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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사순5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03 조회수1,691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4월 3일 (토) - 사순 제5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1,45-56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리라.>

 

  45) 마리아를 찾아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 46) 그러나 더러는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 가서 예수께서 하신 일을 일러바치기도 하였다. 47) 그래서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은 의회를 소집하고 "그 사람이 많은 기적을 나타내고 있으니 어떻게 하면 좋겠소? 48) 그대로 내버려두면 누구나 다 그를 믿을 것이고 그렇게 되면 로마인들이 와서 이 거룩한 곳과 우리 백성을 짓밟고 말 것입니다" 하며 의논하였다. 49) 그 해의 대사제인 가야파가 그 자리에 와 있다가 이렇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그렇게도 아둔합니까? 50)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 51) 이 말은 가야파가 자기 생각으로 한 것이 아니라 그 해의 대사제로서 예언을 한 셈이다. 그 예언은 예수께서 유다 민족을 대신해서 죽게 되리라는 것과 52) 자기 민족뿐만 아니라 흩어져 있는 하느님의 자녀들을 한데 모으기 위해서 죽는다는 뜻이었다. 53) 그 날부터 그들은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시작하였다. 54) 그래서 예수께서는 그 이상 더 유다 지방에서 드러나게 나다니지 않으시고 그 곳을 떠나 광야 근처에 있는 지방으로 가시어 제자들과 함께 에브라임이라는 동네에 머물러 계셨다. 55) 유다인들의 과월절이 다가오자 많은 사람들이 명절 전에 몸을 정결하게 하려고 시골에서 예루살렘으로 올라갔다. 56) 그들은 예수를 찾아다니다가 성전 뜰 안에 모여서 "어떻게들 생각하십니까? 그가 명절에 참례할 것 같지는 않지요?" 하며 서로 수군거렸다.◆

 

[복음산책] 그렇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 죽는 편이 낫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죽은 지 사흘이 지난 라자로를 소생시킨 표징사건(요한 11,1-44)을 전제한다. 죽은 라자로를 소생시킨 기적은 요한복음이 보도하는 예수님의 7개 표징사화 중 마지막 표징이다. 이로써 예수께서는 자신을 이스라엘 민족을 위해 예고된 메시아요, 그들이 믿는 하느님의 아들이요, 하느님과 같은 분이요, 하느님과 함께 생명을 주관하시는 주님이심을 명백히 계시하셨다. 이제 더 이상 다른 계시는 없다. 있다면 예수께서 십자가 위에 높이 달리시는 것과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시는 일만 남았다. 라자로를 소생시킨 표징사화를 끝으로 예수님의 3년간 공생활은 사실상 끝났다고 보아야 한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예수님의 3년간 공생활은 처음 1~2장에서 아주 완만하게 시작한다.(다음날/1,29; 다음날/1,35; 그 이튿날/1,43; 사흘째 되던 날/2,1) 그러다가 3장부터 11장까지에는 그 속도가 빨라져 단숨에 3년 정도의 공생활이 보도된다.(2번의 해방절) 그 다음부터는 예수님의 죽음까지 마지막 7일간의 활동을 보도하고 있다. 12장 서두를 보면 예수께서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다고 한다. 이것이 예수께서 마지막 맞으시는 과월절(해방절)이다. 여기서 예수께서는 군중의 환호를 받으며 예루살렘으로 성대하게 입성하실 것(12,12-19)이고, 과월절 하루 앞두고 제자들과 마지막 만찬을 드시면서 새계명과 함께 긴 고별사를 주실 것(13-17장)이다.

 

  이제 예수께서 유다인 지도자들과 백성들에게 하실 일은 거의 마치셨다. 당신자신이 누구신지를 모두 밝혀주신 것이다. 예수께서는 하실 일을 다 하셨으니, 이제 선택은 사람들의 몫으로 남는다. 라자로의 소생기적은 분명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갖도록 했다.(45절) 그러나 이 사건이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 사람들에게는 예수를 완전히 제거하려는 마지막 결정적 요인이 되고 만다. 예수님의 활동과 가르침을 못마땅하게 여긴 유다인들이 돌로 예수님을 치려했던 행동(8,59; 10,31)은 그나마 즉흥적이고 충동적이었다. 사실 그들이 재판을 하지 않고 사람을 죽일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유다인들의 최고의회가 예수를 죽이기로 결의한다. 그 해의 대사제 가야파가 "온 민족이 멸망하는 것보다 한 사람이 백성을 대신해서 죽는 편이 더 낫다는 것도 모릅니까?"(50절)라는 말로 예수님의 속죄죽음을 예고한다. 가야파의 태도는 거만하고 불손하기 이를 데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대(大)를 위해 소(小)의 희생은 감수한다는 정치가들의 일관된 생각이다. 그러나 예수님의 죽음은 이스라엘 백성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모든 민족을 위한 죽음, 즉 전 인류의 죄를 위한 속죄의 죽음이 될 것이다.

 

  유다인의 최고의회가 예수의 죽음을 결의하였고, 구체적인 계획을 세운다고 해서 그들이 예수를 마음대로 죽일 수는 없다. 예수께서는 때가 오면 스스로 죽음을 향하여 걸어가실 것이고, 또 그렇게 죽음을 맞이하실 것이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생명을 도모하실 것이다. 그 때까지는 아직 일주일이 남았다. 교회는 오늘로써 사순시기의 재계를 마감하고 본격적인 수난시기로 돌입한다. 예수님의 본격적인 수난시기는 곧 성주간(聖週間)이다. 성주간에도 여전히 재계는 필요하다. 그러나 성주간에는 실제로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의 길을 한 걸음 한 걸음씩 함께 걸어가는 자세가 필요하다. 라자로의 소생사건을 통하여 믿음을 가진 자는 예수님과 함께 그 길을 갈 것이지만 백성의 지도부는 그 반대의 길을 갈 것이다. 예수님과 함께 가는 자는 그분과 함께 죽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나 그분은 죽임을 당하거나 마지못해 목숨을 내어놓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뜻을 좇아 인류의 모든 죄를 사하시기 위하여 기쁜 마음으로 생명을 내어놓는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또한 이것이 곧 세상에 ’새 생명’을 선물하시기 위한 것임을 알아야 한다. 누구든지 예수님의 수난과 고통을 함께 하고, 그분과 함께 죽을 때만이 새 생명의 참 뜻을 깨닫게 될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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