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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수난, 그여정의 인물들 1(클라우스 무카)
작성자김현정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17 조회수1,439 추천수6 반대(0) 신고

예수의 친구, 베드로-클라우스 무카

 

’사람이 사는 곳에는 인간적인 면이 있다.’라는 격언이 있다. 사람이면 누구에게나 약점과 모순이 있다는 말이다.

우리는 ’인간적인 면’이라는 말을 사용할 때는 부정적인 면을 지칭한다는 것도 주목할 만한 일이다.

 

인간은 피조물이다. 인간은 결코 대량으로 생산된 물건이 아니다.

 

모든 사람은 각자의 길을 가며 이 길들을 서로 교차된다. 사람들은 서로 만나 체험을 나눈다. 이것이 바로 ’인간적인 것’이다.

 

우리는 ’좋은’ 친구들과 경험을 나누기도 한다. 그러나 그런 경험은 빨리 잊혀진다. 원하던 것이 채워지고 친구들로부터 더이상 아무것도 기대할 수 없다고 생각될 때 더 빨리 잊혀진다. 우리는 왜 그런지 그 이유를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이다.

 

우리는 특히 예수의 수난에서 큰 역할을 담당했던 인물, 베드로를 바라보면서 이웃을 쉽게 잊는 것에 대해 생각해 보고자 한다. 루가 복음에 나오는 예수의 삶과 베드로의 삶이 교차되는 부분은 베드로의 삶 중에 가장 어두운 부분이다.

 

 

 

(루가 22,54-62)

 

 

 

예수께서는 최후의 만찬 때 베드로에게 이제 모든 제자들이 사탄의 시험을 받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또 동시에 그가 다른 제자들의 힘이 되도록, 특히 베드로의 믿음을 위해서 기도하신다. 바로 여기에서 베드로의 배반이 예고된다(루가 22,31-34 참조).

 

그는 어디에나 예수와 함께하였으며 예수의 12제자 중에 으뜸가는 제자였다.

이런 베드로가 어려운 순간이 닥치자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했다.

그렇다면 도대체 예수께서는 무엇때문에 베드로와 관계를 맺으신 것일까?

왜 예수께서는 그런 비겁하기 짝이 없는 베드로를 수제자로 택하셨을까?

 

 메시아가 당신 스스로를 넘겨주셨다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베드로를 포기하지 않으신 걸 일까?  하느님의 길은 인간의 길과 다르다.

 

다른 제자들은 이미 도망갔다. 그러나 베드로는 멀찍이 서서 예수의 뒤를 따라갔다. 베드로의 상황은 매우 위험하며 절망적이었지만 예수의 사건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우리가 소위 ’인간적인 것’이라 부르는 그것을 허용하신다. 베드로는 약한 사람이었고, 예수와 함께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예수에게 사로잡힌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에수께서는 ’자기의 사람’ 베드로가 넘어지지 않도록 하신다.

 

’나는 네가 믿음을 잃지 않도록 기도하였다. 그러니 네가 나에게 다시 돌아오거든 형제들에게 힘이 되어 다오.’(루가 22,32)

 

베드로에 대한 예수의 배려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배반한 그 순간 그를 위해 무엇을 하셨는가?

 

’그 때에 주께서 몸을 돌려 베드로를 똑바로 바라보셨다. 그제서야 베드로는...주님의 말씀이 떠올라 나가 슬피 울었다.’(루가 22,61-62)

 

베드로를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아무 말 없이 조용히 사랑하는 눈길로 바라보는 것만으로 충분하였다.

 

우리는 디모테오 후서에서

’우리는 진실하지 못해도 그분은 언제나 진실하시다.’라는 구절을 읽을 수 있다.

 

베드로는 회개한 다음, 죽을 때까지 주님과 교회에 봉사하는 삶을 살았다.

 

이제 우리 자신을 살펴보자.

먼저 그리스도인이란 어떤 사람들인가?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매일 새롭게 선택해야하는 하는 신분이다. 그 까닭은 예수를 척도로 삼는 삶을 살아야 할것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 척도는 세상에서 만나는 여러 상황들과 심하게 충돌하며 갈등을 일으킨다.

 

우리는 세상에서 안녕과 권세를 추구하고, 세상 걱정에 노심초사하며 돈을 최상의 가치로 삼는다. 때문에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이다.

 

’흥청대며 먹고 마시는 일과 쓸데없는 세상 걱저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조심하여라. 그날이 갑자기 닥쳐올지도 모른다. ...그러므로 너희는 앞으로 닥쳐올 이 모든 일을 피하여 사람의 아들 앞에 설 수 있도록 늘 깨어 기도하여라.’(루가 21,34-36)

그리스도인에게 기도는 필요불가결한 것이다.

 

하느님은 인간을 구원하기 위하여 예수께 극적인 투신을 요구하고 허용하셨다.

 

우리는 상황을 적당하게 사는 방식으로 개선될 수 없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하느님의 독자성에 의해 구원되도록 해야 한다. 바로 여기에서 그리스도인의 신분은 결정되고, 매일 새롭게 된다. 우리는 우리 신분을 확실한 것으로 여겨서는 안된다.

 

예수께서는 베드로를 ’바위’라고 부르시기도 했고, ’사탄’이라고 부르시기도 했다. 그러나 ’신앙의 바위’에서 ’자신의 생각만 하는 사탄’이 되는 길로 넘어간 것은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러나 ’사탄’의 길은 오래 지속되지 않았다. 때문에 베드로의 삶의 역사는 복음사가들을 통해 우리에게 전승된다.

 

예수를 따름은 아무도 모르게, 또는 아무 대가를 치르지 않는 은밀한 것이 결코 아니다.

 

다시 베드로에게로 돌아가자.

 

주님은 타락의 기로에 서있는 ’당신의 사람’ 베드로에게 한번의 기회를 더 주신다. 그 기회는 예수의 시선을 받음으로 이루어졌다. 베드로는 그 기회를, 의심을 품어 물에 빠져들게 되었을 때 주님의 손을 붙잡았던 것처럼(마태오 14.29-31)이용하였다.

하느님은 모든 인간에게 마지막까지 기회를 주신다. 이것은 우리 모두에게 큰 희망이다.

 

자신에게 물어보자.

우리는 자신에게 마지막까지 기회를 준 적이 있는가?

우리는 베드로에게 다시 한번 기회를 준 적이 있는가?

하느님은 인간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이것 역시 하느님의 독자성의 한 부분이다.

 

베드로의 역사는 놀랍게도 계속 이어진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한번 주셨던 것은 빼앗지 않으신다. 그분은 베드로 위에 당신 교회를 세우신다.

 

베드로는 어려움과 고통을 겪은 사람이다. 그런 체험으로 인하여 예수께서는 그에게 당신 일을 맡기실 수 있었을 것이다.

 

삶에는 대낮같이 밝은 빛만이 아니라 밤의 어두움도 있는 법이다. 베드로는 이를 잘 알고 있었고, 그 때문에 예수의 큰 일꾼이 되었다.

 

한 가지 더 언급하고 이 글을 마치기로 하자.

베드로와 같은 이력서, 즉 삶의 어두운 과거를 가진 사제가 우리 본당에 새로 부임한다면 어떻겠는가?

추기경들이 베드로와 같은 과거를 지니고 있는 사람을 교황으로 선출할 수 있을까?

하느님은 베드로와 같은 사람에게 또 한 번의 기회를 주시지만 우리는 그런 사람에게 기회를 베풀지 않는다는 사실이 경악스럽기만하다.

이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도록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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