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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아시시의 프란치스코 (2)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28 조회수1,479 추천수12 반대(0) 신고

 

프란치스코는 자신의 개인적인 성소를 깊이 인식하는 것과 기도하는 것을 통해 아시시 입구의 산 다미아노(San Damiano)경당에 있는 십자가 앞에서, 스폴레토에서 들었던 "무너져 가는 교회를 일으켜라" 는 소리를 다시 듣게 되었다. 이 요청을 허물어져 가는 그 경당을 수리하라는 소리로 잘못 알아들은 그는 자신의 손으로 직접 고치기 시작했다.

 

물론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도 이 일에 쏟아 부었다. 아버지는 이러한 미친짓을 하는 아들을 집에 감금하고 구타하면서 아들이 ’이성을 되찾도록’ 하려 노력했고, 마침내 그를 법정으로 끌고갔다.

 

프란치스코는 아버지로부터 받은 돈과 입고있던 옷을 벗어 아버지께 돌려주면서 유산을 비롯하여 아버지의 모든 것을 포기한다는 것을 알린 후, 이제부터 자신의 아버지는 피에트로 베르나르도네가 아니라 하느님이심을 선포했다.

 

그후 자신을 이해하지 못하고 비웃기만 하는 사람들로 가득찬 도시를 떠났으나, 어디에서나 부닥친 것은 노상 강도를 포함하여 그를 이해하지 못하고 괴롭히는 사람들 뿐이었다.

 

그가 아시시로 다시 돌아온 것은 여러 해가 지난 후인 스물 일곱살 때 였다. 그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보였던 ’악령’ 에 사로잡힐까 두려워한 사람들은 아직도 그에게 비난과 돌을 던져 댔다.

 

그는 성당에서 "하느님 나라를 전하고 평화를 심어주며 가난한 삶과 비폭력의 삶을 위한 증인이 되어라" 라는 과제를 주면서 제자들을 파견하는 복음(루가 9,1-6; 10,1-20; 마태 10,1-20; 마르 6,7-13)을 듣고 결정적인 통찰과 생각을 하게 되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살아가야 할 삶은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었다. 이제부터 할 일은 아직도 결코 완성되지 않은 시도인 복음을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드러내는 것이었다. 죽음의 문 앞에서 그는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형제여러분, 우리 다시 시작합시다. 이제까지 우리가 해 온 것은 너무 보잘것없습니다.

 

그때까지 혼자서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던 그는 이제 엄청나게 불어나는 동료들이 모여드는 구심점이 되었다. 높은 교육을 받은 사람들, 사회적 영향력을 지닌 사람들, 귀족들이 그의 주변에 몰려들었고, 또한 무식한 사람들,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도 그의 매력에 취하여 몰려들었다.

 

이들은 세상 안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복음을 살아가고자 했고, 산상수훈에 어울리는 모습을 하지 않고 있던 당시 교회 안에서 이것을 실현하고자 했으며,윤리적 질서가 무너진 시민 공동체 안에서 이것을 실현하고자 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을 위한 노력들을 증명해 주는 문헌들은 아직도 아시시 시청 고문서 창고에 보관되어 있다.

 

이 문서들에는 당시 아시시 도시 안에 횡행하던 가족 안의 비극들, 가난하여 황폐화된 집들, 배고픔, 범죄, 한밤중의 강도질, 가정 파괴,속임수, 살인 등에 관한 웅변적인 증언들이 많이 들어있다.

 

불행하게도 전수되지 않고 사라져 버리고만 공동생활을 위한 ’첫 번째 회칙’ 은 프란치스코가 공관복음서에서 발췌하여 한데 엮은 몇몇의 복음 말씀들과(무엇보다도 파견말씀들) 꼭 필요한 생활 지침들로만 구성되어있다.

 

교황 인노첸시오 3세(Innozenz Ⅲ)는 초기 열두 명의 형제들이 겸손한 자세로 요청해 온던 청을 계속 거절해 오다가 1202년에 들어주었다.

 

이들은 교회법적으로나 신학적으로 전혀 검토되지 않은 ’단순하고 적은 말들로 구성된 이 규칙서’ 를 따라 살아갈 수 있도록 허락해 주기를 요청했던 것이다. 게다가 이들은 어디에서나 복음을 선포할수 있는 허락도 받았다.

 

남자들만이 아니라 여자들도 이 ’제2의 그리스도’ 가 지닌 매력이 엄청난 힘으로 자신들을 끌어들이는 것을 느꼈다. 귀족인 파바로네(Favarone)집안 출신인 클라라(Klara)는 17세가 된 1212년에 프란치스코로부터 ’클라라회(제2회)’ 를 위한 앞의 수도회칙과 비슷한 회칙을 받았다.

 

프란치스코와 그의 이상을 따르기 원했던 결혼한 평신도들도 1221년에 프란치스코로부터(수도회들의 총감독자이던 후골린[Hugolin] 추기경의 협조와 더불어) ’수도회칙(제3회)’ 을 받았다.

 

                 < 영적 삶의 샘/ 요셉 봐이스 마이어 외> 발췌

 

프란치스코 성인이 말씀하신것과 같이 다시 시작하고 싶습니다. 이제까지 제가 해 온 것은 너무 보잘것 없습니다. 이제부터 제가 살아가야 할 삶은 ’복음을 따라 살아가는 것’ 이고 싶습니다.

 

프란치스코 성인이 걸어가신 그 길을 따라 이제부터 할 일은 아직도 결코 완성되지 않은 시도인 복음을 저의 삶의 자리에서 제 자신의 삶으로 온전히 드러내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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