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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 (폴리카르포 주교)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23 조회수1,366 추천수16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23일 (월) - 성 폴리카르포 주교 순교자 기념

 

▣ 성 폴리카르포 (69? - 155/156)

 

  소아시아 스미르나의 주교였던 성 폴리카르포는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35?-117?)와 함께 2세기초 그리스도교의 중요한 인물이다. 사도 성 요한의 제자로 알려진 폴리카르포는 제자로 후일 리용의 주교 성 이레네오(135-202)를 두었다. 요한묵시록(2,8-11)에 의하면 사도 요한이 폴리카르포를 스미르나의 주교에 임명한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폴리카르포는 주님의 제자를 목격한 마지막 증인으로 간주된다. 안티오키아의 성 이냐시오가 순교를 택하여 로마로 압송되어 가던 116년경 소아시아 교회들에 보낸 7통의 편지 중 2통이 박해받는 스미르나 교회와 폴리카르포 주교에 보내진 것이었다. 성인은 이방인들 사이에도 ’아시아의 선생’, ’그리스도인의 아버지’, ’잡신(雜神)들의 파괴자’로 불릴 만큼 명성이 높았고, 박해로 말미암아 흔들리고 쪼개진 당시 교회에 꼭 필요한 ’화염 속의 바위와 같은 강건한 믿음’의 모범을 보였다. 당시 교회의 모든 이 때문에 성인은 스미르나의 경기장에 끌려가 배교를 강요받았다. 그 자리에서 성인은 "내가 86년 동안 섬겨오는 동안 그분은 한번도 나에게 고통을 주지 않았다. 오히려 나를 구원하신 임금을 어떻게 모독하겠는가?" 하고 말했다. 그리고 남아 있는 신자들에게 아직 여린 그리스도교의 성장을 위하여 순교를 각오하고 믿음을 굳건히 가질 것을 당부하였다. 성인은 갖은 모욕과 고문 끝에 화형을 선고받았다. 군인들이 장작 위에 성인을 묶어놓고 불을 집혔으나 불이 성인을 죽이지 못해 단도로 성인의 가슴을 찔러 죽였다고 한다.

 

[오늘의 복음]  마르 9,14-29

<주님,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14) 그들이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와 보니 제자들이 큰 군중에게 둘러싸여 율법학자들과 말다툼을 하고 있었다. 15) 사람들은 예수를 보자 모두 놀라서 달려와 인사를 하였다. 16) 예수께서 그들에게 "무슨 일로 저 사람들과 다투고 있느냐?" 하고 물으시자 17) 그들 가운데 한 사람이 나서서 "선생님, 악령이 들려 말을 못하는 제 아들을 선생님께 보이려고 데려왔습니다. 18) 악령이 한번 발작하면 그 아이는 땅에 뒹굴며 거품을 내뿜고 이를 갈다가 몸이 빳빳해지고 맙니다. 그래서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악령을 쫓아내 달라고 했더니 쫓아내지 못했습니다" 하였다. 19) 예수께서는 "아, 이 세대가 왜 이다지도 믿음이 없을까! 내가 언제까지 너희와 함께 살며 이 성화를 받아야 한단 말이냐? 그 아이를 나에게 데려오너라" 하셨다. 20) 그들이 아이를 예수께 데려오자 악령이 예수를 보고는 곧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키게 했다. 그래서 아이는 땅에 넘어져 입에서 거품을 흘리며 뒹굴었다.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아이가 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되었느냐?" 하고 물으시자 그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어렸을 때부터입니다. 22) 악령의 발작으로 그 아이는 불 속에 뛰어들기도 하고 물 속에 빠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래서 여러 번 죽을 뻔하였습니다. 선생님께서 하실 수 있다면 자비를 베푸셔서 저희를 도와주십시오." 23) 이 말에 예수께서 "’할 수만 있다면’이 무슨 말이냐? 믿는 사람에게는 안 되는 일이 없다" 하시자 24) 아이 아버지는 큰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 하고 청하였다. 25)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몰려드는 것을 보시고 더러운 악령을 꾸짖으시며 "말을 못하게 하고 듣지 못하게 하는 악령아, 들어라. 그 아이에게서 썩 나와 다시는 들어가지 마라" 하고 호령하셨다. 26) 그러자 악령이 소리를 지르며 그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켜놓고 나가버렸다. 그 바람에 아이가 죽은 것같이 되자 사람들은 모두 "아이가 죽었구나!" 하고 웅성거렸다. 27) 그러나 예수께서 아이의 손을 잡아 일으키시자 그 아이는 벌떡 일어났다. 28) 그 뒤 예수께서 집으로 들어가셨을 때에 제자들이 "왜 저희는 악령을 쫓아내지 못하였습니까?" 하고 넌지시 물었다. 29) 예수께서는 "기도하지 않고서는 그런 것을 쫓아낼 수 없다" 하고 대답하셨다.◆

†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복음산책]  기도는 하느님의 일을 만드는 조건이며 상태이다.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에 이어 악령이 들려 말을 못하는 아이를 치유한 기적을 들려주는 대목으로서 공관복음 모두에 기록되어 있다.(마태 17,14-21; 루가 9,37-43) 그러니까 필립보의 가이사리아 지방에서 시작한 베드로의 메시아고백부터 오늘 복음의 기적까지가 공관복음의 공통된 내용인 셈이다. 아울러 오늘 기적은 예수께서 갈릴래아 활동기(마태 4,12-18,35; 마르 1,12-9,50; 루가 4,14-9,50) 중에 행하신 마지막 기적이다. 보다시피 마르코복음은 갈릴래아 활동기의 마지막 기적을 대단히 상세하고 장황하게 서술하고 있는 반면 마태오와 루가는 분량을 대폭 줄였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는 것(9,2)은 주지의 사실이다. 예수께서 자신의 거룩하게 변한 영광스러운 모습을 따로 데리고 간 3명의 제자들에게만 보여 주시는 동안 다른 9명의 제자들은 군중과 함께 산 아래에 있었을 것이다. 예수께서는 3명의 제자들에게 목격한 것을 자신이 계실 때까지는 절대 함구해야 한다는 명을 내리고 산 아래로 내려와 다른 제자들이 있는 곳으로 왔다. 마침 제자들이 군중에 둘러싸여 율법학자들과 논쟁을 벌이고 있었다(14절)고 한다. 연유인즉 예수께서 따로 산에 계시는 동안 남은 제자들에게 한 아버지가 악령이 들려 말을 못하는 아이를 데려와 고쳐달라고 청하였던 모양인데 제자들의 능력이 그 요구에 미치지 못하였던 것이다. 사유를 알게 된 예수께서 제자들과 군중과 율법학자들 모두를 포함한 이 세대에 믿음이 없음을 통탄하셨다.(19절) 모두에게 믿음이 없음을 나무라신 것이다. 사람들이 예수께 아이를 데려오자 아이를 사로잡고 있던 악령이 먼저 예수를 알아본다. 예수께 대한 악령의 인식은 아이에게 심한 발작을 일으킨 것으로 나타난다. 아이의 아버지가 예수께 ’하실 수 있다면’(22절) 하는 단서를 붙이고 치유를 청한다.

 

  조건부 청원에 예수께서 믿음만 있다면 만사형통이라고 하신다. 여기서 믿음의 중요성을 재삼 깨달을 수 있다. 아이의 아버지가 큰 소리로 "저는 믿습니다. 그러나 제 믿음이 부족하다면 도와주십시오"(24절)하고 청했다. 이에 예수께서 큰 호령과 함께 아이를 치유해 주셨다. 사람들이 다 떠나고 예수의 일행이 집에 들어갔을 때 제자들이 자기들에게 기적의 능력이 없는 이유를 물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가 없었기 때문’이라고 대답하셨다. 이 대목에서 마태오는 제자들의 ’약한 믿음’을 이유로 들면서, 겨자씨 한 알만한 믿음만 있다해도 그 믿음이 산을 옳길 수 있는 효과를 낸다고 하였다.(마태 17,20) 이 대목에서 마태오가 마르코와는 달리 ’기도’ 대신에 ’믿음’을 언급한 이유는 병든 아이의 아버지가 지닌 부족한 믿음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즉, 부족하나마 믿음이 있는 사람에게는 기적이 가능하다는 것을 마태오가 강조하고 있다는 말이다. 그렇다면 마르코의 ’기도’에 머물러 보자. 여기서 ’기도’라는 요소가 언뜻 보기에 전체문맥에 잘 어울리지 않게 보인다. 왜 예수께서는 오늘 구마치유기적의 마지막에 가서 ’기도’를 언급했을까? 마르코에 의하면 예수께서 기도하지 않는 자는 기적을 행할 수도 바랄 수도 없다는 식의 의도를 가진 것이 분명하다.

 

  마르코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 기적을 행하시는 도중에 기도하신 일은 두 번 인데, 빵을 손에 들고 하늘을 우러러 감사의 기도를 드리신 것이다.(6,41; 8,6) 그 외에도 예수께서는 자주 한적한 외딴 곳이나 산에서 기도하셨고(1,35; 6,46), 잡히시던 날 밤에 게쎄마니 동산에서 친히 아버지께 기도하셨고, 제자들에게도 깨어 기도하도록 권유하셨다.(14,37-39) 이렇게 볼 때 기도는 예수님의 일상(日常)에 속하며, 모든 가르침과 행적 아래 기도의 힘이 깔려 있음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예수께서는 ’기도’없이 아무 것도 하시지 않았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기도는 사실 어떤 ’힘’이라기보다는 어떤 ’조건’이나 ’상태’이다. 다시 말해서 기도는 무엇을 행할 수 있는 ’힘’이라기보다, 하느님께서 무엇을 하실 수 있도록 우리가 준비하는 ’조건’이며 ’상태’인 셈이다. 그러므로 기도는 곧 믿음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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