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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 제5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08 조회수1,356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8일 (일) - 연중 제5주일

 

[오늘의 복음]  루가 5,1-11

<그들은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1) 하루는 많은 사람들이 겐네사렛 호숫가에 서 계시는 예수를 에워싸고 하느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다. 2) 그 때 예수께서는 호숫가에 대어둔 배 두 척을 보셨다. 어부들은 배에서 나와 그물을 씻고 있었다. 3) 그 중 하나는 시몬의 배였는데 예수께서는 그 배에 올라 시몬에게 배를 땅에서 조금 떼어놓게 하신 다음 배에 앉아 군중을 가르치셨다. 4) 예수께서는 말씀을 마치시고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 하셨다. 5) 시몬은 "선생님, 저희가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습니다. 그러나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 그물을 치겠습니다" 하고 대답한 뒤 6) 그대로 하였더니 과연 엄청나게 많은 고기가 걸려들어 그물이 찢어질 지경이 되었다. 7) 그들은 다른 배에 있는 동료들에게 손짓하여 와서 도와달라고 하였다. 동료들이 와서 같이 고기를 끌어올려 배가 가라앉을 정도로 두 배에 가득히 채웠다. 8) 이것을 본 시몬 베드로는 예수의 발 앞에 엎드려 "주님, 저는 죄인입니다. 저에게서 떠나 주십시오" 하고 말하였다. 9) 베드로는 너무나 많은 고기가 잡힌 것을 보고 겁을 집어먹었던 것이다. 그의 동료들과 10) 제베대오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도 똑같이 놀랐는데 그들은 다 시몬의 동업자였다. 그러나 예수께서 시몬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너는 이제부터 사람들을 낚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시자 11) 그들은 배를 끌어다 호숫가에 대어놓은 다음 모든 것을 버리고 예수를 따라갔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내적 변화를 요구하는 소명

 

  우리는 지난 연중 제3주일과 제4주일의 복음이었던 ’나자렛 설교’(4,14-30)를 통하여 루가복음사가가 구상하는 특유의 ’시간과 공간개념’ 안에서 예수님의 공생활이 개시되었음을 보았다. 루가의 고유한 시공개념은 예수님의 복음선포가 특정한 시간과 공간 없이 공중을 떠돈다는 것이 아니라, 언제나 바로 그 시간과 그 장소에 항상 현존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예수님의 ’나자렛 설교’ 전반부의 핵심이었다. 설교의 후반부는 하느님나라의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예언자적 운명을 예고하면서, 그 운명이 복음을 대하는 청자(聽者)의 믿음과 불신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보여 주었다. 나자렛 고향사람들이 뻗친 죽음의 손길(4,29)을 벗어나신 예수께서는 갈릴래아 지방 가파르나움을 본격적인 공생활의 무대로 삼으셨다. 거기 회당에서 가르치시고, 마귀를 쫓아내시며, 시몬의 집에 들러 열병을 앓던 장모도 고쳐주셨고, 데려온 온갖 병자들을 치유해 주셨다. 이렇게 예수께서 가시는 그 때와 그 곳에 하느님나라는 실현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4,31-43)

 

  루가복음 5장부터는 예수님의 공적인 가르침과 활동이 더 넓은 차원과 지평으로 펼쳐진다. 오늘 연중 제5주일에 봉독되는 복음은 겐네사렛(갈릴래아, 티베리아) 호숫가에서 군중에게 행하신 가르침과, 현직 어부(漁夫)들인 시몬과 그의 동료들로 하여금 엄청난 고기를 잡게 하신 자연이적(自然異蹟)을 통하여 첫 제자들을 얻으신 제자소명사화를 들려준다. 예수님의 활동무대가 회당에 국한되지 않고 이를 초월하는 이유는 이미 밝혀진 사실이다. 예수께서 언제 어디에 계시던 그분이 계신 바로 그 시각과 그 장소가 구원성취의 시간이요 장소이기 때문이다.(루가 4,21) 예수께서 시몬과 그의 동료(안드레아, 야고보, 요한)들을 첫 제자로 삼으신 소명사화는 공관복음서와 요한복음 모두에 보도되고 있다.(마태 4,18-22; 마르 1,16-20; 루가 5,1-11; 요한 1,35-42) 마르코의 소명사화가 이들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서, 마태오가 이를 그대로 베꼈고, 루가는 마르코의 원전(原典)에 자연이적사화를 곁들였다. 요한은 제자소명사화의 구조와 내용을 전혀 다르게 편집하였고, 오늘 복음의 자연이적사화를 부활하신 예수의 발현사화와 연결시키고 있는 반면(요한 21,1-14), 루가는 이것을 제자소명사화에 연결시킨 셈이다.

 

  루가의 이러한 의도는 일방적으로 예수님에 의해 불림을 받는 마르코에서와는 달리 시몬(베드로)의 역할을 강조하기 위함이다. 예수께서 군중을 향한 가르침을 마치시고 갑자기 시몬을 향하여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쳐 고기를 잡아라"고 하셨다.(4절) 시몬이 예수께 밤새도록 애썼지만 한 마리도 못 잡았다고 응답하였다.(5절) 예수께서는 물풀만 걸려든 빈 그물을 씻고 있는 그들을 보시고 밤새 허탕을 쳤다는 사실을 이미 알고 계셨던 것이다. 그리고 예수와 시몬은 서로 아는 사이다. 예수께서 가파르나움 회당을 나오셔서 곧바로 시몬의 집에 들러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신 일(4,38-39)로 두 사람은 아는 사이가 되었고, 시몬은 예수님의 능력에 이미 사로잡혀 있었던 것이다. 이 부분에서 마르코는 그 순서를 다르게 보도하고 있는 바, 소명사화(1,16-20)가 먼저고 장모치유(1,29-31)는 그 다음이다. 이 점이 바로 마르코에 없는 자연이적 사화를 루가가 곁들인 이유이다. 천직(天職)이 어부였던 시몬이 그렇지 않고서는 예수님의 말을 들을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바로 이런 점이 루가복음의 매력이다. 고기잡이를 주업으로 삼던 어부들이 밤새 허탕친 짓거리를 어느 누가 지시한다고 해서 또 하러 나가겠는가? 어부들은 이미 지쳐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이 시몬에게 ’깊은 데로 가서 또 한번 그물을 던지라’고 명하신 것이다. 얼마 전 자기 장모님을 열병에서 단 한마디의 명령(4,39)으로 고쳐주셨던 바로 그분이 말이다. 시몬은 어차피 허탕칠 것을 뻔히 알면서도 ’선생님께서 말씀하시니’(5절)라는 토를 달고 가서 그물을 쳤다. 결과는 그물이 찢어질 정도로 많은 고기가 걸려들었다. 이 놀라운 사건이 시몬을 다른 차원으로 끌고 간다. 그는 순간 내적 변화를 일으키고 있었던 것이다. 예수님의 능력 앞에 놀라움과 두려움에 휩싸였던 시몬이 예수께 떠나달라면서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한다.(8절) 예수께서는 자신을 죄인으로 고백하는 시몬 베드로를 ’사람 낚는 어부’로 삼으신 것이다. 예수와의 직접적인 대면에서 베드로는 예수께 대한 매혹과 공포를 동시에 경험한다. 이는 신비를 경험한 인간의 통상적인 태도이다. 매혹이 강하면 예수를 따를 것이고, 공포가 강하면 예수를 버릴 것이다. 비록 베드로가 모든 것을 버리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고자 예수를 따라 나섰지만, 매혹과 공포의 양면적 압박은 늘 베드로를 따라다닐 것이다. 신앙이란 아마 매혹과 공포의 양면적 여정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강렬한 내적 변화 없이는 아무도 예수님을 따라 나설 수 없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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