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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토마스 아퀴나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28 조회수1,535 추천수15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28일 (수) - 성 토마스 데 아퀴노 사제 학자 기념일

 

▣ 성 토마스 데 아퀴노 (1225-1274) 사제 학자

 

  토마스는 1225년 이탈리아의 아퀴노 가문이 소유한 로카세카 성(城)에서 태어났다. 그는 5살에 이미 ’하느님께 봉헌된 아이’로 삼촌이 원장으로 있던 몬테카씨노의 베네딕토 수도원에서 공부를 시작하였다. 1239년 14살에 나폴리에서 공부를 계속하였고 이곳에서 도미니코 수도회를 알게 된다. 토마스가 1243년 18살의 나이로 도미니코 수도회에 입회하자 이를 반대하던 가족들에게 붙잡혀 로카세카 성에 감금되었다. 토마스의 의지를 꺾으려는 가족들의 온갖 술수도 그를 이겨내지 못하였다. 1244년 감금에서 풀려난 토마스는 1248년까지 볼로냐, 파리를 다니며 공부하였고, 마지막에는 쾰른에 거주하며 대(大) 알베르토(1193-1280) 성인의 문하생으로 수학하였다. 1252년부터 토마스는 스스로 철학과 신학교수로 파리와 로마와 바티칸에서 강의하였다. 이 때 토마스의 대표작 《숨마 테올로지애》(신학대전)와 《숨마 꼰뜨라 젠띨레스》(대이교도대전)가 저술된다. 전자(前者)는 오늘날까지도 신학의 길잡이 역할을 하고 있으며, 후자(後者)에는 ’예지(叡智)의 탐구’를 권두로 아랍문화권의 철학사상이 깊이 있게 다루어져있다. 교황 그레고리오 10세(1271-1276)의 부름을 받고 제2차 리용공의회(1274)에 참석하러 가던 도중 포싸누오바의 시토 수도원에서 성인은 세상을 떠났다. 생전에 어떤 직책도 마다했던 성인에게 교황은 움브리아의 주교직분을 수여했다. 토마스는 1323년 시성되었고, 1369년 1월 28일 성인의 유해는 프랑스의 툴루즈에 안치되었다. 성인은 모든 신학대학의 수호성인이다.

 

  토마스 성인은 모든 세기를 초월한 최고의 그리스도교 신학자이다. 그는 자신의 모든 노력을 신앙과 이성, 철학과 신학의 일치에 기울였다. 그는 유리같이 맑고 명확한 사고를 가졌고, 첨예한 분석력과 동시에 경건하고 겸손한 신앙의 마음을 가진 자였다. 그래서 예술가들은 토마스 성인을 태양과 별과 보석에 비겨 표현한다. 영의 빛으로 교회를 밝히라는 뜻이다. 바티칸 박물관에는 1423년 무명작가의 작품 ’십자가 앞에 꿇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소장되어 있다. 이 작품에 얽힌 전설에 의하면 토마스가 하느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한다. 하느님께서 토마스에게 "너는 나에 관하여 글을 참으로 잘 썼다. 그 대가로 무엇을 바라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토마스는 "주님 제가 바라는 것은 오직 당신뿐이옵니다. 제가 글로 쓴 것이란 그저 북더미에 불과합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토마스는 스콜라철학과 신학의 대부로 통한다. 토마스의 철학은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 철학을 떠나서는 논할 수 없다. 그러나 거기에 머물지 않고, 아우구스티누스와 안셀무스를 거쳐서 형성된 그리스도교 철학과 신학을 독창적으로 발전시켰다. 그는 하느님에 관한 자신의 모든 지식을 교회를 위해 교육적이고 조직적으로 정립하였다. 그러면서도 세속적인 문제와 많은 종교와 문화의 맥락을 수용하였고, 비신자와 다른 종교의 생각들에도 관용을 보였다. 교회를 지도하는데 권위만이 다가 아니다. 중요한 것은 진취적인 논증과 사유를 토대로 한 조직적 사고이다. 토마스는 듣고, 실험하며, 수용하고, 버릴 줄 아는 자주적 사고의 소유자였고, 끊임없는 예지의 탐구자였다.

 

[오늘의 복음] 마르 4,1-20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1) 예수께서 다시 호숫가에서 가르치셨다. 군중이 너무나 많이 모여들었기 때문에 예수께서는 배를 타고 그 안에 앉으신 다음 배를 물에 띄웠다. 그리고 군중은 모두 호숫가에 그대로 서 있었다. 2) 예수께서는 비유로 여러 가지를 가르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3) "자, 들어보아라.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다. 씨를 뿌리는데 어떤 것은 길바닥에 떨어져 새들이 와서 쪼아먹고 5) 어떤 것은 흙이 많지 않은 돌밭에 떨어졌다. 흙이 깊지 않아서 싹은 곧 나왔지만 6) 해가 뜨자 뿌리도 내리지 못한 채 말라 버렸다. 7) 또 어떤 것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 가시나무들이 자라자 숨이 막혀 열매를 맺지 못하였다. 8) 그러나 어떤 것은 좋은 땅에 떨어져서 싹이 나고 잘 자라 열매를 맺었는데, 열매가 삼십 배가 된 것도 있고 육십 배가 된 것도 있고 백 배가 된 것도 있었다." 9) 예수께서는 이어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10) 예수께서 혼자 계실 때에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이 열두 제자와 함께 와서 비유의 뜻을 물었다. 11)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너희에게는 하느님 나라의 신비를 알게 해 주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준다. 12) 그것은 그들이 ’보고 또 보아도 알아보지 못하고 듣고 또 들어도 알아듣지 못하게 하려는 것이다. 그들이 알아보고 알아듣기만 한다면 나에게 돌아와 용서를 받게 될 것이다.’"

13) 예수께서는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가 이 비유도 알아듣지 못하면서 어떻게 다른 비유들을 알아듣겠느냐? 14) 씨 뿌리는 사람이 뿌린 씨는 하늘 나라에 관한 말씀이다. 15) 길바닥에 떨어졌다는 것은 마음속에 뿌려지는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날쌔게 달려드는 사탄에게 그것을 빼앗겨 버리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16) 씨가 돌밭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기꺼이 받아들이기는 하지만 17) 그 마음속에 뿌리가 내리지 않아 오래 가지 못하고 그 후에 말씀 때문에 환난이나 박해를 당하게 되면 곧 넘어지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18) 그리고 씨가 가시덤불 속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19) 세상 걱정과 재물의 유혹과 그 밖의 여러 가지 욕심이 들어와서 그 말씀을 가로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20) 그러나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다는 것은 그 말씀을 듣고 잘 받아들여 삼십 배, 육십 배,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사람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뿌려진 복음의 씨앗

 

  마르코복음 4장에는 네 가지의 비유말씀이 기록되어 있다. 그것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3-9절), ’등불의 비유’(21-25절), ’자라나는 씨의 비유’(26-29절), 그리고 ’겨자씨의 비유’(30-32절)이다. 오늘 복음은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에 해당하는 것으로서 우선 예수께서 비유를 말씀하신 장소(1-2절), 비유 자체의 내용(3-9절),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10-12절), 그리고 비유의 설명(13-20절)으로 구성되어 있다. 오늘 비유도 그렇지만 다른 세 가지의 비유들도 그 핵심적인 주제는 모두 ’하느님나라의 신비(神秘)’에 관한 것이다. 복음 전체의 내용은 쉽게 알아들을 수 있으나 몇 가지 요점을 짚어보도록 하겠다.

 

  우선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장소가 가파르나움의 집에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옮겨갔다는 것이 특이한 점이다. 지금까지 예수께서는 회당이나 집에서 가르치셨다. 그럴 때마다 많은 군중이 모여들었고 더러는 밖에서 말씀을 들어야 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제 예수께 더 큰 장소가 필요하게 된 것이다. 모여든 군중은 호숫가에 서있고 예수께서는 배에 올라가 앉으셨다는 설명은 분명히 예수께서 ’가르치는 선생’의 모습을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자리에 앉아서 가르침을 내리던 유대교 율법교사, 즉 랍비(rabbi)들처럼 예수께서도 이제는 당대의 군중에게 비유의 모양으로 가르침을 내리고 영향력을 행사하는 ’선생’으로 자리를 굳혀 가시는 것이다.

 

  다음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를 알아보자.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비유설교의 주제는 거의 모두가 하느님나라의 신비에 관한 것이라고 했다. 신비(神秘, mysterium)란 인간의 이성적 이론(理論)과 인식(認識)을 초월하는 불가사의(不可思議)하고 영묘한 비밀을 일컫는 말이다. 쉽게 말해서 신비는 인간의 이성이 도달할 수 없는 영역이기 때문에 인간의 어떤 말과 지식으로도 하느님나라를 깨우칠 수 없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밝히는데 비유를 사용하시려는 것이다. 물론 비유(比喩)도 인간의 말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유로 표현되는 본래의 뜻을 꿰뚫을 수 있는 지혜가 있다면 비유는 그 목적을 달성하게 된다. 오늘 복음에서 그 지혜는 ’알아들을 귀’(9절)를 말한다.

 

  예수께서는 알아들을 귀를 가진 자와 가지지 못한 자를 구별하여 귀를 가졌다고 생각되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10절)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신다. 이는 마치 정규수업을 마치고 12제자들과 특별히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을 따로 모아 과외수업을 행하는 것과도 같은 느낌이다. 아마 비유로 말씀하신 것이 이번이 처음이라 그렇게 하셨는지도 모른다. 씨는 잘 갈아엎은 밭에 뿌려져야 하는 것이 원칙이나 이스라엘의 척박한 땅을 생각한다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는 상당히 일리가 있다. 이는 복음이 선포되는 환경을 말한다. 정확히 말하면 복음을 받아들이는 사람의 마음조건을 의미하는 것이다. 하느님나라에 관한 복음의 말씀이 항상 좋은 조건에 뿌려진다는 보장은 없다.

 

  따라서 이 비유는 이미 예수님의 부활 이후 초대교회의 복음선포 상황을 잘 반영하고 있다고 하겠다. 사람들의 마음은 예나 지금이나 늘 사탄의 간악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고, 온갖 환난과 박해, 세상걱정과 재물의 유혹이나 그 밖의 욕심으로 가득 차 있다. 이런 곳에 뿌려진 복음의 씨앗은 기대치의 열매를 가져올 수 없다. 그러나 좋은 조건, 즉 알아들을 귀가 있는 마음에 뿌려진 씨앗은 그 씨앗이 담고 있는 모든 능력을 발휘하여 백 배 이상의 열매를 가져오는 것이다. 하나의 낟알이 뿌려져 100개의 낟을 열매맺는 다는 것은 분명히 과장된 표현이다. 그만큼 과장되었기에 하나의 복음의 씨앗이 가져오는 효과는 엄청나다는 것이다. 복음의 씨앗은 다름 아닌 하느님나라에 관한 복음의 씨앗이기 때문이다. 복음의 씨앗의 주체는 이 씨앗이 열매를 맺음으로써 이루어지는 하느님나라의 주인이신 하느님이시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능력은 인간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아니 인간이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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