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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사순 제2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07 조회수1,393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3월 7일 (일) - 사순 제2주일 (다)

 

[오늘의 복음]  루가 9,28b-36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였다.>

 

  28) 이 말씀을 하신 뒤 여드레쯤 지나서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과 야고보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으로 올라가셨다. 29)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났다. 30) 그러자 난데없이 두 사람이 나타나 예수와 함께 이야기하고 있었다. 그들은 모세와 엘리야였다. 31) 영광에 싸여 나타난 그들은 예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고 하시는 일 곧 그의 죽음에 관하여 예수와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32) 그 때 베드로와 그의 동료들은 깊이 잠들었다가 깨어나 예수의 영광스러운 모습과 거기 함께 서 있는 두 사람을 보았다. 33) 그 두 사람이 떠나려 할 때 베드로가 나서서 "선생님, 저희가 여기서 지내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희가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선생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습니다" 하고 예수께 말하였다. 무슨 소리를 하는지 자기도 모르고 한 말이었다. 34) 베드로가 이런 말을 하고 있는 사이에 구름이 일어 그들을 뒤덮었다. 그들이 구름 속으로 사라져 들어가자 제자들은 그만 겁에 질려버렸다. 35) 이 때 구름 속에서 "이는 내 아들, 내가 택한 아들이니 그의 말을 들어라!"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36) 그 소리가 그친 뒤에 보니 예수밖에는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복음산책]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

 

  해마다 사순 제1주일의 복음으로 예수님의 세례직후 광야에서의 유혹사건(마태 4,1-11; 마르1,12-15; 루가 4,1-13)이 봉독되듯이, 오늘 사순 제2주일의 복음은 예수님의 거룩한 변모사건(마태 17,1-9; 마르 9,2-10; 루가 9,28-36)에 관한 내용이다. 물론 ’주님의 거룩한 변모 축일’(8월 6일)을 별도로 두어 기념하지만, 사순 제2주일은 수난과 고통의 한가운데 영광의 모습이 함께 있음을 가르쳐 준다. 공관복음 모두가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영광스러운 변모사건은 그 도입부분 또한 같은 맥락으로 짜여져 있다. 필립보의 가리사리아 지방에서 있었던 예수께 대한 베드로의 신앙고백과 예수님의 첫 번째 수난예고의 말씀이 그것이다.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느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하느님께서 보내신 그리스도이십니다"(9,20) 하고 정확한 신앙을 고백했다. 베드로의 메시아 신앙고백이 겉으로는 틀림이 없으나 충분하지 못하다는 것을 아신 예수께서는 그 자리에서 단단한 함구령을 내렸다. 그리고는 처음으로 수난과 죽음을 예고하셨다. 주의할 점은 수난과 죽음의 고통 속에 부활의 씨앗이 싹트고 있음이 함께 언급되었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의 거룩한 변모사건이 바로 고통으로 엮어진 예수부활의 열매를 미리 맛보여주는 사건이다. 사건의 전모(全貌)는 공관복음 모두가 그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오늘 루가복음에만 마태오와 마르코에 없는 다섯 가지 특이한 점이 발견된다. ① 마태오와 마르코가 별다른 이유 없이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을 따로 데리고 높은 산으로 올라가셨다고 하는 반면, 루가는 예수께서 세 제자를 데리고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다(28절)고 함으로써 산에 올라간 이유를 밝히고 있다. ② 따라서 루가는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에’(29절) 그 모습이 변하고 옷이 눈부시게 빛나기 시작했다고 전한다. ③ 루가는 거룩히 변모한 예수께서 그 자리에 나타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나눈 이야기의 내용을 밝히고 있다. 그것은 예수께서 머지않아 예루살렘에서 이루시려는 죽음에 관한 일(31절)이었다. ④ 마태오와 마르코는 예수님의 모습이 처음부터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변한 것으로, 루가는 예수께서 기도하시는 동안 제자들은 깊은 잠에 들었다가 깨어난 후에 예수님의 거룩한 모습을 목격한 것으로 전한다. ⑤ 사건이 종료되고 산에서 내려오는 길에 ’사람의 아들이 죽었다가 다시 살아날 때까지는 지금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마태 17,9; 마르 9,9)는 단호한 함구령이 루가복음에는 빠져 있고, 단지 ’제자들은 아무 말도 못하고 자기들이 본 것을 얼마 동안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다’(36절)고 기록하고 있는 점이다.

 

  위의 다섯 가지 차이점은 루가복음사가 단독의 편집의도 때문으로 추정된다. 루가의 편집의도에 따르면 예수의 거룩한 변모는 기도로써 시작되었고, 그 동안 제자들은 기도하지 않고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잠을 자고 있었으니 예수께서 모세와 엘리야와 함께 무슨 이야기를 나누었는지를 알 수 없었다. 때문에 잠에서 깨어난 제자들의 눈앞에 펼쳐진 상황은 딴 세상의 광경일 수밖에... 베드로가 무슨 소린지 자기도 모르고 초막 셋을 운운한 것은 마태오·마르코에서와 비교하면 그 질(質)이 다르다. 둘 다 같은 내용이지만 마태오와 마르코에서는 두 눈 똑바로 뜨고 목격한 광경에 대한 반응이요, 오늘 루가복음에서는 이를테면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소리’인 셈이다. 따라서 루가는 마태오와 마르코에 들어 있는 예수님의 단호한 함구령을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었던 것이다. 그들이 무엇을 보았는지 얼마 동안 파악조차 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36절)

 

  오늘 복음은 사순시기에 꼭 필요한 기도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고 있다. 수난과 죽음이라는 쓰고 고달픈 고통의 길을 가면서도 예수께서는 고통으로 엮어 가는 부활의 영광을 기도하는 모습 속에 담아 주셨다. 깊은 잠에 빠졌다가 깨어난 베드로가 자신의 눈앞에 펼쳐진 엄청난 광경의 뜻의 제대로 파악할 수 없었듯이 기도하지 않고는 부활의 기쁨과 영광을 받아들일 수 없다. 부활이 와도 그것이 무엇인지를 깨닫지 못하는 것이다. 인간은 본성적으로 기도하는 존재라고 한다. 그런데도 인간은 기도하기를 게을리 한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요리조리 피하다가 더 이상 이유를 달 수 없는 처지에 이르면 기도하게 된다. 그러나 그 때는 많이 늦다. 인간은 오직 하느님 안에서 자신의 완성을 추구할 수 있을 뿐이다. 미구에 맞이할 우리의 부활을 생각한다면 사순절은 그래서 기도해야 하는 이유를 충분히 주고 있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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