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 (연중6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21 조회수1,366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21일 (토) - 연중 제6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마르 9,2-13

<예수의 모습이 제자들 앞에서 변하였다.>

 

  2) 엿새 후에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 그 때 예수의 모습이 그들 앞에서 변하고 3) 그 옷은 세상의 어떤 마전장이도 그보다 더 희게 할 수 없을 만큼 새하얗고 눈부시게 빛났다. 4) 그런데 그 자리에는 엘리야가 모세와 함께 나타나서 예수와 이야기하고 있었다. 5) 그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을 모시고 하나는 모세를, 하나는 엘리야를 모셨으면 합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6)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겁에 질려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 7) 바로 그 때에 구름이 일며 그들을 덮더니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8) 제자들은 곧 주위를 둘러보았으나 예수와 자기들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9) 산에서 내려오시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라" 하고 단단히 당부하셨다. 10)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두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서로 물어보다가 11) 예수께 "율법학자들은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고 하는데 어떻게 된 일입니까?" 하고 물었다. 12)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과연 엘리야가 먼저 와서 모든 것을 바로잡아 놓을 것이다. 그런데 성서에 사람의 아들이 많은 고난을 받고 멸시를 당하리라고 한 것은 무슨 까닭이겠느냐? 13) 너희에게 말해 두거니와, 사실은 성서에 기록된 대로 엘리야는 벌써 왔었고 사람들은 그를 제멋대로 다루었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거룩한 변모의 현장체험  

 

  오늘 마르코복음(9,2-13)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을 전해주고 있다. 이 복음은 매년 8월 6일 ’주님 거룩한 변모 축일’의 나해에 봉독되는 복음과도 같다. 참고로 이 축일의 복음으로 가해에는 마태오복음(17,1-9)을, 다해에는 루가복음(9,28-36)을 듣게 된다. 우리는 주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이 사실상 베드로의 신앙고백으로부터 준비된 사건임을 보았다. 다시 한번 떠올려 보면 베싸이다의 소경치유(8,22-26), 베드로의 메시아 고백(8,27-30), 수난과 부활에 대한 첫 번째 예고(8,31-33), 예수추종의 길(8,34-37), 종말사건에 관한 소개(8,38-9,1)를 통하여 오늘 변모사건에 도달하게 된 셈이다.

 

  마태오복음과 루가복음도 위의 순서를 따르면서 주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에 접근하고 있다. 물론 접근 순서는 같지만 그 내용은 조금씩 다르다. 오늘 거룩한 변모에 관한 복음도 그렇다. 마태오는 마르코의 원전(마르 9,2-10)을 베끼면서 베드로와 제자들의 위상(位相)에 흠집이 날만한 구절들, "베드로는 다른 제자들과 함께 겁에 질려서 무슨 말을 해야 좋을지 몰라 엉겁결에 그렇게 말했던 것이다"(6절)와 "제자들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었다. 그러나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다는 말씀이 무슨 뜻인지 몰라서 물어 보았다"(10절)는 부분을 삭제해 버렸다.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께서 베드로, 야고보,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 자신의 변한 모습(얼굴과 옷)을 보여주었다고 하는데, 루가는 이들을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고,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모습이 변했다고 기록함으로써 저자 특유의 의도를 살리고 있다.

 

  예수께서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으로 가는 길목에서 베드로의 ’메시아’ 신앙고백을 받았으나 그 고백이 겉으로는 장황하나 속으로는 형편없음을 보았다. 이어진 수난예고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진정한 예수추종과 제자의 길을 훈시하셨다. 이제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신다. 이 산이 어떤 산을 말하는지 정확하지는 않다. 지금까지 학자들간에는 타보르산(Har Tabor)으로 통했다. 그러나 타보르산은 나자렛 동쪽, 갈릴래아 호수 남서쪽에 위치한 588m의 야산에 불과하다. 혹자는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도시가 갈릴래아 호수 북쪽 40Km 지점에 위치하여 있으나 ’엿새’(2절)라는 시간 동안 충분히 남쪽으로 이동할 수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는 지나친 추정이다. 하여 오늘날에는 가이사리아에 가까운 북쪽의 헤르몬산(2814m)이나 그 산맥에 속하는 어느 산으로 보는 것이 통설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자신의 신적 영광을 보여 주신다. 이 영광을 체험할 수 있는 특권은 특별히 뽑힌 베드로, 야고보, 요한에게만 허락되었다. 예수께서는 인간의 말씀으로만 가르치시는 것이 아니라 말씀하신 내용을 실제로 보여주신다. 말하자면 예수께서 이론적 가르침을 뒤받침 할만한 일종의 산 체험이나 견학 내지는 실습을 준비하신 것이다. 세 명의 제자들은 자신의 눈으로 보고(거룩하게 변한 예수님의 얼굴과 옷), 자신의 귀로 들으면서("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잘 들어라") 예수에게 감추어진 신적 품위를 얼마동안 향유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도 이미 거룩한 산에서 하느님의 영광을 체험한 사람들이다.(출애 33,18-23; 1열왕 19,9-13) 이들에게 이스라엘 백성들은 큰 믿음의 빚을 졌다. 그러나 구름이 일자 그들은 사라지고 예수님만 남게 된다. 구름 속에서 들려오는 (하느님의) 말씀은 예수님만이 하느님의 사랑 받는 아들이며, 제자들은 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로써 예수님은 구약의 모든 율법(모세)과 예언(엘리야)의 성취자로 계시되며, 세상 끝날까지 예수님 홀로 제자들이 들어야 하는 주님으로 계시된 셈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부활할 때까지는 철저하게 함구(緘口)되어야 하는 것이다. 함구의 이유는 예수님의 계시가 인간의 언어로 이야기되어야 할 것이 아니라, 참다운 제자 됨의 추종으로 살아야 하고 증거되고 체험되어야 하기 때문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