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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사순2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12 조회수1,525 추천수13 반대(0) 신고

◎ 2004년 3월 12일 (금) - 사순 제2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21,33-43.45-46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자.>

 

  33) "또 다른 비유를 들겠다. 어떤 지주가 포도원을 하나 만들고 울타리를 둘러치고는 그 안에 포도즙을 짜는 큰 확을 파고 망대를 세웠다. 그리고는 그것을 소작인들에게 도지로 주고 멀리 떠나갔다. 34) 포도 철이 되자 그는 그 도조를 받아오라고 종들을 보냈다. 35) 그런데 소작인들은 그 종들을 붙잡아, 하나는 때려주고 하나는 죽이고 하나는 돌로 쳐죽였다. 36) 지주는 더 많은 종들을 다시 보냈다. 소작인들은 이번에도 그들에게 똑같은 짓을 했다. 37) 주인은 마지막으로 ’내 아들이야 알아보겠지’ 하며 자기 아들을 보냈다. 38) 그러나 소작인들은 그 아들을 보자 ’저자는 상속자다. 자, 저자를 죽이고 그가 차지할 이 포도원을 우리가 가로채자’ 하면서 서로 짜고는 39) 그를 잡아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어 죽였다. 40) 그렇게 했으니 포도원 주인이 돌아오면 그 소작인들을 어떻게 하겠느냐?" 41)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입니다." 42)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성서에서 ’집 짓는 사람들이 버린 돌이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다. 주께서 하시는 일이라, 우리에게는 놀랍게만 보인다’ 한 말을 읽어본 일이 없느냐? 43) 잘 들어라. 너희는 하느님의 나라를 빼앗길 것이며 도조를 잘 내는 백성들이 그 나라를 차지할 것이다." 45)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이 비유가 자기들을 두고 하신 말씀인 것을 알고 46) 예수를 잡으려 하였으나 군중이 두려워서 손을 대지 못하였다. 군중이 예수를 예언자로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복음산책]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어리석음

 

  어제 루가복음 단독의 ’부자와 라자로의 비유’(루가 16,19-31)에 이어 오늘 복음은 ’악독한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마태 21,33-46)를 들려준다. 두 편의 비유에서 처참한 라자로의 삶을 무관심하게 넘겼던 부자와 포도원 지주의 아들까지 죽이고 포도원을 독차지하려 했던 악독한 소작인들은 모두 유다인들의 지도층, 즉 대사제들과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 비유된 것이다. 그리고 비유의 내용, 특히 비유의 결말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선고하는 판결문과도 같은 것이다.

 

  ’포도원 소작인의 비유’는 마태오복음뿐 아니라 다른 두 공관복음에도 실려있다.(마르 12,1-12; 루가 20,9-19) 이 비유는 크게 3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① 1부(33-39절)는 비유자체의 내용을 들려주는 것으로 전개된다. 지주와 지주가 만든 포도원, 울타리, 확, 망대가 언급되고 포도원을 맡아 일할 소작인들이 등장한다. 포도원은 구약성서가 즐겨 사용하던 표현으로서 하느님이 손수 이루어 낸 이스라엘과 그 백성을 암시한다. "만군의 야훼의 포도밭은 이스라엘 가문이요, 주께서 사랑하시는 나무는 유다 백성이다."(이사 5,7a) 울타리는 율법을, 망대는 예루살렘 성전을 가리킬 수도 있다. 포도 철이 되자 지주가 도조징수를 위해 종들을 보내지만 족족 죽어나가는 현상은 "공평을 기대하셨는데 유혈이 웬 말이며 정의를 기대하셨는데 아우성이 웬 말인가?"(이사 5,7b)라는 이사야의 말에 비추어볼 때 야훼께서 이스라엘의 ’유혈과 아우성’을 수습하려고 보낸 예언자들이 맞이하는 운명과도 같다. 결국 지주는 자신의 아들을 도조징수를 위해 보낸다. 그러나 이 아들이 상속자임을 바로 알아차린 소작인들이 포도밭을 통째로 가로챌 의도로 그를 포도원 밖으로 끌어내 죽여버린다. 이 대목은 예수의 운명에 비유된 것이다. 포도원 밖이란 예루살렘 도성 밖, 골고타를 암시한다. 이것으로 비유는 일단락 된다. 그러나 사건이 종료된 것은 아니다.

 

  ② 2부(40-41절)는 지주의 행동을 들려주는데, 이 행동은 거의 보복차원으로 이루어진다. 그런데 예수께서 지주의 보복적 판단을 질문과 청중의 대답으로부터 끌어내는 점이 독특하다.(마태오; 루가) 청중들은 "그 악한 자들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제때에 도조를 바칠 다른 소작인들에게 포도원을 맡길 것"(41절)이라고 대답한다. 마르코복음에는 포도원 주인이 스스로 내린 판단으로 언급된다. 아무튼 여기서 ’다른 소작인’들은 구약의 이스라엘을 초월한 세상의 모든 백성, 즉 신약의 새로운 하느님백성을 의미한다. 이것으로 사건은 종결된다. 물론 포도원의 새로운 소작인들도 포도 철이 되면 제때에 도조를 납부해야 하는 의무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다.

 

  ③ 3부는 비유를 통해 추론되는 결론부분이다. 청중들과 더불어 이미 명쾌한 대답을 내렸던 유다인의 지도층 인사들은 비유의 악독한 소작인들이 바로 자신들임을 깨닫고 마음이 무거워진다. 예수께서 인용하신 성서구절(시편 118,22-23)에서 모퉁이의 머릿돌은 비록 구약의 건축가들에게서는 버려진 돌이지만, ’제때에 도조를 납부하는 하느님나라의 새로운 백성’을 구축하는 초석이 될 그리스도 자신을 암시한다. 이 돌은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걸림돌(로마 9,32-33)이 될 것이며, 느부갓네살 왕이 꿈속에서 본 난데없이 날아 들어와 기존의 모든 능력을 쳐부수는 돌(다니 2,34)이며, 새로이 건설되는 신령한 하느님 성전의 중심을 잡는 모퉁이 돌(에페 2,20-22)이 될 것이다.

 

  이렇게 오늘 복음은 하느님의 구원역사 가운데 아주 중요한 핵심내용들을 잘 보여주고 있다. 오늘 복음을 묵상하면서 또 다른 두 가지 생각이 떠오른다. 첫째는 포도원의 소작인들이 자기 것도 아닌 포도원을 통째로 가로채고자 하는 무시무시한 욕심이요, 둘째는 도조징수를 위해 파견된 종들이 가는 족족 죽어나갔음에도 불구하고 상속자인 자기 아들을 사지(死地)로 몰아붙이는 포도원 지주인 아버지의 어리석음이다. 소작인의 욕심은 바로 우리 인간의 끝도 없는 욕심이요, 지주의 어리석음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에게 내려지는 하느님 아버지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의 어리석음이다.(1고린 1,22-25) 여기서 하느님의 무한한 사랑과 자비를 "그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라든가 ’기준 없는 마구 퍼주기’ 식으로 알아들어서는 안 된다. 하느님은 무엇보다 ’정의로운’ 분이시다. 그분은 당신이 맡겨주신 것을 깡그리 자기들의 것으로 등기(登記)하려는 악한 자들에게서는 그 목숨까지도 앗아가는 분이시며, 예정된 당신의 나라까지도 다른 새로운 백성에게 넘겨주시는 분이심을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제때에 도조를 잘 내고 있는가?◆[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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