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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6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18 조회수1,590 추천수15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18일 (수) - 연중 제6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르 8,22-26

<소경은 눈이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2) 예수의 일행이 베싸이다에 이르렀을 때에 사람들이 소경 한 사람을 예수께 데리고 와서 손을 대어 고쳐주시기를 청하였다. 23) 예수께서는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신 다음 "무엇이 좀 보이느냐?" 하고 물으셨다. 24) 그러자 그는 눈을 뜨면서 "나무 같은 것이 보이는데 걸어다니는 걸 보니 아마 사람들인가 봅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25) 예수께서 다시 그의 눈에 손을 대시자 눈이 밝아지고 완전히 성해져서 모든 것을 똑똑히 보게 되었다. 26) 예수께서는 "저 마을로는 돌아가지 마라" 하시며 그를 집으로 보내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영적인 혜안(慧眼)을 주시려는 예수

 

  예수와 일행을 태운 배가 베싸이다에 도착했다. 베싸이다는 북쪽의 요르단강이 갈릴래아 호수로 흘러드는 동쪽 호숫가에 위치한 어촌으로서 베드로와 안드레아와 필립보의 고향(요한 1,44)이다. 예수께서는 베싸이다에서 많은 기적을 베풀었지만 이곳 사람들이 회개하지도 예수를 믿지도 않았기 때문에 가파르나움과 코라진과 함께 불행을 선언 받은 마을이기도 하다.(마태 11,21) 오늘 복음은 이곳 베싸이다에서 소경을 치유한 이적사화를 들려준다. 그런데 이 소경치유기적은 어제 복음과 상당한 관련이 있음에 유의해야 한다. 많은 기적들 중에 단순한 하나의 기적으로 볼 수 있는 소경치유를 마르코가 굳이 이곳에 배치하였는지 하나씩 짚어보자.

 

  우선 마르코복음을 펼쳐 예수님의 ’물위를 걸으시고 풍랑을 그치게 하신 기적사화’(6,45-52)를 되살펴 보아야 한다. 이 이야기는 5,000명을 먹인 빵의 기적 직후 예수께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호수의 북동쪽 베싸이다로 먼저 가게 하신 것으로 시작된다. 그 동안 예수께서는 산에 올라가 기도하셨다. 그런데 얼마 후 제자들은 역풍을 만나 배를 젓느라고 심한 고생을 한다. 결국 배는 방향을 잃고 호수 위를 맴돌게 된다. 이를 보신 예수께서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다가가 "나다, 겁내지 말고 안심하여라" 하시며 배에 오르시자 풍랑이 그쳤던 것이다. 와중에 제자들은 스승을 유령으로 착각하고 비명을 지르며 놀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이 때도 제자들은 기적의 의미를 깨닫지 못하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일은 그러는 동안에 배가 베싸이다가 아닌 호수의 북서쪽 겐네사렛 마을에 이르렀던 것이다. 이 또한 제자들의 영적(靈的) 맹인상태를 암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어제 복음에서 보았듯이 제자들은 선상(船上)에서 스승의 꾸지람을 들었다. 달마누타에 도착하자마자 다시 배를 타고 떠나야 했던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도 못하고, 바리사이와 헤로데의 누룩을 조심하라는 경고의 말씀도 흘려듣고 턱없이 모자라는 빵 걱정을 하고 있었던 제자들이다. 그들에게 스승은 "너희는 눈이 있으면서도 알아보지 못하고 귀가 있으면서도 알아듣지 못하느냐?"(8,18)고 질타하셨다. 생명의 빵이신 주님을 곁에 두고 일용할 양식을 걱정하는 제자들에게 진정 주님을 제대로 볼 수 있는 영적(靈的)인 혜안(慧眼)이 없었던 것이다. 따라서 오늘 소경의 치유에는 또 한번 제자들의 영적 맹인상태를 지적하는 마르코의 편집의도가 담겼다고 하겠다.

 

  맹인을 치유하는 과정에서 예수께서는 상당히 예외적인 수고를 하신다. 소경의 손을 잡고 마을 밖으로 데리고 나가서 그의 두 눈에 침을 바르고 손을 얹으시는(23절) 수고는 다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 다른 때 같으면 말씀만으로도 단번에 치유하셨을 그분께서 이런 수고를 하신 후에 "이제 보이느냐?"가 아니라 "무엇이 좀 보이느냐?"(23절)고 물으신 것을 생각해 보라. 치유된 소경에게 "저 마을(베싸이다)로는 돌아가지 마라"(26절) 하시고 집으로 돌려보내신 이유는 또 무엇일까? 예수께 대한 믿음에 단계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단계가 참으로 어려운 과정이라는 말이다. 예수의 말씀과 업적을 놓고 영적인 혜안을 얻는다는 것은 그만큼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마을로 가서 개안(開眼)을 자랑할 것이 아니라 ’집으로’ 돌아가 그 경위를 정리하고 묵상하며 그분께 감사를 드리며 기도해야 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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