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전부를 바친 과부의 예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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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정병환 | 작성일2004-02-06 | 조회수1,413 | 추천수12 | 반대(0) 신고 |
.. 어느 날 예수께서는 부자들이 헌금궤에 돈을 넣는 것을 보시고 계셨는데 마침 가난한 과부 한 사람이 작은 동전 두 닢을 넣는 것을 보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이 가난한 과부는 다른 모든 사람보다 더 많은 돈을 넣었다. 저 사람들은 모두 넉넉한데서 얼마씩을 예물로 바쳤지만 이 과부는 구차하면서도 가진 것을 전부 바친 것이다."
돈이 있는 사람은 교회에 다니는데 마음이 활발할 수 있습니다. 하느님께 예물도 넉넉하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조심스런 마음으로 성전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돈이 없기 때문입니다. 시골의 할머니들이 천원을 내는 경우가 있습니다. 천원은 지극히 적은 액수입니다. 이 적은 액수를 하느님께 예물로 드리는 것입니다. 할머니들이 돈을 벌지도 못하고 용돈을 모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돈의 액수로 볼때는 큰 돈이 아니지만 하느님께서 볼때는 귀중한 돈일 것입니다. 부자가 많은 돈중에서 일부를 낸 것과 과부가 없는 데서 전부를 낸 것은 마음의 정성으로 볼때는 과부가 더 많은 예물을 드린 것입니다. 사람은 돈을 좋아하고 돈의 가치를 잘 알기때문에 많은 돈을 낸 사람을 귀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무슨 행사가 있으면 돈을 낸 사람들이 대우를 받습니다. 그러나 하느님은 속 마음을 보시고 정성을 보시기 때문에 사람의 판단과는 달리 정성이 지극한 사람을 더 사랑하실 것입니다. 사람이 겉을 중시할때는 언젠가 낭패를 볼 수 있습니다. 겉은 환경이 바뀌고 사정이 바뀌면 변해버릴 수 있습니다. 다정하게 하던 사람도 멀리하게 되고 많던 사람도 다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속은 환경이 변해도 변치 않고 언제나 다정할 수 있습니다. 가난한 과부는 없는 가운데 전부를 드렸기 때문에 그 마음에 하느님을 사랑하는 진정이 있는 것입니다. 이 과부는 환경이 변해도 사정이 달라져도 변치 않고 하느님을 사랑할 것입니다. 사람을 판단할때 속 마음을 중시해야 할 것입니다. 돈이 없어 예물을 드리지 못하는 할머니들은 마음으로 하느님께 더 간절한 기도를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간절한 호소를 귀담아 들으시고 응답하실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성전을 간소하게 운영하는 것이 좋으리라 봅니다. 하느님을 초라하게 모실 수 없다고 하여 많은 경비를 들인다면 없는 사람들은 부담을 느끼고 신앙을 멀리 할 것입니다. 하느님은 화려한 것보다 진실한 것을 더 좋아하시리라 믿습니다. 천막을 치고 예배를 본다해도 하느님을 진심으로 사랑 한다면 화려한 건물에서 웅장한 예배를 보는 것보다 더 좋아하실 것입니다. 어떠면 하느님은 건물을 중시하지 않으실 수도 있습니다. 건물은 없어도 좋다고 생각하시며 사랑하는 자녀들이 마음편히 살기를 원할 수 있습니다. 사람이 하느님의 마음을 읽는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느님을 초라하게 모셔서는 안되겠지만 하느님을 모시는데 신자들이 부담을 갖어서는 더 안될 것입니다. 마음이 내켜서 많은 예물을 드리는 것은 하느님께서 기뻐 받으시겠지만 내키지도 않는데 의무감으로 내는 것은 기뻐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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