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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3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29 조회수1,765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29일 (목) - 연중 제3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마르 4,21-25

<등불은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는다. 너희가 남에게 달아 주면 달아 주는 만큼 받을 것이다.>

 

  21)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말씀하셨다. "등불을 가져다가 됫박 아래나 침상 밑에 두는 사람이 어디 있겠느냐? 누구나 등경 위에 얹어 놓지 않느냐? 22)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게 마련이고 비밀은 알려지게 마련이다. 23)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 24) 또 말씀하셨다.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 너희가 남에게 달아 주면 달아 주는 만큼 받을 뿐만 아니라 덤까지 얹어 받을 것이다. 25) 누구든지 가진 사람은 더 받을 것이며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길 것이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분별의 지혜가 더 절실한 현대

 

  오늘 복음은 마르코복음 4장에 실려있는 4가지 비유 중 두 번째 비유인 ’등불의 비유’를 들려준다. 그런데 사실상 등불의 비유는 오늘 복음의 전반부에만 해당되고, 후반부는 종말보상률(24-25절)에 관한 가르침이다. 그러니까 두 대목은 서로 떨어져 전해 오던 것을 마르코가 한데 묶어 비유설교의 틀 안에 집성한 것으로 보인다. 복음사가들은 종종 이런 의도적인 편집을 통하여 그 의미를 서로 연결시키기도 하고 부각시키기도 한다. 따라서 오늘 복음대목은 4가지 비유들의 핵심적인 주제인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밝히는 방향으로 풀이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앞서간 복음에서 ’알아들을 귀’가 있다고 생각되는 12제자들과 다른 제자들에 국한시켜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와 씨 뿌리는 비유의 의미를 설명해 주셨다. 따라서 오늘 복음대목도 마찬가지로 이들에게만 훈시(訓示)된 것이다.

 

  우선 복음의 전반부인 등불의 비유를 살펴보자. 등불을 등경 위에 얹어 놓아야 함은 삼척동자도 아는 사실이다. 불을 끌 때 됫박을 사용하는 것은 당대의 습관이다. 그런데 등불을 됫박 아래 두거나 침상 밑에 둔다는 것은, 물론 그런 사람은 없겠지만, 좀 과장되고 지나친 표현이다. 이 표현 때문에 그 다음에 이어지는 구절이 힘을 얻는다. 즉 감추어 둔 것은 드러나기 마련이고 비밀을 밝혀지기 마련이라는 것이다.(22절) 아무리 감추어 두고 비밀로 해도 그것은 밝히 드러날 수밖에 없다는 말이다. 그것은 등불이기 때문이다. 등불을 끄지만 않는다면 말이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씨가 복음의 말씀이라면 등불의 비유에서 빛을 내는 등불은 복음의 선포를 뜻한다. 등불의 본질은 스스로 빛을 내는 것이다. 따라서 등불은 복음자체인 예수 그리스도를 의미하며, 예수 그리스도는 그 자체가 복음선포라는 말이 된다. 사실 등불은 성서에서 예수님이 아닌 엘리야와 모세(묵시 11,4), 또는 세례자 요한(요한 5,35)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예수께서는 등불보다 훨씬 더 높고 강한 상징인 빛이시며, 세례자 요한은 이 빛을 증언하러 왔을 뿐이었다.(요한 1,4-9) 따라서 복음자체이며 동시에 선포자체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빛으로서 특정한 장소와 시간에 머무름 없이 온 세상에 드러나 밝게 비추이실 것이다.

 

  복음의 후반부는 종말보상률에 관한 훈시이다. 굳이 종말이라는 말을 붙이지 않아도 무방하다. 무엇을 주고 난 후 되돌려 받을 때까지의 시간을 감안한다면 그 때가 종말이 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보상률은 두 단계로 구별된다. 하나는 인과(因果), 또는 동태(同態) 보상률이고, 다른 하나는 은총(恩寵), 또는 가감(加減) 보상률이다. 앞의 것은 달아 주면 달아 주는 만큼 받는다(24절)는 것이고, 뒤의 것은 가진 사람은 더 받고, 가지지 못한 사람은 그 가진 것마저 빼앗긴다(25절)는 것이다. ’되로 주면 되로 받고 말로 주면 말로 받는다’는 속담이나 ’되로 주고 말로 받는다’는 속담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되는 대목이다. 이 대목을 독자적으로 본다면 인간의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에 대한 하느님의 종말적 동태보상, 또는 하늘에 영적(靈的) 재물을 쌓은 인간에 대한 하느님의 종말적 은총보상으로 이해할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의 핵심은 다른데 있다.

 

  문제의 해결점은 전반부의 등불비유와 후반부의 보상률을 서로 연결시켜주는 관절어(關節語)에 있다. 바로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알아들어라"(23절), 또 "내 말을 마음에 새겨들어라"(24a절)는 말씀이다. 말씀인즉,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등불의 비유를 잘 알아듣고 그 뜻을 마음에 새겨 간직하라는 것이다. 우리는 등불의 비유에서 등불보다 훨씬 강한 빛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았다. 그러므로 빛이신 예수와 그 말씀을 알아듣는다 함은 다시금 씨 뿌리는 비유의 의미를 곱씹어야 한다는 말이겠다. 이 땅에서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만큼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깨우치게 될 것이고, 종말에 가서는 깨우친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신비를 통찰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사도들의 시대보다 들어야 할 것, 알아야 할 것, 보아야 할 것이 훨씬 더 많은 우리들 세상에서는 무엇이 하느님나라의 신비를 밝히는 것인지를 정확히 분별하는 지혜가 더 절실히 요구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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