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그 시절이 좋았습니다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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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양승국 | 작성일2004-01-30 | 조회수2,028 | 추천수31 | 반대(0) 신고 |
1월 30일 연중 제3주간 금요일-마르코 4장 26-34절
"하느님 나라를 무엇에 견주며 무엇으로 비유할 수 있을까? 그것은 겨자씨 한 알과 같다."
<그 시절이 좋았습니다>
지금은 사라졌지만 한때 저희 수도원 뒷마당에는 꽤 넓은 밭이 자리 잡고 있었습니다. 돌아보니 그때가 참 좋았습니다.
그 밭은 당시 저의 아이들과 수사님들 삶의 일부였습니다. 이른 봄부터 저희는 그곳에 매달렸지요. 땅을 갈아엎고, 이랑을 만들고, 씨를 뿌리고, 모종을 옮겨 심었습니다.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농약도 치고 잡초도 뽑으면서 땀도 많이 흘렸지요.
그 오랜 투자 끝에 가을이 오면 저희 모두는 얼마나 흐뭇해했었는지 모릅니다. 보기만 해도 마음이 풍요로워지던 탐스런 가을의 결실들이 우리를 참으로 행복하게 했습니다.
그러면서 저희는 정말 신기해했지요. 참으로 신비로운 일이었습니다. 봄에는 우리들 눈에 제대로 띄지도 않는 씨앗 하나, 키가 한 뼘도 되지 않던 가냘픈 묘목 하나가 자라고 또 자라서 마침내 우리 키를 넘어섰습니다. 가을이 되면 뒷마당은 얼마나 풍성했었는지, 그 그늘 사이에서 아이들은 숨바꼭질까지 할 정도였습니다.
씨앗의 수백 배 수천 배 크기로 성장한 가지들에서는 어른 주먹보다 더 큰 결실들이 수도 없이 계속 결실을 맺었습니다. 참으로 기적 같은 일이었습니다.
그 좋았던 시절의 가을날들을 떠올리며 우리 인생도 마찬가지로 결실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결실을 거두는 삶, 그 삶이야말로 의미 있는 삶이며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삶입니다. 결국 하느님 나라는 저마다 일생동안 땀 흘려 거둔 결실들을 손에 들고 하느님 안에서 서로 나누는 기쁨의 장이라는 생각도 해봅니다.
풍성한 인생의 결실을 위해 기나긴 겨울날들을 잘 견딜 필요가 있겠습니다. 봄날의 투자도 필요하며, 여름날의 땀은 더욱 중요합니다.
풍성한 결실은 좋은 생각이나 계획만으로는 불가능하지요. 하루 온 종일 빈둥거리며 공상만 하면서 지내다가 최종적으로 우리에게 돌아오는 것은 회색빛 가을뿐입니다.
있는 힘을 다해 달릴 곳을 달린 바오로 사도의 황혼이 그리도 아름다웠던 것처럼 열심히 일하고 잘 견뎌낸 우리의 가을 역시 가슴 설레고 흐뭇한 가을이 될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하느님께서 이 땅에 뿌리신 씨앗들입니다. 수없이 많은 씨앗들이 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엉뚱한 곳으로 날아가 버렸지만, 우리만큼은 주님의 한량없는 자비하심으로 이 땅위에 굳건히 뿌리를 내리게 된 행복한 씨앗들입니다.
비록 우리 눈에 우리 자신들이 비뚤어지고 형편없어 보인다할지라도 하느님 눈에는 너무나도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존재, 가능성으로 충만한 의미 있는 존재임을 기억하는 하루가 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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