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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그 외국인 노동자는 왜 웃었을까?
작성자황미숙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11 조회수1,484 추천수12 반대(0) 신고

               

               

              2004년 3월 9일 사순 제 2주간 화요일 독서中

              착한 길을 익히고 바른 삶을 찾아라.

              억눌린 자를 풀어 주고, 고아의 인권을 찾아 주며,

              과부를 두둔해 주어라. < 이사야서 1, 17 >

             

            저는 지난 월요일, 명동 성당 사순절 특강에 참석하기 위해 6시 미사에 늦지 않을려 총총히 명동 들머리 입구에 들어서면서 부터 그 곳 들머리 불법 체류 외국인 노동자들의 천막에 자연스레 시선이 쏠리기 시작했답니다. 며칠 전 백년 만에 처음이라는 폭설도 내렸고 아침 저녁 아직은 일교차가 심해 옷을 더 두툼히 챙겨입지 않았음을 약간 후회하면서 외국인 노동자들의 천막을 보는 순간 문득 제 옷깃을 스치는 3월의 꽃샘 추위가 무척 매서움을 새삼 느낄 수 있었답니다. 석양이 지는 초저녁, 모든 이들이 자신의 보금자리와 사랑하는 이들이 기다리고 있을 따스한 곳을 향해 발길을 서두르는 시간에 그 분들은 멀리 타지에서 향수와 재정적인 궁핍 그리고 일자리에 대한 불안감 그리고 손에 쥔 것도 별로 없이 코리안 드림을 접어야하는 미래에 대한 불확실성으로 명동 성당 들머리에 와 있는 그 분들을 대했을 때 제 자신 한국인으로서 그리고 신앙인으로서 부끄러움과 자괴감이 들었답니다.

             

            천막에 붙어있는 외국인 노동자들의 구호성 문귀들을 새삼 주의깊게 읽으며 들머리를 올라가는데 돌 층계에 몇 몇 동남 아시아계 외국인 노동자들이 차디찬 돌 바닥에 그냥 털썩 웅크리고 주저 않아 있더군요. "저 분들에게 지금 우리나라의 3월 꽃샘 추위는 얼마나 매섭고 추울까? 아니 그 보다도 더 그 분들의 마음은 얼마나 외롭고 서글프고 고달플까? 오늘 점심은 먹었을까? 또, 곧 저녁을 지을 시간인데 변변찮게 식사는 할 수 있을까? 지금 저기 저렇게 털썩 주저 앉아 있는 저 외국인 노동자들의 주머니에는 현금은 얼마나 있을까? 몇 만원...? 몇 천원...? 혹은 몇 백원, 짤랑..짤랑..? 아니면 그냥 먼지...?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난 혹 저 분들이 꿈꾸며 찿아왔던 코리안 드림의 드림 랜드에 살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지금 이렇게 그 분들의 농성 천막을 지나치며 순간적이고도 값싼 연민을 품고 있는 건 아닐까? 내가 무슨 권한으로 과연 저 분들에게 값싼 동정을 보낼 수 있을까....?"

             

            아주 짧은 순간 제 머리를 스치는 생각들로 분주히 발걸음을 옮기는 순간, 그 돌 층계에 앉아 있던 얼굴이 까무스름한 한 외국인 노동자 청년과 눈길이 마주쳤답니다. 제 짐작에 그 분은 아래에서 부터 계속 자신들의 천막을 바라보며 올라오는 저를 보고 있었던 듯 하더군요. 무척 선해 보이고 여린 눈동자를 지닌 젊은 외국인 노동자를 보는 순간 제 자신도 모르게 고개를 약간 숙이며 미소를 지었답니다. 그러자 그 젊은 청년 역시 고개를 약간 숙이면서 활짝 웃는 얼굴로 제게 답례를 해 주더군요. 과연 이 곳을 지나가는 많은 교우분들과 시민들은 얼마나 자주 그 분들과 얼굴이 마주쳤을 때 미소 한번 지어 주는 여유로움을 보여 주었을까?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이었답니다.

             

            3월의 꽃샘 추위에 마음과 몸이 무척 추울 그 분들을 위해 제 자신 해 줄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지만, 6시 삼종 기도를 알리는 종이 울렸을 때 비록 그 분들과 종교는 다르지만 주님의 품 안으로 자신들의 고달픔과 인권 보호를 위해 뛰어든 그 분들을 잠시 기억했답니다. 사순 특강이 끝나고 명동 들머리를 내려올 때에 조금 전 저와 가벼운 인사를 나누었던 그 젊은 외국인 청년과 우연히 다시 한 번 마주쳤답니다. 시간이 8시가 넘었기 때문에 주위는 어두웠고 많은 교우분들이 내려오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청년은 많은 사람들 중에서 용케도 저를 알아보고.....다시 고개를 숙이며 활짝~ 웃어 보였답니다....! 그 선하고도 아름다운 웃음!!!

             

            그 젊은 외국인 노동자의 웃음은 제가 최근에 본 가장 크게 웃는 모습이었고 또 활짝~아주 활짝~웃는 싱싱한 웃음이었답니다. 그리고 그건 너무나 인간적인 따스한 웃음이었답니다. 어디에서 그런 웃음이 흘러나올 수 있었을까요? 왜 그는 그렇게 활짝 웃었을까요? 어느 책에서 본 귀절이 생각납니다. 사람을 사람답게 대해 줄 때 사람은 사람다워진답니다. 추위와 궁핍과 불확실한 미래 그리고 잃어버린 자신들의 인권에도 불구하고, 낯 모르는 외국 땅...지나가는 한 한국인 여성과 아주 짧은 인사를 통해 아마도 그는 아주 오랫만에 그렇게 웃을 수 있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원래 그 분들 역시 그렇게 싱그러운 웃음을 지닌 우리와 똑 같은 사람들입니다. 주님, 비록 그 분들이 갈 곳도 없고 직장도 없고 춥고 배고프지만 그리고 그들의 목소리가 미약하고 잘 들리지 않지만 그리고 점 점 더 지쳐가지만 그들의 영혼속에 있는 싱그럽고도 맑은 웃음과 선한 눈빛들을 지켜 주십시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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