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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사순5주간 화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30 조회수1,502 추천수19 반대(0) 신고

◎ 2004년 3월 30일 (화) - 사순 제5주간 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8,21-30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21) 예수께서 다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나는 간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찾다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죽을 터이니 내가 가는 곳에는 오지 못할 것이다." 22) 이 말씀을 듣고 유다인들은 "이 사람이 자기가 가는 곳에 우리는 가지 못할 것이라고 하니 자살이라도 하겠다는 말인가?" 하고 중얼거렸다. 23)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아래에서 왔지만 나는 위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 24) 그래서 나는 너희가 자기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으리라고 한 것이다. 만일 너희가 내가 그이라는 것을 믿지 않으면 그와 같이 죄에서 헤어나지 못한 채 죽고 말 것이다." 25)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 하고 그들이 묻자 예수께서 이렇게 대답하셨다. "처음부터 내가 누구라는 것을 말하지 않았느냐? 26) 나는 너희에 대해서 할 말도 많고 판단할 것도 많지만 나를 보내신 분은 참되시기에 나도 그분에게서 들은 것을 그대로 이 세상에서 말할 뿐이다." 27) 그러나 그들은 예수께서 아버지를 가리켜 말씀하신 줄을 깨닫지 못하였다. 28) 그래서 예수께서는 "너희가 사람의 아들을 높이 들어올린 뒤에야 내가 누구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또 내가 아무 것도 내 마음대로 하지 않고 아버지께서 가르쳐주신 것만 말하고 있다는 것도 알게 될 것이다. 29) 나를 보내신 분은 나와 함께 계시고 나를 혼자 버려 두시지는 않는다. 나는 언제나 아버지께서 기뻐하시는 일을 하기 때문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30)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복음산책]  오신 곳을 모르면 가시는 곳도 알 수 없다.

 

  요한복음 1장은 프롤로그(서문)와 세례자 요한의 증언, 요한의 퇴출과 예수의 등장을 다루고 있다. 2장부터는 예수의 본격적인 공생활이 시작되어 12장에 이르기까지 꼬박 3년간의 자기계시적 가르침과 활동을 들려준다. 13장부터 17장까지는 죽음을 목전에 두고 제자들과의 만찬석상에서 행하신 예수님의 고별사를, 18장에서 19장은 체포, 심문, 사형선고, 수난, 죽음과 무덤에 묻힘을, 20장에서 마지막 21장은 예수부활, 발현사화, 그리고 에필로그(맺음말)로 요한복음은 끝난다. 요한복음이 그리스도교 신학 전반에 걸쳐 많은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그 중에서 하느님 삼위일체론과 그리스도론을 정립할 수 있도록 제공된 정보들은 참으로 심오하고 귀중하고 값진 것이다. 특히 요한복음 1장은 ’전실존적(前實存的) 그리스도론’을 2장부터 12장은 ’하향(下向) 그리스도론’과 그리스도 신성(神性)의 하느님 본성(本姓)과의 일치성을, 13장부터 17장은 성령론을 제공하고 있다.

 

  이처럼 값지고 귀중하고 심오한 진리가 당장 그 자리에서 진가를 발휘한 것은 아니었다. 하느님의 진리는 유다교의 지식층으로부터 많은 반대와 오해를 받았고, 갈등과 논쟁을 초래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수님의 진리선포와 자기계시는 계속되어야 했다. 그것이 곧 하느님의 일이며,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기 때문이었다.(29절) 요한복음 7장에서 8장은 어떤 특별한 육체적 활동 없이 예수님의 순순한 자기계시적 가르침을 피력하고 있다. 물론 후대에 삽입된 요한 8,1-11(간음한 여인에 대한 유다인의 고발과 예수님의 용서의 이야기)을 빼고 봐도 좋고, 넣고 봐도 무방하다. 7장이 예수의 메시아적 기원에 관한 논쟁과 증언을 다루고 있다면, 8장에서는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자기증언으로 예수님의 자기계시가 고조된다. 다른 말로 표현하면, 7장은 나자렛 예수의 인성(人性)에 대한 논란을 통하여 메시아적 신성(神性)에로의 도약을 꾀하고 있는 반면, 8장은 예수님의 신성(神性)에 중점을 둔다.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정말 그리스도인가? 질문하는 편과 대답하는 편의 간격은 갈수록 멀어지고 더 이상 오갈 수 없는 절벽으로 벌어진다. 이 점에 있어서는 법대로 처리하려는 율법학자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의 냉정함과 다른 한편으로는 사랑과 자비로 용서를 베푸는 예수님의 입장(8,1-11)이 한 몫을 한다. "나는 간다. 그러나 너희는 그곳에 오지 못한다. 나는 위에서 왔지만, 너희는 아래에서 왔다.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해 있지 않다."(21절) 이러한 언명은 예수님과 유다인 지도자들 사이에 절벽만 있을 뿐 더 이상 이해 가능한 지평이나 공감대가 없음을 뜻한다. 예수가 어디에서 왔는지를 모르는 유다인들이 예수가 어디로 가는지를 어떻게 알겠는가? 그러나 예수님은 분명히 오신 곳으로 다시 가실 것이다.

 

  "그러면 당신은 누구요?"라는 그들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더욱 확실한 대답을 주신다. 물론 질문하는 사람들은 알아들을 수 없는 대답이지만 군중으로부터는 믿음을 얻는다(30절). 예수께서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 데 있어서 하느님 자기계시의 한 방법인 ’나는 ~ 이다’(ego eimi; 에고 에이미)라는 도식을 이용하신다고 했다. 요한복음에 의하면 예수께서는 자주 이 도식으로 자신의 정체를 밝히신다. 가장 결정적인 대목은 물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고 겁에 질린 제자들에게 "나다. 두려워 할 것 없다"(6,20)라고 하신 부분이다. 그 외에도 예수께서 ’나는 빛이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나는 포도나무다. 착한 목자이다. 생명의 빵이다’라고 하신 말씀은 모두 이 도식에 속한다. 이 도식은 참으로 엄청난 진리를 담고 있다. 일찍이 하느님의 이름을 묻는 모세의 조리 있는 질문에 하느님께서는 "나는 곧 나다"(출애 3,14)라고 대답하셨다. ’나는 곧 나다’는 뜻이 ’야훼’라는 말이다. ’야훼’라는 하느님 이름의 참 뜻이 무엇인가? ① 이는 ’나는 있는 자 그로다’는 뜻으로 스스로 존재하는 자존자(自存者)임을 말한다. ② 이는 "나는 있게 하는 자 그로다"는 뜻으로 세상의 모든 것을 있게 만든 자, 즉 창조주(創造主)임을 말한다. 나아가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의 필연자(必然者)임을 뜻한다. ③ 이는 ’나는 있을 수도, 없을 수도 있는 자 그로다’는 뜻으로 하느님의 자유(自由)와 초월(超越)을 말한다. 따라서 예수께서 이 도식을 사용하실 때에는 하느님께서 본성(本性)에 의거하여 소유하시고 누리시는 모든 특성이 예수님께도 가감(加減)없이 똑같이 해당됨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지만 어떤 유다인도 이런 사실을 알아차릴 수 없었다.

 

  결국 사람의 아들이 십자가에 높이 달려질 때 가서야 예수님의 정체가 어느 정도 밝혀질 것이다. 그러고 보면 십자가는 예수님의 운명이다. 수난과 죽음이 없이는 부활이 있을 수 없듯이, 십자가 없이는 예수의 정체성에 관한 정확한 진리도 없다. 그렇다고 십자가가 목적이거나 끝은 아니다. 예수를 반대하고 거부하는 자들에게 십자가는 목적이요 끝이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로 내몰아 죽이면 모든 것이 다 끝난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십자가는 예수께서 오신 곳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는 길목이다. 우리가 하느님에 대하여 더 많은 진리를 얻을 수 있는 열쇠이기도 하다. 이러한 십자가의 운명을 목전에 두고도 아버지께서 기뻐하는 일을 한다(29절)는 예수님의 입가엔 미소가 도는 듯하다. 나의 십자가가 하느님께서 기뻐하시는 일이라면 나도 웃으며 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을까?◆[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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