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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주님 봉헌 축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02 조회수1,496 추천수8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2일 (월) - 주님 봉헌 축일

 

[오늘의 복음] 루가 2,22-40 <또는 2,22-32>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22) 그리고 모세가 정한 법대로 정결 예식을 치르는 날이 되자 부모는 아기를 데리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23) 그것은 "누구든지 첫아들을 주님께 바쳐야 한다"는 주님의 율법에 따라 아기를 주님께 봉헌하려는 것이었고 24) 또 주님의 율법대로 산비둘기 한 쌍이나 집비둘기 새끼 두 마리를 정결례의 제물로 바치려는 것이었다. 25) 그런데 예루살렘에는 시므온이라는 사람이 살고 있었다.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게 살면서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에게는 성령이 머물러 계셨는데 26) 성령은 그에게 주님께서 약속하신 그리스도를 죽기 전에 꼭 보게 되리라고 알려 주셨던 것이다. 27) 마침내 시므온이 성령의 인도를 받아 성전에 들어갔더니 마침 예수의 부모가 첫아들에 대한 율법의 규정을 지키려고 어린 아기 예수를 성전에 데리고 왔다. 28) 그래서 시므온은 그 아기를 두 팔에 받아 안고 하느님을 찬양하였다. 29) "주님, 이제는 말씀대로, 이 종은 평안히 눈감게 되었습니다. 30) 주님의 구원을 제 눈으로 보았습니다. 31) 만민에게 베푸신 구원을 보았습니다. 32) 그 구원은 이방인들에게는 주의 길을 밝히는 빛이 되고, 주의 백성 이스라엘에게는 영광이 됩니다." <33) 아기의 부모는 아기를 두고 하는 이 말을 듣고 감격하였다. 34) 시므온은 그들을 축복하고 나서 아기 어머니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이 아기는 수많은 이스라엘 백성을 넘어뜨리기도 하고 일으키기도 할 분이십니다. 이 아기는 많은 사람들의 반대를 받는 표적이 되어 35) 당신의 마음은 예리한 칼에 찔리듯 아플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반대자들의 숨은 생각을 드러나게 할 것입니다." 36) 또한 파누엘의 딸로서 아셀 지파의 혈통을 이어받은 안나라는 나이 많은 여자 예언자가 있었다. 그는 결혼하여 남편과 일곱 해를 같이 살다가 37) 과부가 되어 여든 네 살이 되도록 성전을 떠나지 않고 밤낮없이 단식과 기도로써 하느님을 섬겨 왔다. 38) 이 여자는 예식이 진행되고 있을 때에 바로 그 자리에 왔다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예루살렘이 구원될 날을 기다리던 모든 사람에게 이 아기의 이야기를 하였다. 39) 아기의 부모는 주님의 율법을 따라 모든 일을 다 마치고 자기 고향 갈릴래아 지방 나자렛으로 돌아갔다. 40) 아기는 날로 튼튼하게 자라면서 지혜가 풍부해지고 하느님의 은총을 받고 있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각자에게 주어진 숙제

 

  오늘은 주님성탄대축일로부터 40일째 되는 날이다. 이미 5세기초부터 동방교회는 루가복음의 전사(前史)를 근거로(2,22-40) 모세의 율법이 정하는 성모 마리아의 정결례 축제를 예루살렘에서 지내기 시작하였다. 동방교회는 처음부터 1월 6일에 주님성탄대축일을 지냈기 때문에 정결례 축일은 성탄 후 40일이 되는 2월 14일이었다. 650년경 교황 마르티노 1세가 이 축일을 로마교회에 도입하면서 ’마리아 빛의 축일’로 정하여 2월 14일에 지냈으나, 얼마 후 2월 2일로 변경되었다. 그 이유는 로마교회가 이미 336년경부터 12월 25일에 주님성탄대축일을 지내왔기 때문에 이 날부터 40일째 되는 날이 2월 2일이기 때문이다. 중세기를 거치면서 동방교회는 오늘 축일의 핵심을 ’주님의 성전봉헌’에 맞추어 주님성탄사건을 마무리하는 의미로 거행하는 반면, 서방교회는 초 축성과 촛불행렬을 곁들여 성모 마리아의 축제로 발전시켰다. 서방교회는 이 날 성전에 필요한 초들뿐 아니라 전기가 없던 당시 가정에서 기도를 드릴 때 필요한 초들까지 축성하여 속죄와 참회의 의미로 성대한 촛불행렬을 거행하였다. 1960년 전례개혁을 통하여 오늘 축일의 원초적인 의미에 비중을 실었고, 제2차 바티칸공의회 이후 축일명을 ’주님봉헌축일’로 확정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오늘 축일에 마리아의 자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오늘 복음에서 보듯이 아버지의 집에 봉헌된 아기 예수를 중심으로 그 주위에 마리아와 요셉, 시므온의 예언말씀과 안나의 역할도 상당히 부각된다.

 

  예수가 비록 정상적인 부부관계에서 태어난 아기가 아니라 할지라도 이스라엘의 모든 부모는 첫아들을 하느님께 봉헌해야 하는 봉헌례와 산모의 부정을 벗는 정결례를 치러야 했다. 야훼 하느님께서 사람이든 짐승이든 이집트의 모든 맏배를 죽여버림으로써 이스라엘 백성을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하신 바로 그 날 맏아들과 맏배를 야훼께 물러내는 계명을 내리셨다.(출애 13,1-2.11-16) 모세가 정한 율법에 의하면 그 첫아들은 출생 30일이 되면서부터 회당이나 성전을 찾아가 제관 앞에서 봉헌례를 치러야 하며(민수 18,15-16), 산모는 아들을 낳은 경우에 1주간 부정기간과 33일의 정결기간을 보내고 40일째 되는 날, 딸을 낳은 경우에는 2주간 부정기간과 66일의 정결기간을 보내고 80일째 되는 날 예루살렘 성전에서 1년 된 양 한 마리를 번제물로, 비둘기 한 마리를 속죄제물로 바치는 정결례를 치름으로써 부정을 벗고 정결을 찾아야 했다. 가세(家勢)가 어려우면 비둘기 두 마리만 바칠 수도 있다.(레위 12,1-8).

 

  이에 루가복음사가는 마리아의 정결례와 예수의 봉헌례를 한데 묶어 같은 날에 치러진 사건으로 기록하고 있다.(22-24절) 이는 루가가 이중효과를 노리는 의도로서 예수의 부모가 모세의 율법을 준수하는 동시에 아기 예수를 예루살렘 성전에 등장시킴으로써 예수를 "자기 궁궐(성전)에 나타나는 상전"(말라 3,1)으로 부각시키기 위함이다. 루가는 분명 늘그막에 아들을 얻은 엘카나와 한나가 젖을 뗀 아들 사무엘을 실제로 성전에 갖다 바친 이야기(1사무 1,24-28)를 알고 있었을 것이다. 루가가 보도하는 마리아의 정결례와 아기 예수의 봉헌례는 메시아의 도래를 기다리는 이스라엘에 종지부를 찍는 사건으로 나타난다. 루가의 의도는 마리아의 정결례와 예수의 봉헌례라는 율법준수의 틀을 통하여 예수를 이스라엘이 기다리던 메시아로, 야훼 하느님이 현존하는 예루살렘 성전의 주인으로 현현(Epiphania, 顯顯)하려는 데 있다는 것이다. 예수 현현(顯顯)의 목적은 두 예언자를 통하여 성사된다. 바로 자신을 봉헌하여 밤낮으로 성전에서 기도하며 이스라엘의 구원을 기다리던 예언자 시므온과 안나의 증언을 통하여 예수의 메시아성과 신성을 공적(公的)으로 드러내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예언자 시므온은 첫눈에 아기 예수를 메시아요, 이스라엘과 이방인 모두의 구세주로 알아본다. 물론 시므온의 예지(叡智)는 성령에 의한 것이다.(25절, 27절) 아기 예수를 두 팔에 안아든 시므온의 예언은 하느님께 대한 찬양의 말씀(29-32절)과 마리아에 대한 예언의 말씀(34-35절)으로 짜여 있다. 물론 예언의 전체 내용은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하느님 자신의 계시이다. 따라서 시므온이 자신의 예지를 통하여 예수를 메시아로 통찰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예수를 통하여 메시아로 드러난 것을 자신의 눈으로 본 것이다. 볼 것을 본 시므온은 이제 평안히 눈을 감게 되었고 메시아이신 예수는 이방인의 빛이요 이스라엘의 영광으로 우뚝 서게 된다.

 

  예언녀 안나는 결혼 7년만에 남편을 잃고 84살이 되도록 과부로 지내면서 성전에 몸담아 밤낮 없이 단식과 기도로 하느님을 섬겨온 사람이다. 과부로서의 안나의 삶은 구차하고 가난하기가 이를 데 없었을 것이고 그래서 경건했을 것이다. 가난한 자가 하느님을 먼저 공경하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안나는 오늘을 보기 위해 84년을 기다려 왔다. 안나의 삶은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의 모범이다. 이스라엘의 가난하고 경건한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임박한 메시아의 구원을 기다리고 있었던 자들이다. 안나는 이들을 대표하는 자로 묘사되며 나아가 모든 그리스도교적 과부들의 가난하고 경건한 삶을 이끌 수 있는 모범으로 제시된다. 이러한 그녀가 시므온의 팔에 안겨있는 아기 예수를 메시아로 알아보았고, 시므온의 예언을 밖으로 배달한다. 루가는 안나가 어떤 말로 사람들에게 메시아의 도래를 알렸는지 밝히지 않고 있다. 그것은 시므온의 예언이 어떤 말을 덧붙일 필요 없이 그 자체로 완벽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빛과 영광 속에는 반대와 갈등과 고통이 함께 들어 있다. 예수의 도래로 위기가 세상에 들어왔고 예수에게 이스라엘과 모든 백성들의 운명이 달리게 된 것이다. 예수탄생을 축하하러 왔던 목자들의 말을 이미 마음에 새기고 있던(2,19) 마리아는 오늘 시므온의 예언도 마음 깊이 새기면서 예수와 함께 하는 고통의 길을 걸어갈 준비를 하고 있다. 마리아는 이렇게 자기에게 약속된 놀라운 하느님의 계획을 하나씩 배워하고 깨달아가고 있는 것이다. 마리가 고통을 배우는 숙제를 하는 동안, 예수도 메시아로서의 자의식을 키워가야 하는 숙제를 받았고 세상은 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할 숙제를 받았다. 예수가 하느님의 은총 속에서 육적인 건강과 영적인 지혜를 갖춘(40절) 성인(成人)으로 성장하는 것은 예수 스스로가 메시아임에 대한 인식과 의식의 성장을 의미하듯이 세상 또한 메시아와 그 현존에 대한 자신을 성장시켜야 한다. 그 때까지는 예수도 세상도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 시간은 성령의 시간이다. 성령 하느님만이 예수가 누구인지를 알고 계시며, 성령 하느님만이 예수를 그리스도로 고백하고 또 선포하는 일을 도와주실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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