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인간의 끝은 하느님의 시작이다.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19 조회수1,570 추천수14 반대(0) 신고

               

             

                         

                      나다, 두려워할 것 없다!

                      요한 복음 6, 20

               

            송봉모 토마스 모어 신부님의 <광야에 선 인간>중에서

            예수회/서강대학교 신학대학원장

             

            광야란 생의 조건이 결여되어 아무도 살 수 없는 곳이다. 이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살아간다. 황량하고 고통스럽고 힘겨운 곳. "불뱀과 전갈이 우글거리고 물이 없어 타는 곳"(신명 8,15)이 광야이다. 그러한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살아간다. 도저히 인간이 살아갈 수 없는 곳에서 이스라엘이 살아간다. 그래서 광야는 신비의 장소이다. 우리 또한 삶의 무게와 고통에 짖눌려 살아간다. 그래도 죽지않고 살아간다. 바로 이 점, 죽지 않고 살아간다는 사실이 신비이다.

             

            광야는 두 얼굴을 가진 장소이다. 한편에서는 힘겨움. 황량함. 외로움 등 생명의 위협을 느끼게 하는 고통의 얼굴을 보이는 장소요, 다른 한편에서는 놀라운 섭리와 보살핌이라는 얼굴을 보이는 장소이다. 야곱의 후손들은 광야에서 고통과 보살핌의 두 얼굴을 체험한다. 갈증과 배고픔 앞에서 그리고 다른 부족들의 침략 앞에서 멸망할 위기에 놓이지만 하느님 덕분에 생명을 부지한다. 하느님께서는 물이라고는 없는 광야에서 물이 샘솟게 하시고, 먹을 것이 전혀 없는 광야에서 만나와 메추리를 주시고, 아말렉족의 침략에서 지켜주신다. 우리의 광야 역시 두 가지 얼굴을 보여준다. 한편에서는 고통의 얼굴을, 다른 한편에서는 보살핌의 얼굴을 보여준다.

             

            두 얼굴을 보여주는 광야에서 어떤 얼굴을 쳐다보느냐에 따라 우리 생명의 존망이 달려있다. 고통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절망하고 하느님을 원망하게 될 것이요, 보살핌의 얼굴을 쳐다본다면 하느님은 우리를 도우실 것이다.

             

            위기라는 말은 ’위험’과 ’기회’라는 두 글자가 합성된 것이다. 그러므로 위기(危機)의 때는 전환의 때이다. 어느 쪽을 택하느냐에 따라 살 수도 있고 죽을 수도 있다. 갈림길에 서 있는 순간이 바로 위기의 순간이다.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위기의 순간에 위험을 택한다는 것이요, 보살핌의 얼굴을 본다는 것은 기회를 택한다는 것이다. 모든 위기는 파국으로 끝나지 않고 기회라는 씨앗을 그 안에 내포하고 있다. 이 진리를 명심한다면 우리는 어떤 절망스런 처지에서도 일어날 수 있다. 우리를 힘겹게 만드는 삶일지라도 전환의 기회로 변용시킬 수 있다.

             

            광야에서 고통의 얼굴을 바라보기보다 하느님의 돌보심의 얼굴을 바라본다는 것은 하느님만이 강하다는 것. 하느님만이 나를 이 광야에서 해방의 땅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분이라는 것을 고백하는 것이다. 하느님만이 강하다는 것을 고백할 때 하느님은 우리를 도와주실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는 "인간의 끝은 하느님의 시작이다. 인간의 절망이 하느님의 기회다." 라고 말한다. 하느님만이 나를  이 시련의 시기에서 구원해 줄 유일한 분이라고 고백할 때, 그리고 내 안에는 더이상 버틸 힘이 없다고 고백할 때, 바로 그 순간에 하느님은 우리의 힘이 되어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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