에 평화를 빕니다!’ 하고 인사하여라. 6) 그 집에 평화를 바라는 사람이 살고 있으면 너희가 비는 평화가 그 사람에게 머무를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너희에게 되돌아올 것이다. 7) 주인이 주는 음식을 먹고 마시면서 그 집에 머물러 있어라. 일꾼이 품삯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8) 이 집 저 집으로 옮겨 다니지 말라. 8) 어떤 동네에 들어가든지 너희를 환영하거든 주는 음식을 먹고 9) 그 동네 병자들을 고쳐 주며 하느님 나라가 그들에게 다가왔다고 전하여라."◆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주님의 임명을 받은 일꾼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12제자 외에도 따로 일흔 두 제자를 뽑아 앞으로 가실 곳으로 파견하시면서 그들이 해야할 일과 함께 엄격한 여장규칙을 훈시하시는 내용이다. 루가는 마르코복음과 마태오복음에서와 같이 12제자의 파견에 관하여는 이미 앞서간 대목에서 보도하였다.(마태 10,5-11,1; 마르 6,6-13; 루가 9,1-6) 루가는 복음서 9장에서 12제자의 파견과 복귀를 차례로 보도하고, 빵의 기적, 베드로의 고백과 수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구마기적, 수난에 대한 두 번째 예고, 그리고 예수추종의 자세를 보도하면서 예수님의 갈릴래아 활동기를 사실상 마무리지었다.

 

  그리고 예수님과 그 일행은 예루살렘을 향하여 긴 여정에 오른다. 그런데 사마리아 사람들의 예수일행에 대한 거부와 냉대로 말미암아(루가 9,52-56) 전혀 새로운 데카폴리스와 베레아 지방을 두루 거쳐 예루살렘으로 상경해야 하는 사실을 감안한다면, 또 한번의 제자파견은 지극히 필요한 사안으로 추정된다. 이에 루가는 "일흔 두 제자의 파견사화"(10,1-16)를 창작하여 자신만의 특수사료로 다루고 있는 것이다.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청하여라"(2절)는 예수님의 말씀이 일흔 두 제자의 파견과 조화를 이루고 있다. 예루살렘을 향한 여정은 먼데 시간은 촉박하다는 뜻이다. 즉 예수께서 복음을 전해야 할 곳은 많은데, 종말론적 하느님의 심판이 목전에 왔다는 것이다. "추수" 라는 상징어가 사태의 심각성을 더해준다.

 

  오늘 성 디모테오와 성 디도 주교의 축일에 그들이 바오로 사도와 함께 펼쳤던 활발한 선교활동을 다시금 생각해 본다. ’마치 어린양을 이리떼 가운데 보내는’(3절) 심정으로 제자들을 파견하셨던 예수님은 그들이 가는 곳이며 어디든 함께 가셨을 것이며, 함께 계셨을 것이다. 그래서 사도 바오로는 환난도, 역경도, 박해도, 굶주림도, 칼도, 그 어떤 무엇도 자신을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놓을 수 없으며(로마 8,35), 그리스도의 복음선포를 막을 수 없다고 외쳤던 것이다. 종말론적 하느님의 심판이 목전에 왔다는 사태의 심각성은 예나 지금이나 같은 비중으로 크다. 당시 모든 면에서 열악한 선교조건뿐 아니라 유다인들의 적개심과 이방인들의 반목에도 불구하고 오로지 하느님의 임명을 받은 일꾼으로서(로마 13,6) 초지일관(初志一貫) 그리스도의 복음을 세상에 전하려 했던 초대교회의 모든 사도들을 하나씩 생각하며 그들을 본받고자 다짐해 본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