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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재의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2-25 조회수2,507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 2월 25일 (수) - 재의 수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6,1-6.16-18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1) "너희는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선행을 하는 일이 없도록 하여라. 그렇지 않으면 하늘에 계신 아버지에게서 아무런 상도 받지 못한다." 2) "자선을 베풀 때에는 위선자들이 칭찬을 받으려고 회당과 거리에서 하듯이 스스로 나팔을 불지 마라.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3) 자선을 베풀 때에는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여 4) 그 자선을 숨겨두어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5) "기도할 때에도 위선자들처럼 하지 마라. 그들은 남에게 보이려고 회당이나 한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다 들어주실 것이다." 16) "너희는 단식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침통한 얼굴을 하지 마라. 그들은 단식한다는 것을 남에게 보이려고 얼굴에 그 기색을 하고 다닌다. 나는 분명히 말한다. 그들은 이미 받을 상을 다 받았다. 17) 단식할 때에는 얼굴을 씻고 머리에 기름을 발라라. 18) 그리하여 단식하는 것을 남에게 드러내지 말고 보이지 않는 네 아버지께 보여라. 그러면 숨은 일도 보시는 아버지께서 갚아주실 것이다."◆

 

[복음산책]  자선은 사랑을, 기도는 신뢰를, 단식은 겸손을...

 

  오늘은 사순시기(40일간)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다. 가톨릭교회가 1년 주기로 편성한 전례주년의 중심은 예수님의 부활이다. 부활대축일은 ’춘분(3월21일)이 지나 만월(음력 15일) 다음에 오는 첫 주일’이다. 한 해의 부활대축일이 정해지면, 사순시기(총40일)의 시작인 ’재의 수요일’이 계산된다. 재의 수요일은 부활대축일에서 거꾸로 46일째 되는 날이다. 이는 사순시기 중 6번의 주일(부활기념)을 제외하기 때문이다. 죽음에서 생명으로 넘어가는 ’파스카 사건’을 내용으로 한 주님부활대축일 한 해 전례력의 중심이라면 부활의 준비기간 또한 이에 못지 않게 중요하다. 부활은 그저 이루어진 사건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사순절(Quadragesima)은 부활을 향한 주님의 고통과 수난, 그리고 십자가 죽음이 집약된 기간이다. 부활이 구원의 절정이라면 사순절은 그 구원의 과정이다. 성서적 의미를 풍성히 담고 있는 ’40일’(창세 7,4; 출애 24,18; 여호 5,6; 1열왕 19,8; 1사무 17,16; 요나 4,4; 마르 1,12)은 참회와 속죄, 회개와 화해, 보속과 준비의 상징이다. 그러므로 사순절에는 비신자들이 입교성사를 준비하고, 신자들이 세례를 갱신하며, 자선과 기도와 단식 및 금육의 애덕실천을 통하여 하느님 구원신비의 절정인 파스카를 준비하는 것이다.

 

  오늘 미사전례 중에는 참회의 상징으로 재를 축복하여 머리에 받는 예식에서 ’재의 수요일’이란 이름이 생겼다. 이 재는 지난 해 주님수난성지주일에 축복하여 십자가에 끼워 두었던 나뭇가지를 태워 얻은 것이다. 오늘부터 사제는 회개와 속죄의 상징인 보라색 제의나 예절영대를 착용한다. 복음 후 강론이 끝나면 사제는 재를 축복하여 자신도 머리에 받고, 이어 신자들의 머리에 얹으면서 "사람아, 너는 흙에서 왔으니,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을 생각하라"(창세 3,19참조)라고 말한다. 눈을 감고 가만히 생각해 보자. 내가 흙에서 와서 다시 흙으로 다시 돌아갈 것이거늘 무슨 말이 더 필요하겠는가? 아무리 생각해도 흙밖에 되지 않는 내가 이렇듯 살아있는 생명으로 느껴진다는 사실이 하느님의 은총이 아니겠는가?

 

  사순절을 시작하는 첫 날에 봉독되는 복음은 산상설교의 중반부이다. 예수께서는 산상설교의 첫 부분을 통하여 도래한 하느님 나라에 통용될 새로운 ’의로움’을 조직적으로 선포하셨다.(6개의 대당명제: 5,21-48) 대당명제는 구약의 율법에 대한 예수님의 새로운 해석으로 피력되었으며, 이 새로운 해석은 율법주의적 사고방식을 깨뜨리고 율법의 참된 정신을 밝히는 것이었다. 이는 곧 법의 형식논리를 넘어 법의 정신을 추구하는 것이며, 구약의 가장 중요한 십계명의 범주 안에서 계명자체를 사로잡는 계명정신에 기반을 둔 새로운 ’의로움’을 요구하는 것이었다. 이 요구는 하느님의 완전성(完全性)을 닮아 가는 것(48절)으로 요약되었다.

 

  오늘 복음에는 자선(慈善)과 기도(祈禱)와 단식(斷食)이 무엇보다 중요한 신앙인 모두의 성덕으로 제시된다. 그렇다고 자선과 기도와 단식이 완전히 새로운 것은 아니다. 이는 이미 유대교 안에서 널리 수행되었던 덕목(德目)들이며, 예수님 당대에는 특히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선행(善行)을 쌓을 목적으로 사용했던 수단들이다. 자선과 기도와 단식에 대하여 예수께서 가르치시는 새로움은 무엇인가? 일단 이러한 선행(善行)을 수행함에 있어서 ’일부러 남에게 보이기 위한 목적’(1절)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자신의 선행이 일부러 남들이 보는 앞에서 수행되거나, 남으로부터 인정을 받는 그 자체가 이미 상(償)을 받은 것으로 간주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償)을 받기 위해서는 다음 선행지침을 엄수(嚴守)해야 한다. 즉, ’자선을 베풀 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할 것’(3절)이며, ’기도할 때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 할 것’(6절)이고, ’단식할 때 얼굴을 깨끗이 하고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할 것(17절)’이다. 그러면 다른 사람은 보지 못했다 하더라도 숨을 일까지 모두 보시는 하느님께서 보답해 줄 것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내리시는 선행지침을 글자그대로 따르라는 것은 아니다. 문제의 핵심은 모든 선행이 사람의 인정을 얻기 위한 목적으로서가 아니라 숨을 일도 다 보시는 하느님을 지향하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사람이 자선과 기도와 단식 등의 선행을 행하면서 다른 사람으로부터 칭찬이나 인정을 받고싶어하는 마음은 인간의 본성에 속한다. 자신의 선행을 남들이 알아줄 때 기분 나빠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그것으로 받을 상을 다 받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하느님께서 주시는 상이란 무엇일까? 그것은 자선을 통하여 사랑을, 기도를 통하여 신뢰심을, 단식을 통하여 겸손을 선물로 받게 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느님을 향한 자선과 기도와 단식은 무엇보다도 속죄의 힘을 가진다. 부디 속죄와 보속으로 은혜로운 40일이 되도록 노력하자. 사순절은 주님의 수난과 죽음을 단순히 연구하고 사색하는 기간이 아니다. 동감하고 이에 동정을 표하는 기간도 아니다. 그리스도의 모범을 우리의 표양으로 삼고 그것을 사는 기간이다. 나의 잘못들을 뉘우치며, 회개하고 실제로 그 잘못으로부터 돌아서는 기간이다. 꾸준한 반복을 통하여 그 분의 법과 정신을 따라 사는 배움의 기간인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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