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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성 요한 보스코 사제)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1-31 조회수1,623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1월 31일 (토) - 성 요한 보스코 사제 기념일

▣ 성 요한 보스코 (1815-1888)

 

[오늘의 복음] 마르 4,35-41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35) 그 날 저녁이 되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호수 저편으로 건너가자"고 말씀하셨다. 36) 그래서 그들이 군중을 남겨 둔 채 예수께서 타고 계신 배를 저어가자 다른 배들도 함께 따라갔다. 37) 그런데 마침 거센 바람이 일더니 물결이 배 안으로 들이쳐서 물이 배에 거의 가득 차게 되었다. 38) 그런데도 예수께서는 뱃고물을 베개 삼아 주무시고 계셨다. 제자들이 예수를 깨우며 "선생님, 저희가 죽게 되었는데도 돌보시지 않습니까?" 하고 부르짖었다. 39) 예수께서 일어나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향하여 "고요하고 잠잠해져라!" 하고 호령하시자 바람은 그치고 바다는 아주 잔잔해졌다. 40) 그렇게 하시고 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왜 그렇게들 겁이 많으냐? 아직도 믿음이 없느냐?" 하고 책망하셨다. 41) 그들은 두려움에 사로잡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데 바람과 바다까지 복종할까?"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두려움과 고요함의 교차

 

  우리는 지금까지 마르코복음 4장에 기록된 4편의 비유설교를 들었다. 모두가 하느님나라의 신비에 관한 비유였다. 예수님의 도래로 말미암아 하느님나라는 땅에 심겨진 씨앗처럼 아무도 모르게, 그러나 확실하게 그 완성을 향하여 자라나고 있다. 마치 작은 씨앗과도 같이 예수님 안에서, 예수님을 통하여 자라나고 있는 것이다. 하느님나라는 하느님께서 스스로 예수님과 함께 이 땅에 세우시는 나라이며, 그분 스스로가 다스리시는 나라이다. 하느님의 통치가 아들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징을 통하여 드러나며, 거꾸로 이 표징들을 통하여 예수께서는 하느님의 통치를 현존시키신다.

 

  예수께서 행하시는 표징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느님의 통치를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이 마르코는 비유설교에 이어 네 가지 기적사화(4,35-5,43)를 준비하고 있다. 그것은 풍랑을 가라앉힌 기적, 게라사의 악령 들린 사람의 치유한 기적, 하혈병 여인을 고치신 기적, 그리고 회당장 야이로의 딸을 살리신 기적이다. 우리는 복음서에 수록된 기적사화를 크게 치유·구마기적(이적)사화와 자연기적(이적)사화의 두 가지로 나눈다. 치유·구마기적사화는 사람을 병이나 신체의 불편함이나 악령으로부터 구제하는 기적을 보도하는 것이다. 자연기적사화는 죽은 사람이나 사람이 아닌 생물이나 자연물을 대상으로 예수님의 신적(神的) 능력을 드러내는 기적이다. 자연기적사화에 관한 대표적인 예로는 소생(蘇生)의 기적, 빵, 물고기, 포도주의 기적과 물위를 걷는 기적, 풍랑을 잠재운 기적 등이 있다. 그러나 어떤 모양으로든 이러한 기적들이 예수님의 신성(神性)을 증명하려는 수단으로 이해되어서는 안 된다. 예수님의 의도가 그런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사람들로 하여금 기적을 통하여 신성에로의 신앙을 강요하실 의도가 없으셨고, 오히려 함구령을 내려 자신의 신성과 메시아성을 되도록 감추려고 하셨다. 이는 무지하고 단순한 당대의 사람들에게나 비판적이고 과학적인 사고를 탐구의 기본으로 삼는 현대인들에게나 똑같이 적용된다. 예수께서 바라시는 것은 믿음이다. 여기서 믿음은 예수께서 행하시는 기적이라는 사건 속에서 인간과 자연에게 말을 건네시는 하느님의 현존에 대한 수긍이다. 하느님의 세상에 대한 관심과 통치에 대한 믿음인 것이다.

 

  비유설교를 마치신 예수께서 타고 계시던 배를 돌려 호수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셨다. 예수께서 호숫가에 모여든 군중을 배에 앉아 가르치셨던 곳은 가파르나움 근처로 갈릴래아 호수의 북쪽이다. 잠시 갈릴래아 호수에 관하여 살펴보자. 갈릴래아 호수는 그 모양이 고구마 같기도 하고, 구약성서에서는 하프와 비슷한 모양이다 하여 ’긴네렛 호수’(민수 34,11; 신명 3,17; 여호 12,3) 라고 불렀고, 신약시대에 와서는 갈릴래아 호수, 겐네사렛 호수(1마카 11,67; 마태 14,34; 마르 6,53; 루가 5,1)로, 요한복음에서는 티베리아 호수(요한 6,1; 6,23; 21,1)로 불린다. 갈릴래아 호수의 호면은 지중해의 해수면보다 낮은 -212m, 깊이는 50m, 가장 긴 폭은 남북으로 22Km, 동서로 14Km, 둘레는 52Km, 호수면적은 약 170㎢에 달한다. 사람들은 이 호수를 바다라고도 한다. 예수께서 호수의 건너편으로 가신다고 함은 호수 북쪽에서 남쪽이 아니라 동편, 골란 지방을 말한다.(이에 대하여는 다음 복음에서 다루겠다.)

 

  오늘 복음은 이렇게 예수님과 제자들을 태운 배가 호수 동편으로 항해하던 중에 일어난 일이다. 배를 파산직전으로 몰아붙인 세찬 바람과 풍랑은 북쪽 헤르몬산(2,814m)에서 형성된 골란고원에서 불어오는 돌풍으로 갈릴래아 호수에 종종 있는 일이다. 12제자 중에 4명(시몬, 안드레아, 야고보, 요한)은 전직(前職)이 뱃사람들이라 이에 능통했을 일이지만, 다른 제자들에게는 그야말로 풍전등화의 위기였으리라. 돌풍이 몰아치고, 풍랑이 일어 배에 물이 차서 사람의 목숨이 촌각(寸刻)을 다투는데 예수님은 뱃고물을 베개삼아 주무시고 계신다. 지나치게 과장된 표현이지만 난리와 태평, 두려움과 고요함, 불신과 신뢰의 극적인 교차(交叉)를 충분히 실감할 수 있는 장면이다. 예수께서는 마치 마귀가 들린 사람에게서 악령을 쫓아내시듯, 바람과 바다를 향하여 호통을 치셨고, 이에 그들은 잠잠하고 고요해졌다. 예수님의 권위에 바람도 바다도 복종한 것이다. 그러나 막상 중요한 것은 기적보다 제자들에게 ’아직도 없는 믿음’(40절)이다. 같은 배를 탔다면 우리도 그랬을 것이다. 그리 길지는 않지만 막 태동한 그리스도 교회가 바다 위의 배와 같이 돌풍과 풍랑에 시달리는 모습을 마르코복음사가가 미리 내다 본 것일까? 잊지 말아야 할 점은 그 배 안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함께 승선하여 계시다는 것이며, 바람도 바다도 모든 자연도 하느님 통치의 손길 안에 있으며, 이들도 하느님 현존의 공간이라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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