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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치릴로와 메토디오)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14 조회수1,279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14일 (토) - 성 치릴로와 성 메토디오 기념일

 

▣ 성 치릴로 (827-869) 수도자와 성 메토디오 (826?-885) 주교

     

  313년 종교의 자유와 함께 로마제국의 국교로 인정받은 그리스도교는 순식간에 로마제국의 영토만큼 교세를 확장하였다. 500~700년경 그리스도교는 이탈리아와 스페인, 그리스와 터키를 중심으로 오늘날 북아프리카, 이집트, 이스라엘, 시리아, 레바논, 알바니아, 불가리아, 루마니아, 유고슬라비아, 헝가리, 오스트리아, 스위스, 남부 독일, 그리고 영국에까지 퍼져있었다. 8세기경 아라비아 전역을 지배한 이슬람교가 서쪽과 북쪽으로 세력을 확장하여 11세기에는 북아프리카와 스페인을, 15세기에는 스페인에서 물러났으나 곧장 옛 동로마 제국의 전지역(헝가리, 그리스, 터키, 크로아티아를 제외한 유고슬라비아)을 이슬람으로 개종시켰다. 395년 로마제국이 동과 서로 분열되고, 451년 칼체돈공의회에서 그리스도의 신성(神性)을 놓고 동·서방의 교부들이 각각 교리상의 이견을 주장하면서 그리스도교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지역적 분열조짐을 보이게 되고, 476년 서로마제국이 멸망하고 동로마제국이 비잔틴제국으로 발전하면서 동·서방 교회는 서로 독자적인 노선을 걷는다. 그러나 전체 교회의 통치는 로마 교황에게 속해 있었다. 8세기경 이슬람교세로 주춤했던 그리스도교는 동유럽 선교를 시작하게 되는데, 860년경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엘 3세(842-867)가 슬라브족 선교를 명하여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를 흑해지역으로 파견한 것이 동유럽 선교의 시작이었다.

 

  오늘 축일의 주인공인 치릴로와 메토디오 형제 성인은 ’슬라브 민족의 선교사’로서 가톨릭교회뿐 아니라 동방정교회, 성공회, 개신교에서도 공경을 받는 성인이다. 치릴로는 827년경, 메토디오는 826년경 그리스의 데살로니카에서 고관의 아들들로 태어났고, 세례명은 동생이 콘스탄티노, 형이 미카엘이었다. 부친의 높은 직위 덕분에 콘스탄티노플에서 훌륭한 교육을 받았고, 둘은 철학과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 등 어학과 원시 슬라브어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860년경 황제의 명을 받고 흑해지역으로 파견된 형제는 수많은 슬라브족을 개종시켰다. 선교 중에 제4대 교황인 클레멘스 1세(88-97)의 유해를 발견하여 로마로 옮기기도 했다. 862년부터 모라비아(현 체코, 슬로바키아) 지역의 선교를 시작하였고, 여기서 오늘날 러시아어의 기초가 되는 슬라브어(일명 ’치릴로식 알파벳’)를 창안하였다. 두 성인은 성서, 전례기도와 전례용어, 종교철학 및 문학서적 등을 슬라브어로 번역하여 보급하면서 그리스도교의 토착화를 시도하였다. 그러나 이 토착화가 문제가 될 줄이야. 독일 바이에른 왕국의 영향을 두루 받으면서 ’독일화’를 염려했던 모라비아 왕과 고관들의 환영을 받은 토착화는 되려 독일과 프랑스 서방교회의 비난을 싸게 된 것이었다. 특히 라틴어 외에 어떤 언어도 전례용어가 될 수 없다고 주장하던 서방교회의 강렬한 비난과 질투를 받으면서 두 성인의 선교여정은 힘들어지기 시작하였다. 독일교회는 급기야 두 형제의 사제서품까지 거절하기에 이르렀다. 교황께 탄원을 올리기 위해 로마를 방문했던 두 형제는 교황 아드리아노 2세(867-872)의 환영과 함께 슬라브어를 전례용어로 인정을 받았다. 교황의 허락으로 로마에서 수도복을 입은 치릴로 성인은 와병으로 50일이 지난 869년 2월 14일 42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고, 유해는 성 클레멘테 성당에 안장되었다.

 

  한편 동생의 임종에서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마태 5,11) 어떠한 역경도 무릅쓰고 슬라브족 선교를 계속할 것을 약속한 메토디오는 로마에서 주교서품을 받고 교황사절이 되어 헝가리의 판노니아로 파견되었다. 독일제국교회의 비난과 방해공작이 계속되는 가운데 메토디오 주교는 남은 16년 동안 자신과 죽은 동생의 의지를 관철시켜나갔다. 아드리아노 교황은 판노니아를 독일교계에서 분리시켜 모라비아와 함께 대교구로 승격시켰고, 메토디오를 모라비아의 벨레라트 대주교로 임명하였다. 한번은 잘쯔부르그의 대주교가 메토디오를 잡아다 독일의 엘방엔에 3년 동안 가두어 두었는데, 교황 요한 8세(872-882)의 중재로 어렵게 풀려나기도 했다. 메토디오 성인은 878년 로마의 서방교부들 앞에서 자신의 토착화사업의 정당성을 피력하기도 했다. 교구로 돌아온 성인은 여전히 독일제국교회와의 투쟁으로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고, 885년 4월 6일 벨레라트 주교좌성당에서 세상을 떠났다. 메토디오 성인의 죽음과 함께 토착화 추종자들은 해체되었으나, 해체된 그들이 보헤미아와 폴란드로 옮겨가 선교를 하였으니, 이 또한 주님의 섭리가 아니겠는가?

 

  요한 8세 교황은 880년 슬라브어 전례를 칭찬하는 자리에서 다음과 같은 유명한 말을 남겼다. "히브리어, 희랍어, 라틴어를 창안하신 우리의 주 하느님 바로 그분께서 또한 다른 언어들을 창안하시어 그로 하여금 당신께 찬미와 영광을 드리게 하셨다." 그러나 얼마 후 스테파노 6세 교황(885-891)은 아쉽게도 슬라브어 전례를 금지시켰다. 1054년 서방교회와 동방교회가 완전히 단절된 이후 오늘 두 성인이 남긴 슬라브어 전례와 토착화작업은 동방교회 안에서 그 빛을 발휘하였다.◆

 

[오늘의 복음]  마르 8,1-10

<군중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1) 그 무렵 사람들이 또 많이 모여들었는데 먹을 것이 없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불러 2) "이 많은 사람들이 벌써 사흘이나 나와 함께 지냈는데 이제 먹을 것이 없으니 참 보기에 안 됐다. 3) 그들을 굶겨서 집으로 돌려보낸다면 길에서 쓰러질 것이다. 더구나 그 중에는 먼데서 온 사람들도 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4) 제자들이 "여기는 외딴 곳인데 이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 빵을 어디서 구해 오겠습니까?" 하고 반문하자 5) 예수께서 "빵이 몇 개나 있느냐?" 하고 물으셨다. 그들이 "일곱 개가 있습니다" 하니까 6) 예수께서는 사람들을 땅에 앉게 하시고 빵 일곱 개를 손에 들고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다음 떼어서 제자들에게 주시며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제자들은 시키시는 대로 나누어주었다. 7) 또 작은 물고기도 몇 마리 있었는데 예수께서는 그것도 축복하신 뒤에 나누어주라고 하셨다. 8) 군중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그리고 남은 조각을 주워 모으니 일곱 바구니나 되었고 9) 먹은 사람은 약 사천 명이었다. 그 뒤 예수께서는 군중을 헤쳐 보내신 다음 10) 곧 제자들과 함께 배를 타고 달마누타 지방으로 가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하느님 자녀로 입적되는 이방인들

 

  오늘 복음은 빵 7개와 물고기 몇 마리로 4,000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인 기적을 들려준다. 이는 마르코복음에 기록된 두 번째 빵의 기적이다. 이 기적은 내용상 약간의 차이는 보이지만 빵 5개와 물고기 2마리로 5,000명 이상의 군중을 먹인 기적(마르 6,32-44)과 같다. 첫 번째 빵의 기적은 4복음서 모두가 전하고 있는 반면(마태 14,13-21; 루가 9,10-17; 요한 6,1-14), 두 번째 기적은 유독 마태오(15,32-39)와 마르코에만 기록되어 있다. 여기서 성서학자들의 의견은 양분된다. 하나는 두 개의 기적이 원래 같은 하나의 사건인데 두 가지 전승으로 계승된 것을 마르코가 적절히 두 곳에 따로 배치하였다고 주장하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원래부터 내용은 비슷하나 두 개의 별개 사건으로 계승되었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전자(前者)의 주장을 따르자면 전승을 이곳에 배치한 마르코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므로 마치 마르코가 빵의 기적을 행한 느낌이 강하게 들것이고, 후자(後者)에 의하면 예수님의 의도를 따르는 것이므로 별 문제가 없게 보인다.

 

  그렇다면 예수님의 의도를 쫓아가 보자. 어제 복음을 통하여 보았듯이 예수께서는 띠로와 시돈을 거쳐 데카폴리스 지방을 두루 선교하시고 마지막에 데카폴리스와 골란 지방이 접경한 갈릴래아 호숫가로 오셨다. 여기서 귀먹은 반벙어리를 고쳐주신 것은 치유이상의 의미를 가지는 것으로서 ’에파타’(열려라)라는 말씀이 이방인선교여행의 결산(決算)이라고 했다. 특히 시로페니키아 여인이 악령 들린 자신의 딸의 치유를 예수께 청하면서 두 사람이 나누었던 대화(목요일 복음)를 다시 한번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예수께서 먼저 말씀하셨다: "자녀들을 먼저 배불리 먹여야 한다. 자녀들이 먹는 빵을 강아지들에게 던져주는 것은 좋지 않다."(7,27) 여인이 지체없이 대답하였다: "선생님, 그렇긴 합니다만 상 밑에 있는 강아지도 아이들이 먹다 떨어뜨린 부스러기는 얻어먹지 않습니까?"(7,28)

 

  예수님의 말씀은 하느님의 자녀로 불림을 받은 유다인들이 먼저 배불리 먹어야 한다는 것인데, 복음에 의하면 유다인들은 이미 한번 배불리 먹었다.(6,32-44) 군중도 훨씬 많았고, 모두가 배불리 먹고 남은 조각을 모아들여 12광주리를 가득 채웠다. 여인은 자신과 이방인들 모두를 ’강아지’로 여겼고, 비록 강아지라 할지라도 자녀들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는 얻어먹는다고 하였다. 이제 이방인들까지도 하느님의 자녀 대열에 세우시려는 예수님은 당연히 이방인들에게도 빵의 기적을 베풀어야 하는 것이다. 비록 그들이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한다 하더라도 그렇다. 유다인들은 물론이거니와 제자들도 빵의 기적을 깨닫지 못했다.(6,52) 그러므로 오늘 빵의 기적은 넓은 의미에서 이방인들의 하느님 자녀로서의 입적(入籍)으로 보아도 무방할 것이다. 먹고 남은 조각은 일곱 바구니에 가득 찼다고 한다. 첫 번째 기적의 12광주리가 이스라엘의 12지파를 의미하는 반면, 7바구니의 ’일곱’은 당시 이스라엘을 둘러싸고 있는 일곱 이방인 나라를 암시하는 것이라 한다. 바구니가 광주리보다 작은 용기인 것을 보면 그래도 예수님의 마음이 이스라엘 쪽으로 기울어져 그들을 더 사랑하고 염려하는 것 같기도 하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인 것은 사흘 동안 변변히 먹지도 못한 사람들을 굶긴 채로 돌려보낼 수는 없다는 예수님의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시는 마음’이 아닌가 싶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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