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사순2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09 조회수1,717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4년 3월 9일 (화) - 사순 제2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23,1-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

 

  1) 그 때에 예수께서 군중과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2)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자리를 이어 율법을 가르치고 있다. 3) 그러니 그들이 말하는 것은 다 실행하고 지켜라. 그러나 그들의 행실은 본받지 마라. 그들은 말만 하고 실행하지는 않는다. 4) 그들은 무거운 짐을 꾸려 남의 어깨에 메워주고 자기들은 손가락 하나 까딱하려 하지 않는다. 5) 그들이 하는 일은 모두 남에게 보이기 위한 것이다. 그래서 이마나 팔에 성구 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매달고 다니며 옷단에는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닌다. 6) 그리고 잔치에 가면 맨 윗자리에 앉으려 하고 회당에서는 제일 높은 자리를 찾으며 7) 길에 나서면 인사받기를 좋아하고 사람들이 스승이라 불러주기를 바란다. 8) 그러나 너희는 스승 소리를 듣지 마라. 너희의 스승은 오직 한 분뿐이고 너희는 모두 형제들이다. 9) 또 이 세상 누구를 보고도 아버지라 부르지 마라. 너희의 아버지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 한 분뿐이시다. 10) 또 너희는 지도자라는 말도 듣지 마라. 너희의 지도자는 그리스도 한 분뿐이시다. 11) 너희 중에 으뜸가는 사람은 너희를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12)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진다."◆

 

[복음산책]  구약을 파기하고 그 관계자를 제거하는 작업

 

  마태오복음 21장부터는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가 보도된다. 갈릴래아 활동(4,12-18,35)을 접고, 예루살렘 상경기(19,1-20,34)를 거쳐, 수많은 군중의 환호와 갈채를 받으며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께서는 곧바로 성전을 정화하셨다(21,12-17). 예수님의 예루살렘 활동기가 화려한 입성과 성전정화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상당한 의미를 제공한다. 예루살렘 활동기는 예수님 생(生)과 가르침(복음선포)의 마감을 의미하며, 구약에 대한 궁극적인 종지부를 의미한다. 특히 성전정화사건은 구약의 모든 제사, 즉 구약의 제관과 제단과 제물을 파기하는 사건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구약제사의 파기를 통하여 신약의 제사를, 즉 예수님 스스로가 제관이요 제단이요 제물이 되시는 새로운 제사의 제정을 목전에 두고 계시는 것이다. 따라서 예루살렘 활동기는 예수께서 구약의 제사를 파기하고 새로운 신약의 제사를 제정하시려는 의도에 따라 연구되어야 하는 것이다.

 

  구약의 제사를 파기하기 위해서는 우선 구약의 제의(祭儀)를 파기해야 하며, 이스라엘의 대사제와 제관, 율법학자와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모든 조직과 기능과 사상 등을 전체적으로 와해(瓦解)시켜야 하며, 나아가 그 사람들까지 제거해야 한다. 그래서 예루살렘 활동기 안에는 예수님의 과감한 파기와 제거작업이 담겨져 있는 것이다. 지금껏 서서히 준비되어 온 이 작업이 본격적인 궤도에 오르게 된 셈이다. 파기와 제거작업에는 심한 반대와 갈등과 논쟁이 따르기 마련이며, 파기하고 제거하지 못하면 스스로 파기되고 제거되는 법이다. 이 법칙을 예수께서도 잘 알고 계신다. 허나 그분은 당신의 길을 포기하시지 않을 것이다. 이미 성전정화사건 때문에 예수의 이런 권한을 놓고 대사제들과 백성의 원로들과 심한 논쟁이 있었다.(21,23-27) 이어지는 ’두 아들의 비유’,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 ’혼인잔치의 비유’들(21,28-22,14)과 세금논쟁(22,15-22)과 부활토론(22,23-33)은 모두가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지도층 인사들을 단죄하기 위한 목적으로 언급하신 것들이다. 또한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로서 사랑의 이중계명을 새롭게 선포하여(22,34-40) 신약의 유일한 계명으로 제시하셨다. 나아가 예수께서는 자신이 육(肉)으로는 다윗의 자손이지만 영(靈)으로는 다윗이 이름 불러 칭송했던(시편 110,1) 주님이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유다교의 공적 지도자들 앞에서 계시하셨다.(22,41-46) 이 계시는 더 이상 양보할 수 없는 예수님의 마지막 자기계시이다.

 

  구약의 파기와 제거작업은 유다교의 지도층인 대사제와 바리사이들과 율법학자들에 대한 총체적이고 직접적이고 노골적인 질책으로 전개된다. 그들이 총체적으로 예수님의 질책을 받아야 하는 이유는 그들이 모세의 율좌(律座)에 앉아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는 막중한 권한을 소유하고 있으면서도 정작 행동은 말과는 달랐기 때문이다. 그들은 율법의 근본정신은 저버리고 태만하였으며 권위를 과시하고 남에게 과도한 짐만 지우는 "위선자"들이었다. 아직은 아니지만 곧 예수님의 입술에 "위선자"라는 단어가 오르게 될 것이며, 이들에 대한 불행이 선포될 것이다.(23,13-33) 사실 마태오복음 23장은 이들에 대한 책망과 불행선언으로 가득 차 있다.

 

  구약의 파기와 그 관계자들의 제거를 위한 작업으로 제시되는 책망은 거꾸로 우리에게 적용된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오늘 복음은 유다교의 지도층을 포함한 군중과 제자들을 향한 말씀이지만 유다교의 지도층을 간접적으로 책망하는 내용이다. 그러나 동시에 오늘날 우리 교회의 지도층에 만연한 바리사이적 조직과 기능과 태도를 책망하는 말씀임을 깊이 깨달아야 한다. 오늘 복음에서와 같이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모세의 율좌에 앉아 율법을 가르치고 해석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말만하고 실행하지 않았으며, 무거운 짐을 백성에게만 지우고 자신은 손가락하나 까딱하지 않았고, 이마나 팔에 성구(聖句)넣는 갑을 크게 만들어 달고 옷단에도 기다란 술을 달고 다니며 잔치에서 맨 윗자리와 회당에서 제일 높은 자리를 즐겨 찾았고, 거리에서 인사받기를 좋아하며, 사람들로부터 스승이다, 지도자다 하는 말을 즐겨 들으려 하였다. 따라서 오늘날 우리는 그렇게 하지도 되지도 말아야 하는 것이다. 우리의 진정한 스승과 지도자는 그리스도 예수 한 분뿐이시며, 믿는 이들은 모두 한 형제자매이다. 으뜸가는 사람일수록 섬기는 사람이 되어야 하며, 자신을 낮추어 타인을 섬길 때야 비로소 참으로 높은 자가 되는 것이다. 신약의 교회에는 예수 그리스도 외에 어떤 스승도 지도자도 없다. 권위도 없다. 있다면 오로지 직분(職分)과 섬김과 봉사만 있을 뿐이다. 하느님의 말씀에 봉사하는 사람은 늘 "누구든지 자기를 높이는 사람은 낮아지고, 자기를 낮추는 사람은 높아질 것이다"는 성구(聖句)를 자신에게 매어두어야 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