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미사

우리들의 묵상/체험

제목 복음산책(성주간 월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04 조회수1,581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4월 5일 (월) - 성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2,1-11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

 

  1) 예수께서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베다니아로 가셨는데 그곳은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가 사는 고장이었다. 2) 거기에서 예수를 영접하는 만찬회가 베풀어졌는데 라자로는 손님들 사이에 끼여 예수와 함께 식탁에 앉아 있었고 마르타는 시중을 들고 있었다. 3) 그 때 마리아가 매우 값진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가지고 와서 예수의 발에 붓고 자기 머리털로 그 발을 닦아 드렸다. 그러자 온 집안에 향유 냄새가 가득 찼다. 4) 예수의 제자로서 장차 예수를 배반할 가리옷 사람 유다가 5) "이 향유를 팔았더라면 삼 백 데나리온은 받았을 것이고 그 돈을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었을 터인데 이게 무슨 짓인가?" 하고 투덜거렸다. 6) 유다는 가난한 사람들을 생각해서가 아니라 그가 도둑이어서 이런 말을 한 것이었다. 그는 돈주머니를 맡아 가지고 거기 들어 있는 것을 늘 꺼내 쓰곤 하였다. 7)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이것은 내 장례일을 위하여 하는 일이니 이 여자 일에 참견하지 마라. 8) 가난한 사람들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겠지만 나는 언제나 함께 있지는 않을 것이다." 9) 예수가 베다니아에 계시다는 말을 듣고 많은 유다인들이 떼를 지어 몰려들었다. 그들은 예수뿐만 아니라 예수께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리신 라자로도 보고 싶었던 것이다. 10) 이것을 본 대사제들은 라자로도 죽이기로 작정하였다. 라자로 때문에 수많은 유다인들이 자기들을 버리고 예수를 믿게 되었기 때문이다.◆

 

[복음산책]  향유에 담긴 사랑

 

  어제 주님수난성지주일에는 환호와 열광, 고통과 죽음의 극단적인 두 가지 서로 다른 분위기가 큰 대조를 이루었다. 제1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을 기념하는 행렬에서는 군중과 제자들의 환호와 기쁨과 믿음이 고조되었고, 제2부 미사에서는 예수님 스스로가 십자가를 지고 겪어야 할 불신과 배신, 고통과 죽음의 현실이 시종(始終) 무겁게 깔려있었다. 후자(後者)는 특히 긴 수난복음만큼이나 긴 암흑의 터널을 예수님과 함께 걸어가는 느낌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오늘 성주간 월요일부터는 암흑의 긴 터널을 하나씩 토막내어 부둥켜안고 묵상하고 또 묵상하며 내 것으로 만들어가야 할 것이다.

 

  요한복음 제1부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될 12장은 베다니아와 예루살렘을 무대로 펼쳐지는 예수님 공생활의 마지막 사건을 다루고 있다. 구체적으로 요한복음 12장은 죽었던 라자로를 소생시켜주신 것에 대한 감사의 뜻으로 보이는 베다니아 사람들의 영접 만찬회와 라자로의 동생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는 사건(1-11절), 예루살렘 입성(12-19절), 이방인 그리스 사람들에 대한 예수님이 자기계시(20-26절), 며칠 안에 벌어질 예수님의 죽음에 대한 예고(27-36절), 예수님의 마지막 공적 말씀에 대한 유다인들의 최종적 불신과 이에 대한 심판예고(37-50절)를 그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베다니아에서 마리아가 예수님의 발에 향유를 바르고 머리카락으로 닦아드린 사건과 비슷한 내용을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은 예수님의 예루살렘 입성 후에 있었던 사건(마태 26,6-13; 마르 14,3-9)으로 기록하고 있는 반면, 요한복음은 입성 전에 있었던 사건으로 보도하고 있다. 물론 마태오와 마르코복음에는 예수께서 베다니아에 있는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 계실 때 ’어떤 여자’가 와서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에 부었다고 한다. 향유를 머리에 붓든 발에 붓든 여인(마리아)의 행위는 예수님의 ’장례일’을 위하여 한 일이다.

 

  요한은 이 사건을 과월절 엿새 전에 일어난 일로 보도함으로써 이 날이 금요일임을 암시하고 있다. 정확히 엿새 후 금요일엔 예수님의 장례식이 치러질 것이다. 장례식을 일주일 앞두고 예수님은 사람들로부터 생애 마지막 만찬을 영접 받았으며, 값비싼 향유를 자신의 주검을 위한 수의(壽衣)의 표징으로 받으셨다. 예수님과 함께 라자로, 마르타, 그리고 손님들 모두가 기뻐하였으며, 마리아는 예수님께 특별한 사랑(향유)을 보였고, 그 사랑의 향기가 온 집안에 가득 찼다. 그러나 단 한 사람, 가리옷 사람 유다만이 기분이 좋지 않았다. 예수님 발에 쏟아 부은 매우 값진 한 근의 순 나르드 향유 때문이었다. 유다는 머릿속으로 주판을 놓았다. 순 나르드 향유 한 근을 돈으로 계산하면 3백 데나리온, 이는 사람 5,000명을 빵으로 배불리 먹일 수 있는 값어치의 놀라운 금액이다.(요한 6,7-9 참조) 유다의 눈에는 그것이 낭비로 보였다. 마리아의 행동은 분명 낭비이기도 하다. 그녀는 매우 값진 한 근의 순 나르드 향유를 오직 예수님의 발을 위하여 쏟아 부었으며, 그것도 모자라 자신의 머리칼로 예수님의 발을 닦았다. 마리아는 예수님께 대한 자신의 넘치는 사랑을 보였으며, 예수님은 이 사랑을 자신의 장례식을 위한 일로 받아 들이셨다. 마리아는 이로써 자신이 할 수 있는 사랑 그 이상을 한 셈이다. 사랑이 살 수 없는 곳에서 사랑은 이해 받을 수 없으며, 사랑이 이해 받지 못하는 곳에서 사랑은 살 수 없는 법이다. 이런 곳에서 사는 사람들은 어떤 행위가 전적으로 내적(內的) 사랑에 바탕을 두고 있음을 알 리가 없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태그
COMMENTS※ 500자 이내로 작성 가능합니다. (26/500)
[ Total 27 ] 기도고침 기도지움
등록하기
※ 로그인 후 등록 가능합니다. 파일 찾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