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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어떻게 우리의 삶이 무덤으로 변할 수 있는가?(2)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3-30 조회수1,485 추천수11 반대(0) 신고

 

젊은 시절의 아우구스티노는 고백록에서 옛 악습들을 어리석고 헛된 것이라고 묘사 하면서 "반대의 영"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우리를 두고 어디로 가려느냐?" 또한 "우리가 이제는 영원히 그대와 함께 있을 수 없단 말인가?" 그것들은 저에게 소곤거리며 슬그머니 행인의 옷자락을 끌어잡아당기는 자처럼 유혹하였습니다. 그런데 결국 그것들은 저의 발길을 더디게 하였습니다. 저는 거기서 몸을 빼고 당신을 향해 줄달음쳐야 했지만, 끈덕진 옛 악습이 저더러 "이것 없이 네가 살 수 있을 듯싶으냐?" 하고 외치는 바람에 저는 머뭇거리게 되었던 것입니다."

 

이 고백은 과거의 악습 자체가 악령도 아니고 우리를 미치게 하는 것도 아니라고 말한다. 물론 그 악습들은 우리 각자의 현재의 삶에 깊이 배어 있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이렇게 묻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도대체 어디에 뿌리를 박고 있는가? 나의 생각은 무엇을 바탕으로 삼고 있는가?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나를 다스리는 힘은 무엇인가? 나 자신의 충동을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나의 인격 전체가 그 충동에 의하여 움직이고 있는가?

 

평화를 누리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인가? 나의 마음을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게 하고 분주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이런 물음을 곰곰히 생각하는 사람은 얼마나 많은 더러운 악령이 그 자신 안에서 활동하고 있는지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는 게레사의 사람이 무엇 때문에 고통을 당하고 있었는지 알 수 있다.  그가 멀찍이서 예수를 보았을 때, 그는 예수께서 자석처럼 자기를 끌어당기고 있음을 느꼈다. 그래서 그는 예수께 달려갔다. 그는 예수께 무릎을 꿇음으로써 예수의 통치와 권능을 고백하였다.

 

하지만 즉시 예수께 반항하는 소리를 질렀다.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의 아들 예수님, 왜 저를 간섭하십니까?" 이는 그 사람 안에 있던 악령이 마치 예수를 제압하려는 듯한 인상마저 준다. 어쨌든 그의 행동과 말은 서로 완전히 모순되었다.

 

하지만 우리도 말과 행동이 그렇게 모순되게 살고 있지 않은가? 예수앞에서 무릎을 꿇으면서도 나머지 다른 태도는 이와 정반대 되는 입장을 취하고 있지 않는가?

 

예수께서는 악령들린 사람의 저항을 받으시고 이렇게 물으셨다. "네 이름이 무엇이냐?" 그분은 이 물음으로 그의 내면에 가까이 들어가셨다. 이로써 그분은 그 사람에게 "너는 너 자신을 스스로 누구라고 생각하느냐?" 하고 묻게 하셨다.

 

동시에 그분은 그의 분열된 힘을 한데 모으고자 하셨다.  질문을 받은 그 사람이 대답을 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대답했다. "제 이름은 군대라고 합니다!" 이는 "나는 나자신이 아닙니다. 나는 분열되어 있습니다."라고 말하는 것과 같다.

 

악령들이 이렇게 자신의 존재를 알려줌으로써 그들은 자신들의 희생물이 된 사람을 지배할 힘을 잃어버렸다. 그래서 악령들은 그 지역에서 추방당할까 두려운 나머지 산기슭에 놓아 기르던 돼지떼 속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예수께 간청하였다.

 

돼지의 외적인 더러움은 특히 내적 더러움과 충동에 나약한 상태와 잘 어울린다.

 

예수께서는 악령들의 소원을 들어주셨다. 하지만 그 결과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그런 방식으로 악령들이 뿌리째 제거되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치유받은 그 사람은 이제 옷을 바로 입고 멀쩡한 정신으로 앉아있게 되었다.

 

이처럼 예수께서는 빠져 나갈 길이 없는 상황에서 당신 자신을 , 평온을 누리는 주님으로, 그리고 권위있는 조력자로 드러내 보이셨다.

 

여기에서 우리는 돼지떼가 "속죄양" 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돼지떼는 악을 그대로 받아들임으로써 악령들린 사람에게 악의 위험과 고통을 제거해 주었다. 때문에 우리는 여기에서 우리 자신에게 이렇게 물어 보아야 한다.

 

항상 우리 자신을 찾아오는 악을 우리는 어떻게 대하고 있는가? 우리는 그 악을 어디로 쫓아 버리고 있는가?

 

인간은 실제로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구체적이고 더 위험한 악을 자신의 힘으로 저항할 수 없다. 그리고 자신의 힘으로 악을 이겨내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악에 대한 단호한 입장을 취하고 강한 자아 의식과 신원 의식이 솟구치고 있는 곳에서는 악은 발을 붙이지 못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에게는 이런 입장과 이런 의식이 결여되어 있기 때문에 우리는 예수와 결합되어야하고, 그분께서 우리 삶의 한가운데로 들어오시도록 해야 한다. 우리는 자신을 혼란스럽게하고 파괴시키는 것, 우리 삶을 분열시키는 것, 우리를 고통스럽게 하고 우리 자신을 무덤으로 끌어내리는 것 등 모든 것을 예수께 맡길 수 있다.

 

그분께서 이 모든 것을 당신 자신의 것으로 받아들임으로써 우리를 다치지 않게 보호하고 우리를 자유롭게 구원된, 스스로 살아가는 삶으로 되돌려 놓으신다.

 

치유된 사람은 동네 사람들이 자기도 받아들이지 않으리라는 것을 두려워한 나머지 예수께 따라다니게 해 달라고  청하였다. 예수께서는 그의 청을 거절하신다. 그분은 그가 가족에게 되돌아 가기를 원하신 것이다. 이로써 기적은 그 사람을 지금까지 단절되었던 인간 공동체의 구성원이 되게 하는 목적에 다다르게 된다.

 

그가 곧장 집으로 돌아가 이야기 할 수 있는 유일한 내용은 틀림없이 예수를 통하여 체험한 기적일 것이다. 그의 이야기를 듣고 많은 사람들은 놀랄 것이다. 한때 악령들렸던 사람에게서 그리스도교의 복음 선포가 미리 실현되고 있고, 이로써 주님을 따르는 제자가 나오게 된다.

 

그는 또한 우리로 하여금 예수께서 우리에게 해주신 큰 일을 선포하라고 호소하고 있다. 왜냐하면 어떤 상황에서든지 예수를 정말 만나는 사람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을 항상 체험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항상 다른 사람이 되어 집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낫기를 원하느냐> 편집정리

 

악령들린 게레사 사람이 자기를 자석처럼 끌어 당기시는 예수님께 다가가는 모습에서 보듯이, 그리고 세례자 요한의 제자들이 "선생님께서 증언하신 바로 그분인데 모든 사람이 그분에게 몰려가고 있습니다." (요한 3, 26) 라고 말하고 있듯이 예수님은 우리를 당신께로 끌어당기고 계십니다.

 

예수님, 당신께서는 자석처럼 저를 끌어당기시는데, 제가 당신께로 이끌리는데 방해되는 불순물이 무엇일까요? 당신에게 붙어 있지 못하게 하는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아마도 제가 당신께서 저를 얼마나 사랑하고 계신지를 자주 잊어버리는데 있는 것 같습니다. 성체 앞에서 기도 드리고 있을 때, 깊은 행복감을 느끼다가도 일상으로 돌아 온 저는 이리저리 마음이 흩어지고 무기력해지기도 합니다.

 

그래서 당신께서도 항상 기도하시는 모범을 보여 주시고, 피땀을 흘리시며 까지도 기도하셨음을 상기합니다.

 

당신의 사랑을 늘 기억하고 늘 깨어 기도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야만 당신께 꼭 붙어서 일치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마침내 더러운 악령들이 비집고 들어오려다가 발길을 돌리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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