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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예수부활대축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11 조회수1,420 추천수13 반대(0) 신고

2004년 4월 11일 (일) - 예수 부활 대축일

 

[오늘의 복음] 요한 20,1-9

<그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1)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의 일이었다. 아직 어두울 때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가 무덤에 가보니 무덤을 막았던 돌이 이미 치워져 있었다. 2) 그래서 그 여자는 달음질을 하여 시몬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다른 제자에게 가서 "누군가가 주님을 무덤에서 꺼내갔습니다. 어디에다 모셨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알려주었다. 3) 이 말을 듣고 베드로와 다른 제자는 곧 떠나 무덤으로 향하였다. 4) 두 사람이 같이 달음질쳐 갔지만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더 빨리 달려가 먼저 무덤에 다다랐다. 5) 그는 몸을 굽혀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에 들어가지는 않았다. 6) 곧 뒤따라온 시몬 베드로가 무덤 안에 들어가 그도 역시 수의가 흩어져 있는 것을 보았는데 7)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수의와 함께 흩어져 있지 않고 따로 한 곳에 잘 개켜져 있었다. 8)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9) 그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

 

[복음산책] 주님께서 참으로 부활하셨도다. 알렐루야!

 

  부활대축제는 많은 원초적이고 본질적인 표징들로 가득하다. 빛과 어두움, 물과 불, 말씀과 응답, 빵과 포도주 등이 바로 그것이다.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이면 그 누구든지, 인종도 종교도, 대륙도 문화에도 관계없이, 구석기시대부터 현대의 문명에 이르기까지, 그 누구든지 이 자리에서 함께 부활대축제를 지낸다면 이런 표징들을 통하여 깨닫게 될 것이다. 여기에 인간실존의 가장 본질적인 물음이 있다는 것을... 그것은 우리가 던지는 인간실존에 대한 의미와 인식, 믿음과 사랑, 그리고 생명과 죽음에 관한 물음이라는 것을 말이다.

 

  우리는 인류가 있기 시작하면서부터 물과 불, 빛과 어두움의 자연적 표징들이 바로 신적인 권위에 속하는 것으로 믿어졌고 숭배되어 왔다는 것을 알고 있다. 신들이 세상에 생명을 선사하고 또 앗아간다는 것을... 이러한 신들의 위엄은 인간의 숭배와 찬미의 대상이었으며, 동시에 온갖 두려움과 공포의 원인이었다는 것을 ... 그러나 인간은 이러한 자연적인 표징들을 자신들에게 유익한 요소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처음에는 주술이나 마술의 대상으로 이용하기 시작했지만, 곧바로 합리적인 경험과 이해를 바탕으로 그릇을 빚어 만들어 물을 모음으로써, 갈증을 식히고 더러움을 씻기 시작하였다. 인간은 또한 불을 잘 다스려 빛을 내어, 어두움을 몰아내며, 밤의 온갖 공포로부터 자신을 보호하고, 몸을 데우는데 쓰기 시작하였다. 오늘날 우리는 더 많은 발명과 기술을 통하여 물을 모아 댐을 만들고 수영장을 만들며, 전기를 켜 어둠을 밝히며, 초를 만들어 손에 들고, 화약을 만들어 불꽃놀이까지 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으며, 나아가 첨단의 유전공학과 의학기술을 통하여 생명과 죽음에 대한 임의의 조작도 할 줄 아는 인간이 되었다.

 

  그러나 아직도 우리는 생명과 죽음은 물론이고, 물과 불, 빛과 어두움을 완벽하게 제어하지 못한다. 아직도 우리에게는 이들에 대한 불확실함과 공포와 두려움이 남아 있다. 우리가 뜻하지 않은 화염이나 화산폭발에 휩쓸리거나 홍수나 지진을 만나 생명을 잃을 때면 더욱더 그렇다. 자연의 위력은 이렇게 인간의 능력과 예지를 능가한다. 그것은 이 모든 것이 바로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속하기 때문이다. 하느님만이 이 모든 것을 잘 다스리신다. 그분만이 불기둥을 세우시고, 홍해의 물을 갈라 이스라엘 백성들을 파라오 군대에게서 지켜주시며, 바싹 마른 바위에서 물을 내시어 그들의 갈증을 식혀 주신다. 그분만이 자신의 빛나는 모습으로 제자들을 눈부시게 하시며, 장님을 광명으로 밝혀주시며, 죽은 자를 무덤에서 이끌어 내어 생명을 주신다. 그분만이 빵과 포도주를 현존의 표징으로 삼아 우리 안에 거처하시며, 나아가 영원한 생명의 양식이 되신다.

 

  바로 그분이 오늘 죽음을 쳐 이기고 부활하시어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이다. 우리가 손에 든 광명의 촛불로, 우리가 축성하는 생명의 물과 양식으로, 우리 안에 흐르는 잔잔한 사랑으로 진정 계신다. 이로써 나 이 인간은 죽을 몸이지만 영원히 살 것이며, 모든 것을 잃었지만 다 받았으며, 죄로 말미암아 몰골 없이 부패되었지만, 은총으로 성화 되었고, 비록 비천한 몸으로 이 땅 위에 태어났지만, 그분의 자녀로 축성되어 하늘나라의 상속자가 된 것이다. 이 모든 것은 지극히 높으신 하느님이 여기 아래 비천한 곳에로 인간이 되어 오셨음 때문이며, 불편한 말구유에서 고통의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오직 성부의 뜻을 따른 성자의 순종 때문이다. 하느님의 전지전능함이 인간의 무력함이 된 때문이며, 하느님의 부유함이 인간의 가난함이 되었기 때문이며, 생명이 죽음을 이겼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인간들이 가지는 자기중심적인 얄팍한 계산 따위나 인간이 불끈 쥔 주먹을 치켜 올리며 자랑하는 문명이기 따위는 설자리가 없다. 이는 인간이 한번이라도 파악하거나 이해할 수 있는 지평의 것이 아니라, 사랑과 믿음으로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큰일을 해 주셨다" 하고 고백할 일이기 때문이며, 죽음과 무덤을 극복한 그리스도 예수의 부활과 영원한 생명에 우리도 참여할 것이라는 희망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부활하신 첫날 아침에 제자들이 본 것은 빈 무덤뿐이었다. 즉 예수님의 시체가 온데간데없고 무덤이 비었다는 것이었다. "그제야 무덤에 먼저 다다른 다른 제자도 들어가서 보고 믿었다. 그들은 그 때까지도 예수께서 죽었다가 반드시 살아나실 것이라는 성서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있었던 것이다."(요한 20,8-9)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베드로와 제자들이 믿었던 것은 예수님의 부활이 아니라 우선 무덤이 비었다는 것이었다. 빈 무덤에서 싹튼 부활에 대한 믿음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발현과 이에 대한 체험, 예수님 승천사건과 성령강림사건을 통하여 더욱 성장하고 성숙하여 갈 것이다. 결국 제자들과 증인들의 남은 삶이, 다시 말해서 진리자체이신 예수님과 그분의 부활을 증거 하는 사람들의 삶이 이를 완성해 줄 것이라는 말이다. 예수부활에 대한 우리들의 믿음 또한 부활사건과 부활하신 예수님을 체험한 첫 제자들의 증언과 그들의 삶에 근거를 두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들을 둘러싼 이 세상과 이 다음 세상은 과연 무엇에 근거를 두고 예수님의 부활사건을 믿음으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가 우리 자신의 삶으로 세상에 선포하고 증언해야 할 과제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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