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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연중6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19 조회수1,344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19일 (목) - 연중 제6주간 목요일

 

[오늘의 복음]  마르 8,27-33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사람의 아들은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아야 한다.>

 

  27)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 있는 마을들을 향하여 길을 떠나셨다. 가시는 도중에 제자들에게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더냐?" 하고 물으셨다. 28) "세례자 요한이라고들 합니다. 그러나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언자 중의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하고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29)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예수께서 다시 물으시자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30) 그러자 예수께서는 자기 이야기를 아무에게도 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31) 그 때에 비로소 예수께서는 사람의 아들이 반드시 많은 고난을 받고 원로들과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버림을 받아 그들의 손에 죽었다가 사흘만에 다시 살아나시게 될 것임을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셨다. 32)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명백하게 하셨던 것이다. 이 말씀을 듣고 베드로는 예수를 붙들고 그래서는 안 된다고 펄쩍 뛰었다. 33) 그러자 예수께서는 돌아서서 제자들을 보신 다음 베드로에게 "사탄아, 물러가라.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는구나!" 하시며 꾸짖으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베드로의 남은 숙제

 

  오늘 복음은 예수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27-30절)과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31-33절)에 관한 대목으로서 곧 있게될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9,2-29)의 도입부 역할을 한다. 이에 관한 기사는 공관복음 모두에 실려있다. 공관복음서는 베드로의 신앙고백에서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 사건까지 같은 순서를 따르고 있는데, 그 순서는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 ->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 -> ’예수 추종의 길’ -> ’종말의 시기에 관한 토막어’ ->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 사건’이다.(마태 16,13-17,9; 마르 8,27-9,10; 루가 9,18-9,36)

 

  베싸이다에서 소경을 치유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을 데리고 곧장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으로 길을 떠나셨다. 가이사리아는 헤로데 대왕의 아들 헤로데 필립보가 헤르몬 산맥의 지하수가 샘솟는 곳을 골라 기원전 2년경 건설한 도시로서 갈릴래아 호수에서 북쪽으로 약 40Km 지점에 위치하고 있다. 소경의 치유를 통하여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영적 혜안(慧眼)을 주신 것일까? 가이사리아로 향하는 길목에서 당신의 정체에 관한 질문을 던지신다. 이 질문은 마치 하나의 필기시험과도 같은 것이다. 제자들이 3년 가량 따라 다니면서 보고, 듣고, 느낀 것을 근거로 ’예수가 누구인지’를 답하라는 것이다. 예수의 정체에 대한 질문은 두 단계로 구성되어 있다. 예수께서는 우선 사람들이 당신을 누구라고 생각하는지에 대하여 물으신다. 세례자 요한을 목베어 죽였던 헤로데 안티파스는 예수를 ’되살아난 요한’(마르 6,16)으로 착각하는 정신분열증을 보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엘리야, 예레미야, 또는 다른 예언자로 여기는 등 예수의 정체에 대한 분분한 의견을 보였다. 다음으로 제자들을 향하여 질문하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이 질문에 제자단의 대표격인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은 그리스도이십니다"(29절)하고 대답한다. 마태오복음에서는 ’살아 계신 하느님의 아들 그리스도’(16,16)로, 루가복음에는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9,20)로 고백하는 반면, 마르코복음에는 단순히 ’그리스도’로 돼있다. 하여간 공관복음서의 공통고백은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시다’는 것이다. 그리스도란 ’도유(塗油)된 자’로서 메시아를 뜻한다.

 

  베드로의 신앙고백에 예수께서는 즉각 이 사실을 아무에게도 발설하지 말라고 ’단단히 당부’ 하신다.(30절) 마태오복음에도 함구령이 붙어있지만(16,20), 그 사이에 베드로의 고백에 대한 예수님의 평가와 찬사, 그리고 세 가지 약속을 첨가하였다. 이는 마태오 자신의 독자적인 편집임이 확실하다. 함구령 다음에 이어지는 대목은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에 관한 예고와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이다.(31-33절) 예수께서는 많은 고난을 받고 죽임을 당할 것, 그리고 사흘만에 부활하실 것을 예언하신다. 많은 고난과 죽음에는 치욕적인 놀림과 침 뱉음과 채찍 등이 포함되어 있다.(마르 10,34; 14,65; 요한 18,22) 그런데 이에 대한 베드로의 반응은 지나치게 예민하다. 그는 스승을 붙들고 펄쩍 뛰었다. 베드로의 과민반응에 대한 예수님의 태도 또한 준엄하기 이를 데 없다. 베드로를 물러가야 할 ’사탄’이라 꾸짖으신 것이다. 그런데 이 질타의 말씀은 베드로가 ’사탄’이라기보다는 그의 마음속에 들어있는 사탄을 향한 것으로 봄직하다. 그 사탄이 ’하느님의 일은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만 생각하기’(33절) 때문이다.

 

  오늘 복음의 전체적인 이해를 필기시험과 실기시험이라는 개념으로 시도해 보자. 베드로의 고백은 필기시험으로 볼 때 100점이다. 예수님께서 달리 채점하지는 않았으나 예수정체에 대한 정답으로 간주된다. 예수님의 수난예고를 제자들이 함께 겪어야 할 실기시험으로 본다면, 베드로는 0점을 맞은 것이다. 필기 100점과 실기 0점의 현저한 편차는 중간에 삽입된 ’함구령’으로 풀어야 한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아직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제자들이 [예수님 = 그리스도 + 고난과 죽음과 부활]의 도식을 깨닫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즉, 베드로가 내어놓은 정답이 고난과 죽음을 반영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수난예고에 대한 베드로의 지나친 반응은 그의 마음속에 있는 (사탄의) 생각을 드러낸 것이었다. 이 생각이 겉으로 정확한 고백(필기 100점)을 실제로는 형편없는 고백(실기 0점)으로 만들어버린 것이다. 이제 마음속의 사탄을 몰아내고 진정한 그리스도로서의 예수정체를 깨달아야 하는 것은 베드로의 인생숙제가 되었다. 베드로는 자신의 남은 생애를 통하여 이 숙제를 풀어야 하는 것이다. 나아가 이 숙제는 우리들에도 똑같은 비중으로 주어져 있을 것으로 믿는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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