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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선택할 수 있는 자유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21 조회수1,415 추천수8 반대(0) 신고

그러나 진리를 따라 사는 사람은 빛이 있는 데로 나아간다.그리하여 그가 한 일은 모두 하느님의 뜻을 따라 한 일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된다.

                                                (요한3, 26)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이란 어떻게 살아가는 삶일까? 진리를 따라 사는 삶의  핵심의 하나인 이웃사랑에 대해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여기 있는 형제중에 가장 보잘것 없는 사람 하나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 (마태오 25, 40)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 각자는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필요를 매일 직면하고 있다.

 

결혼 서약, 부모로서의 책임, 그리고 직업상의 의무 이 모든 것은 다 특별한 것이다! 이 각각의 서약 안에서 우리는 우리가 약속한 사람들이 필요로하는 것을 매일 접하게 된다. 그들의 "가난,"즉 그들의 상처와 한계를 사랑으로 보살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소명이다.

 

일반적으로 우리 주위에 있는 사람들의 가난은 덜 극적일지는 모르나 실상은 그렇기 때문에 더욱 돌봐 주여야 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평범한 것들 안에서 우리를 사랑에로 초대하신다; 그것은 계산하지 않는 사랑이고 이해 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사랑이며 또한 마음에서 즉각적으로 자연스럽게 우러나오는 반응이다.

 

이성서 구절에서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사랑 안에서 응답하는 것은 곧 그 분께 응답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 분이 우리 앞에 계신 것처럼 가상(假想)하고 응답하는 것이 아니라 실제로 우리 앞에 현존하시는 그 분께 응답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을 가난하고 고통받는 사람들과 하나라고 확인하심으로써 가장 깊은 의미에서 그 분은 그들의 고통속에 현존하시며 그 분이 바로 우리가 베푸는 사랑의 수혜자이시다.

 

이 계시야말로 그의 첫 제자들에게 그랬던 것처럼 우리에게도 매우 놀라운 것이다. 서로 사랑하는 사람들 안에서 예수님께서는 현존하시고 또 봉사를 받으신다는 놀랍고도 신비스러운 계시이다.

 

예수님께서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것이 놀라운 것이라면, 우리 각자의 완전성을 반견하고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도록 선택 할 수 있는 자유가 우리에게 주어졌다는 것은 더 더욱 놀라운 일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너무나 자주 우리의 "운명," 즉 우리의 주변 환경을 구실로 삼았다. 굳어진 생활 양식 속에 우리 자신이 파묻혀지고 따라가도록 내버려 두었다. 이러한 핑계는 용기를 부인하는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왼편으로 갈라 놓은 사람들의 핑계를 듣지 않으셨다. 그분은 우리의 핑계도 또한 듣지 않으실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약한 그대로, 한계가 있는 그대로 우리를 받아 주실 것이다. 우리는 단지 우리 자신을 버리고 그분의 사랑과 창조적인 은총에 우리를 맡겨 버리는 용기만 있으면 된다. 그런데 이 용기는 이미 우리 안에 존재하는 것이다.

 

이 성서 구절은 우리 하나 하나의 그리스도 인들에게 가난한 자들의 편에 계시는 예수님의 명령을 따르는 길을 선택하라는, 즉 사랑을 선택하라는 의무를 부여한다. 오로지 사랑을 선택함으로써만이 우리는 예수님을 인정하는 것이며 우리의 삶을 실현하는 것이다.

 

                                  <용서> 편집

 

오래전에 한 수녀님으로부터 들었던 이야기가 생각납니다. 수녀님께서는 병원에서 아기를 돌보시는 봉사를 하고 계셨는데, 아기들을 씻기실 때 아기 예수님을 씻기는 마음으로 하신다는 것이었습니다.

 

가족관계나 친구, 직장동료들 안에서 예수님의 현존을 발견하고 느끼고 살아간다면 이미 천국은 지금 시작된 것입니다.

 

엊그제의 일입니다. 딸이 밤11시쯤 답답하다고 아기를 안고 바람을 쐬러 나간다고 하였습니다. 아기가 기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한사코

만류하였으나 제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저도 하루종일 피곤하고 몸이 아팠기 때문에 늦은 시간까지 아기를 보기가 힘들어서 아기를 봐주겠다고 하지 않고 "이 밤중에 기침하는 아기를 데리고 어디를 가느냐?" 고 불편한 마음으로 이야기 하자, 딸은 막무가내였습니다.

 

기침하는 아기를 데리고 나갔으니 잠이 올 것 같지가 않았습니다. 뒤쫓아 가서 딸과 아기를 집으로 데리고 오고 싶었습니다. 이 마음을 진정하기가 어려워 평소에 도움을 받는 자매님께 전화로 의논을 하였습니다. "걱정 되는 심정은 이해하지만 아기 엄마가 누구냐? 아기 엄마보다 할머니가 더 걱정을 한다." 며 묵주기도를 하면서 잠을 청해보라고, 저를 만류하였습니다.

 

저는 당장에라도 쫓아나가고 싶었지만 꾹 참고 조언을 따랐습니다.

 

그 이튿 날인 어제, 제가 최근에 딸의 문제로 고민하던 문제가 생각지도 않게 딸의 심경의 변화로 풀렸습니다. 자기 스스로 자기 생각을 버리고 가족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마음을 바꾼 것이었습니다.

 

지금 생각을 하면 아찔합니다. "하느님께서 변화시켜주실 것이라는 신뢰를 하지 못하고 제힘으로 하려고 딸을 감싸고 있는 느낌이다." 조언해 주신분의 이야기 입니다. 제가 엊그제 밤중에 딸을 찾으러 나갔다면 고집세고 반항적인 기질이 있는 딸의 마음이 더 닫혀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주님, 감사드립니다. 당신께서는 자비를 베풀어줄만할 때에 자비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보았습니다. 제가 닥쳐오는 문제 앞에서 당신께 대한 전폭적인 신뢰를 하지 못한 것을 용서해 주십시오.

 

당신께 대한 신뢰를 보이다가도 문제를 바라보고 또 근심하고 걱정하는 어리석음을 용서해 주시고, 완고한 딸의 마음을 변화시켜 주시니 오직 감사드릴 뿐입니다.

 

모든 것을 당신께 맡기고 당신의 사랑으로, 분별있는 사랑으로 가족들을, 이웃들을 사랑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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