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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사순4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23 조회수1,387 추천수12 반대(0) 신고

◎ 2004년 3월 23일 (화) - 사순 제4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5,1-3a.5-16

<나를 고쳐 주신 분이 나더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1) 얼마 뒤에 유다인의 명절이 되어 예수께서는 예루살렘에 올라가셨다. 2) 예루살렘 양의 문 곁에는 히브리말로 베짜타라는 못이 있었고 그 둘레에는 행각 다섯이 서 있었다. 3) 이 행각에는 소경과 절름발이와 중풍 병자 등 수많은 병자들이 누워 있었는데 5) 그들 중에는 삼십 팔 년이나 앓고 있는 병자도 있었다. 6) 예수께서 그 사람이 거기 누워 있는 것을 보시고 또 아주 오래 된 병자라는 것을 아시고는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7) 병자는 "선생님, 그렇지만 저에겐 물이 움직여도 물에 넣어 줄 사람이 없습니다. 그래서 저 혼자 가는 동안에 딴 사람이 먼저 못에 들어갑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8) 예수께서 "일어나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거라" 하시자 9) 그 사람은 어느 새 병이 나아서 요를 걷어들고 걸어갔다. 10) 그 날은 마침 안식일이었다. 그래서 유다인들은 병이 나은 그 사람에게 "오늘은 안식일이니까 요를 들고 가서는 안 된다" 하고 나무랐다. 11) "나를 고쳐 주신 분이 나더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하셨습니다." 그가 이렇게 대꾸하자 12) 그들은 "너더러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라고 한 사람이 도대체 누구냐?" 하고 물었다. 13) 그러나 병이 나은 그 사람은 자기를 고쳐 준 사람이 누군지 알 수 없었다. 예수께서는 이미 자리를 뜨셨고 그 곳에는 많은 사람이 붐볐기 때문이다. 14) 얼마 뒤에 예수께서 성전에서 그 사람을 만나 "자, 지금은 네 병이 말끔히 나았다. 다시는 죄를 짓지 마라. 그렇지 않으면 더욱 흉한 일이 너에게 생길지도 모른다" 하고 일러 주셨다. 15) 그 사람은 유다인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쳐 주신 분이 예수라고 말하였다. 16) 이 때부터 유다인들은 예수께서 안식일에 이런 일을 하신다 하여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

 

[복음산책]  안식일도 예수님의 사랑을 막을 수 없다.

 

  어제 복음은 예수께서 이방인 고관의 아들을 원격(遠隔) 치유하신 기적 이야기였다. 오늘 복음은 요한복음의 7개 표징사화 중 세 번째에 해당하는 베짜타 못가의 병자를 치유한 기적 이야기이다. 무대는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예루살렘으로 바뀌었다. 정확히 명시되어 있지는 않으나 예수께서 오순절 축제를 지내시기 위하여 상경하신 것으로 추정된다.(1절) 모든 유다인들은 13살이 되면 일년에 세 번 예루살렘에 올라가서 축제를 지낼 의무를 가졌었다. 그것은 유다인의 3대 축제일로서 과월절(뻬샤흐; 3월~4월), 오순절(샤부옷; 5월~6월), 그리고 초막절/추수감사절(수우콧; 9월~10월)이었다.

 

  요한복음은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과월절을 해방절이라 칭하고 있다.(13,1) 유다인들의 달력은 우리가 사용하는 그레고리안 달력과 판이하게 다르다. 유다의 달력은 우리 달력의 3,4월에 해당하는 니산달로 시작한다. 과월절 축제는 니산달 즉 정월 14일째 날에 해당된다.(민수 28,16) 예를 들어 2004년의 과월절은 유다력 5764년 니산 14일이며, 우리 달력으로는 2004년 4월 9일이다. 오늘 복음이 말하는 오순절 축제는 시나이 산에서 하느님이 모세에게 율법을 내린 것을 기념하는 축제로서 과월절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을 말한다. 참고로 세 번째 축제인 초막절은 장막절이라고도 하는데 이스라엘 성조들의 유목생활을 기억하면서 이스라엘 백성이 이집트를 탈출한 후 가나안으로 향했던 40년간의 방랑생활을 기념하는 축제이다. 가나안 땅에 정착한 이후로는 추수감사절과 합쳐 지냈던 축제이기도 하다. 오늘 복음에서 38년간 중병에 시달린 병자가 치유를 받는 이야기는 분명 40년간의 방랑생활과 관련이 있을 것이다.

 

  38년이나 중병으로 앓고 있던 병자에게 사실상 희망이란 없었다. 한 가닥 희망은 베짜타 연못의 물이 움직일 때 맨 먼저 물에 들어가는 것이었다.(4절) 그러나 그것도 그의 희망이 될 수 없었다. 그는 움직일 수조차 없는 병자였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그에게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예수를 물이 움직일 때 자기를 물에 넣어줄 수 있는 사람 중에 하나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는 그 이상의 인물이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베짜타 연못이 이제는 더 이상 필요 없게 되었다. 그분은 스스로 육체와 죄의 치유능력을 가지신 분이기 때문이다. 그분 홀로 구원의 능력을 가지신 분이며, 그분의 이름 외에 어떤 이름도 구원을 줄 수 없다고 사도 바울로도 확신하였던 것이다.(로마 10,13 참조) 그래서 치유 받은 자가 유다인들에게 가서 자기 병을 고쳐 주신 분이 예수라고 말하였던 것이 아니겠는가.(15절)

 

  마침 안식일에 이루어진 병자의 치유사건은 그 자체로도 큰 의미가 있으나, 오늘 복음에 이어지는 다음 대목들을 준비하는 의미도 가진다. 안식일에 행한 병자의 치유사건이 아들의 권한과 아들을 위한 아버지의 증언을 계시(啓示)하는 도입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안식일법을 어겼다는 이유는 예수님과 유대인들 간에 긴장을 고조시켰고 이는 파국에 박해를 몰고 온다.(16절) 안식일법을 실제로 어긴 사람은 요를 걷어들고 간 사람이지만, 그렇게 하라고 예수께서 시켰으니 법을 어기도록 시킨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서 특이한 사항은 병자의 치유 이전뿐 아니라 이후에도 ’믿음’에 관한 언급이 없다는 사실이다. 예수님은 일방적으로 그를 치유하셨다. 왜? 예수께서 이를 원하셨기 때문이다. 이것 외에 다른 무슨 이유가 있겠는가? 오히려 안식일에 해서는 안될 일을 하심으로써 예수 자신의 신비가 부각된다. 38년간 병자였던 이 사람을 유다인들이 모를 리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 병자가 요를 걷어들고 걸어가는 기적을 본 유다인들이 그와 함께 기뻐하기는커녕 안식일법을 어겼다하여 추궁하는  모습이라니... 결혼 10년에 겨우 얻은 딸을 두고 아들이 아니라 하여 며느리를 추궁하는 시부모와 무엇이 다르겠는가? 예수님은 인간의 참담한 처지를 결코 외면하지 않으시는 분이시다. 그분은 생명을 두고 다른 것은 절대 따지지 않는 참된 의사이시다. 나아가 안식일 위에 군림하는 주님이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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