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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예수 수난, 그 여정의 인물들2(빌헬름 슈라믈)
작성자김현정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23 조회수1,217 추천수2 반대(0) 신고

조롱하는 병사들-빌헬름 슈라믈

 

예수의 제자들에게는 항상, 지금 여기에서도 주님이 죽음 직전에 직접 당하셨던 일, 즉 병사들의 조롱이 반복된다. 마태오는 예수께서 어떤 조롱을 당하셨는지를 이렇게 묘사한다.

 

(마태오 27,27-31)

 

예수를 로마 총독 관저로 끌고 간 병사들은 평소 미워하고 증오하는 유다 백성들에게 하고 싶던 분풀이를 실컷 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들은 가장 무도회를 꾸며 유다인의 왕을 모독한다. 주홍색 망토는 본디 왕과 영예를 뜻하는 것으로 로마 신하들이 입는 옷이었다. 때문에 그들은 예수의 옷을 벗기고 주홍색 망토를 입히고, 아마도 병사들을 매질하는 데 사용되었을 법한 막대기를 예수의 손에 쥐어준다. 그리고 아칸서스 가지로 엮은 관을 머리에 씌운다.

 

이것은 예수의 고통을 가증시키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이들의 모욕은 상대방을 존경하는 예절을 거꾸로 요구하는, 즉 예수에게 무릎을 꿇게 함으로써 절정에 이른다. 침을 뱉고, 매질을 함으로써 그 모욕의 예식은 끝을 맺는다.유다인의 왕은 조롱거리가 된 것이다. 병사들이 예수께 가한 모욕은 수난사 중에 가장 터무니없는 것이다.

 

구타는 항상 고통을 가져다 준다. 구타는 육체적 고통만이 아니라 마음 깊은 곳에도 상처를 안겨준다. 예수의 존엄성이 한낱 병사들에 의해 짓밟힌다. 병사들의 모욕은 예수의 전 인격에 관계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이 하느님께서 파견하신 구세주며 왕임을 주장하신다. 병사들은 예수를 자신들 앞에 무릎 꿇림으로써 바보로 만들어 버린다.

 

예수의 반응은 어떤가?

 

예언자 이사야의 말씀이 마침내 성취된다.

’나는 때리는 자에게 등을 맡기며 수염을 뽑는 자에게 턱을 내민다. 나는 욕설과 침뱉음을 받지 않으려고 얼굴을 가리우지도 않는다.’(이사야 50,6)

 

하느님의 종의 모습에 대해 예언자 이사야는 이렇게 말한다.

 

 ’늠름한 풍채도, 멋진 모습도 그에게는 없었다. 눈길을 끌 만한 볼품도 없었다. 사람들에게 멸시를 당하고 퇴박을 맞았다. 그는 고통을 겪고 병고를 아는 사람, 사람들이 얼굴을 가리우고 피해 갈 만큼 멸시만 당하였으므로 우리도 덩달아 그를 업신여겼다. 그런데 실상 그는 우리가 앓을 병을 앓아주었으며, 우리가 받을 고통을 겪어주었구나.우리는 그가 천벌을 받은 줄로만 알았고 하느님께 매를 맞아 학대받는 줄로만 여겼다. ..그는 온갖 굴욕을 받으면서도 입 한번 열지않았다.’(이사야 53,2 이하)

 

병사들은 무자비한 행동을 통하여 ’예수는 진실로 약속된 왕, 메시아’임을 증언한다. 인간의 궤변과 비꼬는 행동이 폭로되는 이런 장면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참된 성격이 잘 드러난다.

그 왕직은 인간의 악을 침묵으로 견디어 내면서 봉사로써 인간을 다스리는 왕직이다. 봉사에 대한 예수의 의지는 병사들의 무자비한 희롱을 받아들일 수 있을 정도로 철저했다.

 

우리는 예수처럼 부담스러운 주장을 하는 사람을 외면하려고 하지 않는가? 우리는 그를 바보 취급하고, 조소의 대상으로 삼으며 수상한 자로 여기고 범죄자라는 화관까지 씌운다. 우리는 그에게 침을 뱉으며 소위 사회의 변두리 인생들만 모여 사는 게토로 밀쳐내고, 별 볼일 없는 사람으로 취급한다.

 

우리는 예수 안에서 우리의 악을 자신에게 분출하도록 허용하는 한 인간을 만난다. 그로써 역설적으로 생각되는 일이 현실이 된다. 하느님께서 예수에게 나타나셨다는 것이다.

 

우리는 이런 하느님을 무력한 하느님으로 이해할수 있다. 그러나 이 무력에서 하느님 사랑의 전능을 볼 수 있지 않는가? 세상의 악은 그런 사랑을 통해서만 물리칠 수 있다. 하느님은 다른 것이 아니라 사랑을 통해서 악을 극복하신다. 그리고 이 본질적 진리는 거침없이 기세를 부리는 악에 보복 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이는 자, 멸시와 조롱까지도 참아내는 자에게서 이루어진다.

 

오늘날 세속화된 사회는 그리스도교의 근본 진리와 질서에 따라 살아가려는 사람들을 우습게 여기는 실정이다.

 

베드로는 모든 그리스도인은 그분의 발자취를 따르도록 불리움을 받았다고 한다.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 걷는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자신이 어떤 오해와 모욕을 당하더라도 그것을 감수한다.

 

또한 그 어떤 봉사도 가볍게 취급해서는 안된다. 희생도 마찬가지요, 물질적 봉사도 위대한 것이다.

 

증오로 눈이 멀고 조롱하는 자의 광기 어린 고함으로 귀먹은 자는 희망을 보지도, 듣지도 못한다,때문에 그리스도인은 각자의 표징이 우리 안에 살아 있고, 이웃도 그 희망을 느끼고 체험할 수 있도록 각자의 몫을 행해야 한다. 또한 그리스도인으로써 많은 고통을 감수 해야 하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계속 그리스도 인으로서 증거하는 삶을 산다면 다음과 같은 주님의 약속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마태오 5,11 이하)

 

저는 당하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하며 예수님이 겼으셨던 고통은 잊어버리고는 합니다. 그러나 지금 이 순간에도 온갖 조소와 모욕을 당하시는 그 분을 생각하면 저의 자기연민은 정망 이기적인 것일 뿐 입니다. 저의 죄를 용서하시는 주님, 저는 죄인이라서 주님 없이는 죄 지을 궁리 밖에 하지 못합니다. 언제나 당신 앞에 찾아가 무릎 꿇게 하시며 당신을 찬양하게 하소서. 우리 주 그리스도를 통하여 비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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