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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연중6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17 조회수1,355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17일 (화) - 연중 제6주간 화요일

 

▣ 성모의 종 수도회 창설자 일곱 성인 기념

 

  이탈리아에서 정치와 종교의 분쟁이 날로 심각해지고 이로 인해 신자들의 신앙생활이 도덕적으로 피폐해 가고 있던 1225년경 플로렌쯔에서 기이한 일이 일어났다. 잘 되는 상업과 상점들을 그만두고 속속 ’성모 형제회’에 입회한 신심이 깊은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이 바로 1233년 의기투합하여 나중에 ’성모의 종 수도회’를 창설한 7명의 성인들이다. 7성인의 이름은 보니필리우스 모날디, 보나융타 마네티, 마네토 델 안텔라, 아미데우스 아미데이, 후고 리삐-우고치오니, 소스테네오 디 소스테뇨, 그리고 알레씨오 팔코니에리(1200?-1310)이다. 7성인은 1233년 성모몽소승천 축일에 동정 마리아의 환시를 똑같이 체험한 것을 계기로 몬테 세나리오로 이주하여 기도와 고독한 생활을 함께 하였다. 1240년 다시금 마리아의 고통을 환시로 체험한 이들은 ’성모의 종 수도회’를 창설하고 아우구스티노 수도회의 규율을 따랐다. 이 수도회의 기본정신은 자신을 거룩하게 하여 백성들을 거룩한 길로 인도하는 것이었고, 성자 예수와 성모 마리아의 고통 묵상하고 관상하는 것을 그 도구로 삼았다. 창설회원 중 알레씨오를 제외하고는 모두 사제서품을 받았고, 1304년 교황 베네딕토 11세가 이 수도회를 공식적으로 인가할 때 생존한 창설회원은 알레씨오뿐이었다. 그는 110살까지 장수하다 1310년 2월 17일에 세상을 떠났다. 7명의 창설자는 1888년 교황 레오 13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오늘날 성모의 종 수도회는 온 유럽과 남아프리카, 호주, 그리고 아메리카에 퍼져있다.

 

[오늘의 복음]  마르 8,14-21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14) 제자들이 잊어버리고 빵을 가져오지 못하여 배 안에는 빵이 한 덩어리밖에 없었다. 1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누룩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여라" 하고 경고하시자 16) 제자들은 "빵이 없구나!" 하며 서로 걱정하였다. 17) 예수께서 그 눈치를 알아채시고 이렇게 말씀하셨다. "빵이 없다고 걱정들을 하다니, 아직도 알지 못하고 깨닫지 못했느냐? 그렇게도 생각이 둔하냐? 18) 너희는 눈이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느냐? 벌써 다 잊어버렸느냐? 19) 빵 다섯 개를 오천 명에게 나누어 먹였을 때에 남아서 거두어들인 빵 조각이 몇 광주리나 되었느냐?" 그들은 "열두 광주리였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0) 또 "빵 일곱 개를 사천 명에게 나누어 먹였을 때에는 남은 조각을 몇 바구니나 거두어들였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들이 "일곱 바구니였습니다" 하고 대답했다. 21) 예수께서는 "그래도 아직 모르겠느냐?" 하고 말씀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13개의 입에 한 덩어리 빵의 걱정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예수를 시험하여 하늘의 표징을 요구하자 예수께서는 탄식에 찬 어조(語調)로 "이 세대에 보여 줄 징조는 하나도 없다"(8,12)고 말씀하시고는 즉시 달마누타(8,10)를 떠나 배에 오르셨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함께 배를 타고 가는 제자들에게 배 위에서 하신 말씀이다. 이른바 선상(船上)에서의 설교라고 할 수 있겠다. 그러나 오늘의 설교는 제자들에 대한 경고와 질타를 내용으로 삼고 있다.

 

  배 위에서의 상황은 제자들이 배를 탈 때 먹을 빵을 한 덩어리밖에 챙겨오지 못했던 것으로 설명된다. 상황이야 어쨌든 예수께서는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고 경고하신다. 누룩은 원래 부패에 대한 은유로 유다와 헬라 사회에 통용되었다. 누룩은 반죽에 침투하여 전부를 변화시키는 속성을 가지고 있다. 루가는 바리사이의 누룩만을 말하는데(12,1) 마르코는 헤로데의 누룩을 덧붙였다. 예수께서는 헤로데 일당을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위험스런 존재들로 보시는 것이다.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갖지 못하는 불신상태를 그들의 누룩속성에 비유한 것이다. 그런데 우이독경(牛耳讀經)인가? 제자들은 ’빵이 없다’며 서로 걱정한다. 사실 그랬을 것이다. 4,000명의 군중을 배불리 먹이고 7광주리의 빵 조각을 남긴 기적(8,1-9) 후에 예수의 일행이 곧 배를 타고 달마누타로 갔다. 거기서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시험과 요구를 물리치고 즉시 배를 타고 떠나게 되었으니 빵을 챙길 시간이 없었을 것이 아니겠는가. 그러나 예수께서는 걱정하는 제자들을 질타하신다. 그들이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하고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여 아직 아무 것도 알아듣지도 깨닫지도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사실 예수께서 지금까지 제대로 된 믿음을 가지지 못한 제자들을 나무랄 만 하다. 우매한 군중들, 백성의 지도자들, 바리사이와 율사들, 예수의 친인척과 고향사람들은 제쳐두고라도 제자들이 아직까지 믿음을 가지지 못한 것은 심히 이상한 일이다. 이렇게 믿음의 길이 멀고도 험한 것인가? 그러나 제자들의 불신은 다른 여느 불신과는 다르다. 비록 제자들이 오늘 배 위에서 13개의 입에 한 덩어리의 빵을 놓고 걱정했지만, 그들이 아직 알지 못하는 ’생명의 빵’이 그들 곁에 계시다는 것이다. 한 덩어리의 빵보다 훨씬 더 중요한 것은 ’살아 있는 생명의 빵’(요한 6,27)이다. 이 빵은 영원한 생명을 주는 빵이다. 언젠가는 제자들도 예수께 대한 굳건한 믿음을 가지게 될 것이다. 그들은 믿음 때문에, 또 예수 때문에 자신의 전부인 생명까지도 바칠 것이다. 그 때까지는 시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복음은 믿음의 그 과정을 우리에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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