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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또 하나의 세계
작성자이인옥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13 조회수1,355 추천수8 반대(0) 신고

 연중 제5주간 금요일

독서: 1열왕 11,29-32;12,19 ; 복음: 마르 7,31-37

 

작년은 라틴어와 씨름하며 보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새로운 언어를 습득한다는 것이 예상대로 쉽지 않았다. 그러나 외국어 하나를 배운다는 것은 또하나의 세계를 여는 열쇠를 손에 쥐는 것이라는 교수님의 말씀에 고무되어 열심히 공부했다. 정말 새로운 하나의 세계가 열리고 있었다. 어린 아이가 금방 배운 글자를 거리 간판에서 찾아내고 기뻐하듯이 나도 주변에서 라틴어를 하나씩 발견할 때마다(자동차, 의약품 이름에 많다) 즐거움을 느꼈다.

 

생소한 단어들을 카세트 테이프에 녹음하여 차 안에서 듣다보니 처음엔 소음으로 들리던 것들이 하나씩 말이 되어 들리기 시작했다. 중년의 나이로 젊은 학생들과 같이 공부하려면 무조건 귀에 익숙하게 만들어 놓는 것이 최고라는 판단이 맞았다. 소음이 하나씩 말로 자리잡고, 그 말들이 입으로 소리 되어 나올 때까지는 더 많은 시간을 투자해야 하리라.  

 

우리가 어릴 때 모국어를 배울 때도 그랬을 것이다. 눈도 맞추지 못하는 아기를 바라보며 엄마 아빠가 얼마나 많은 말을 하셨을까? 그 생소한 소음들을 말로 알아들을 때까지, 또 그 말을 자기 입으로 소리내어 보기까지 무수한 시간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데 이제 어른이 된 우리는 정말 잘 듣고 잘 말하고 있을까? 의사소통에 지장이 없는데도 왜 가슴이 답답하고 이야기 나눌 친구가 없는가? 왜 하루종일 수다를 떨다 왔는데도 할 말은 하나도 못했다는 생각이 드는가?

 

안소니 드 멜로 신부님은 우리가 남의 말을 듣고 있으면서도 대부분은 이미 자신이 생각한 것을 확인하려 한다는 사실을 지적한다. 그래서 자신의 생각이 맞았다 싶으면 가슴이 시원하고,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 싶으면 가슴이 답답한 것이다. 그래서 ’듣는다는 것’은 단순히 남의 말에 찬성과 반대를 하는 것이 아니라 ’개방된 태도, 어떤 새로운 것을 발견하려는 의지’이고 ’그렇게 듣고 다시 배우는 것이 깨어나는 것’이라고 저서 ’깨어나십시오’에서 이야기한다.

 

그렇다. "열려라!" 외치는 예수님의 말씀이 바로 그 말씀이다. "진리에 대한 개방, 그 결과가 무엇이든 그것이 자신을 어디로 인도하든 상관하지 않는, 자신이 어디로 인도되고 있는지도 모른 채 마음을 여는 것, 그것이 신앙"인 것이다.(깨어나십시오, ’듣고 다시 배우라’에서...)

 

어제 띠로 지방에서의 이방인 여인과의 첫 만남 이후,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역으로 복음을 전파하시고 돌아온 예수님의 외침이 "에파타!"이다. 새로운 세계에 대한 개방적인 태도를 촉구하시는 것이다. 유다인들이 팔레스틴 안에 고집스럽게 묶어두려던 하느님의 자비는 더 넓은 세계로 퍼져나가야한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내 고집, 내 이익, 내 구미에 맞는 하느님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나를 그분의 뜻에 개방하는 것이다. 우리가 만든 하느님! 솔로몬의 우상들보다 더 많은 우상들을 섬기면서도 깨어나지 않을 때, 말을 해도 해도 못알아들을 때, 결국 온전치 못한 왕국, 폐쇄되고 조각난 세계 속에 살 수밖에 없다고 오늘 독서는 가르쳐준다.

 

○ 주님, 저희의 마음을 열어 주시어, 당신 말씀을 귀담아듣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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