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잊혀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05 조회수1,563 추천수10 반대(0) 신고

 

 "너희가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보다 더 옳게 살지 못한다면 결코 하늘나라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     (마태오 5, 20)

 

율법학자들이나 바리사이파 사람들과 같이 살아가고 있는 자신의 내면을 바라봅니다. "순간  순간을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고 있는 것이 아니라, 나의 이상, 나의 생각, 자존심, 욕구, 나의 상식 등에 메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느님의 뜻과 영광을 위하여" 살아가야 된다는 것을 이성으로는 알고 있지만 실천하며 살아간다는 것은 얼마나 어려운지요?

 

나에게는 관대한 기준의 잣대로, 다른 사람에게는 엄격한 기준의 잣대를 적용시켜왔던 일도 많았습니다.

 

100년만의 3월 폭설이 내렸던 어제, 평소에 존경하며 많은 도움을 받아왔던 신부님께 인사를 드리려 성당으로 찾아뵈었습니다. 성당의 주차장이 없는 것 같아 골목의 거주자 지정 주차장에 주차를 하였습니다. 지정 주차장이 아닌 곳에 불법주차를 하지 않기 위해, 제 딴에는 퇴근 시간 전 까지는 괜찮겠지 라고 생각하고 연락처를 남겨 놓는 것을 깜박 잊었습니다.

 

설사 연락처를 남겨두었다고 해도 신부님을 뵙는 동안 핸드폰을 꺼놓고 있었기 때문에 소용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오후 5시 30분경에 차를 견인해 갔다는 쪽지가 붙어 있었습니다.

 

느긋하게 마음을 먹고, 눈 내린 풍경을 감상하면서 내려오는 길에 함지박에 들러 짜장면까지 사먹고, 마을버스, 전철, 택시를 바꿔 타며 차량 보관소에 가던 중 기사 아저씨에게 “부자 동네는 다르네요.” 하였더니 “부자가 괜히 되나요?” 라고 하셨습니다. 서초 견인차량 보관소에서 차를 찾아가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하필이면 골라서 어려운 코스를 택한 것 같았습니다. 한남대교 인터체인지에서 올림픽대로를 타는 진입로에서 강적을 만났습니다. 약간의 경사가 있는 오르막 커브길에서 봉고차가 미끄러지고 올라가지를 못해 급기야는 사람들이 내려서 밀기도 하며 통과를 시켰습니다.

 

여러 대의 차량들이 목적지를 향해 가던 것을 포기하고 한강공원에 차를 주차시키고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것을 선택하기도 하였지만, 저는 혼자 무서워서 그렇게도 못하고 설사 이대로 길에서 밤을 새우게 되어도 할 수 없는 일이다 라며 무작정 기다렸더니 마침내 올림픽 대로에 진입하게 되었습니다.

 

빙판길을 달리면서 제가 할 수 있었던 것은 묵주기도였습니다. 미끄러질까봐 떨었다면 더 어려웠을 것입니다. 성모님께 도우심을 청하며 침착하게 달렸습니다. 옆에서 달리던 차량이 미끄러지기도 하고 제 차도 몇 번 미끄러져가며 집에 도착한 것은 11시경이었습니다.

 

차가 견인 되었던 것은 어찌 되었던 제 불찰이었습니다. 연락처를 남기고 핸드폰을 진동으로 해놓았더라면 방지될 수도 있는 일이었습니다. 제 삶에서 이와 같이 영적인 면을 “괜찮겠지” 하며 부주의하게 살아갈 때, 이와 같이 호된 어려움을 당할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화 데레사 성녀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아무쪼록 작은 모래알이 언제나 자기가 있어야 할 곳,

                   즉 모든 사람의 발아래 있기를....,

                   모래알이 원하는 것은 오직 하나

        ‘잊혀지고 아무것도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 것!’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만은 보아 주셨으면 합니다.“

                                                  <빈손>에서 발췌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이 자기 자신만을 내세웠던 것하고는 사뭇 다릅니다. 저 엮시 이들과 같이 자신을 버리기가 무척 힘듭니다. “내가 무시당했다.”“나는 아무것도 아니다.” 라며 고통스러워합니다. 물론 하루아침에 마음이 바뀌고 변화되는 것은 아니고 끊임없이 깨닫고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께서 변화시켜 주시리라 믿습니다.

 

“주여 받으소서, 나의 자유와 기억과 이해와 의지를”  

 

눈 내린 날의 추억은 이것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신부님을 찾아뵙기 전에 힘든 일이 있어서 전화로 의논을 드린 일이 있었습니다. 전화를 드렸던 날 몸져 누었다가 그 이튿날 일어나기도 힘든 상태 이었는데 의외로 마음이 가라앉고 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신부님께 “기도해 주셨지요?” 라고 여쭈어 보았더니 “너무 힘들 것 같아서 기도해 주셨다”라고 하셨습니다. 측은해 하시며 기도해 주신 것을 하느님께서 들어주신 것입니다.

 

저도 이 사랑의 빚을 어려움 중에 있는 이웃을 위해 기도함으로서만이 갚을 수 있다고 느꼈습니다.

 

주님, 함박눈이 나뭇가지에 쌓인 것이 아름답습니다. 저도 당신께서 허락하신 이 고통을 통해 당신앞에 서는 날 아름다운 영혼으로 서게 하소서!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