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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3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4-28 조회수1,436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4월 28일 (수) - 부활 제3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6,35-40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35)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 36)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 37) 그러나 아버지께서 내게 맡기시는 사람은 누구나 나에게 올 것이며 나에게 오는 사람은 내가 결코 외면하지 않을 것이다. 38) 나는 내 뜻을 이루려고 하늘에서 내려온 것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을 이루려고 왔다. 39) 나를 보내신 분의 뜻은 내게 맡기신 사람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리는 일이다. 40) 그렇다. 아들을 보고 믿는 사람은 누구나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는 것이 내 아버지의 뜻이다. 나는 마지막 날에 그들을 모두 살릴 것이다."◆

 

[복음산책] 스스로 기적이신 예수님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인 35절은 어제 복음의 마지막 구절을 그대로 반복한 것이다. 이 구절을 반복한 이유는 이 구절이 요한복음 6장에서 펼쳐지는 ’생명의 빵’ 신학의 키워드(keyword)이기 때문이다. 그 뿐 아니라 이 구절은 요한복음 전체의 핵심주제이며 예수님 자기계시의 코드(code)이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예수께 ’세상에 생명을 주는 하늘의 빵’을 청하자, 예수님은 당신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심을 선포하셨다. "내가 바로 생명의 빵이다. 나에게 오는 사람은 결코 배고프지 않고 나를 믿는 사람은 결코 목마르지 않을 것이다."(35절)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으로서 모든 생명의 허기짐과 타는 갈증을 해결할 수 있는 유일한 분이심을 선포하신 것이다. 결국 생명의 빵을 얻기 위해서는 그분에게 가야하며, 그분에게 가는 것은 그분을 믿는 것이 된다. 믿음을 가지는 데 굳이 기적을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면 예수님 스스로가 기적이다. 예수님 스스로가 ’생명의 빵’이라는 선포는 예수님 자신에 대한 결정적인 신적(神的) 계시(啓示)이며, 이 계시가 바로 기적인 것이다. 누구든지 이 기적을 ’본다’면 ’믿음’ 안에 안주하게 된다. 믿음에 이르지 못하는 ’봄’은 ’눈먼 것’과 같은 것이며, 나아가 ’죄’가 될 수도 있다. "너희가 차라리 눈먼 사람이라면 오히려 죄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지금 눈이 잘 보인다고 하니 너희의 죄는 그대로 남아 있다."(요한 9,41) 그러므로 기적 자체이신 예수님을 ’보고’, ’믿는 것’이 생명의 빵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향정립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람들의 불신을 지적하신다.(36절) 이 불신(不信)은 당장 이 자리(가파르나움)에서 사람들이 드러낸 불신이라기보다 유다인들의 총체적인 불신을 의미한다. 유다인들이 믿음의 조건으로 기적을 요구한다면, 이미 충분한 기적이 전제되었다는 것이 예수님의 생각이다. 요한복음에 따르면 지금까지 예수님이 하느님의 아들이심을 계시하신 기적(표징)은 여럿 있었다. 실제적 상황으로 보도된 기적사화는 가나 혼인잔치에서의 기적(2,1-11), 고관아들을 치유한 기적(4,46-54), 베짜타 못가에서 행하신 중풍병자의 치유기적(5,1-18), 그리고 6장의 빵의 기적과 물위를 걸으신 기적이다. 그 외에도 예수께서는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다.(2,23 / 단순설명 형식의 보도) 이렇게 열거한 기적사화의 보도들을 자세히 살펴보면 예수께서 행하신 각각의 기적을 보고 사람들이 예수께 대한 믿음을 가지게 됨을 알 수 있다.(6장 제외) 대단히 흥미로운 사실은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이나 말씀을 통하여 사람들이 ’믿게 되었다’ 라는 표현이 요한복음에서만 읽을 수 있는 유일한 표현이라는 것이다.

 

  요한복음에 기록된 ’믿게 되었다’ 라는 표현은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데 열거하자면 다음과 같다. "이렇게 예수께서는 첫 번째 기적을 갈릴래아 지방 가나에서 행하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를 믿게 되었다."(2,11) "제자들은 예수께서 죽었다가 부활하신 뒤에야 이 말씀을 생각하고 비로소 성서의 말씀과 예수의 말씀을 믿게 되었다."(2,22)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맞아 예루살렘에 머무르시는 동안 여러 가지 기적을 행하셨는데, 많은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2,23) "그 동네에 사는 많은 사마리아 사람들은 그 여자가 자기의 지난 일을 예수께서 다 알아 맞히셨다고 한 증언을 듣고 예수를 믿게 되었다."(4,39) "더 많은 사람들이 예수의 말씀을 듣고 믿게 되었다."(4,41) "이 말씀을 듣고 많은 사람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8,30) "많은 사람이 거기에서 예수를 믿게 되었다."(10,42) "마리아를 찾아 왔다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본 많은 유다인들이 예수를 믿게 되었다."(11,45)

 

  이에 비하여 공관복음서는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이나 가르침의 말씀 끝에 나타나는 사람들의 반응에서 ’믿게 되었다’는 기록은 찾아 볼 수 없다. 대부분의 경우 다음 사건보도로 옮겨가거나 사람들의 반응에 관한 기록이 있다면 그것은 "도대체 이분이 누구인가?"(마태 8,27), "하느님을 찬양하였다"(마태 9,8; 마태 15,31; 마르 2,12; 루가 6,26), "소문이 그 지방에 두루 퍼졌다"(마태 9,26; 마르 1,28; 루가 4,14), "하느님께서 자기 백성을 찾아와 주셨다"(루가 7,16)는 등의 표현이며, 때로는 놀라움, 두려움, 기뻐함, 따라 나섬 등의 표현으로 일관하고 있다.

 

  예수께서 "내가 이미 말하였거니와 너희는 나를 보고도 나를 믿지 않는다"(36절)고 하셨는데, 요한 6장의 앞서간 구절들을 살펴보면 예수께서 당신께 대한 사람들의 불신에 대하여 말씀하신 적은 없다. 물론 예수께서 안식일에 베짜타 못가에 있던 38년 짜리 중풍병자를 고쳐준 일 때문에 유다인들이 예수를 박해하기 시작하였다는 대목은 있다.(5,1-16) 그러나 그 때는 유다의 예루살렘이고 여기는 갈릴래아의 가파르나움이다. 그래서 여기서의 불신은 예수께 대한 유다인들의 총체적인 불신이라는 것이다. 사실 빵의 기적 직후에 사람들이 예수를 두고 "이분이야말로 세상에 오시기로 된 예언자이시다"(6,14)고 하였고, 억지로라도 예수를 왕으로 삼으려 했다면(6,15), 이 표현은 간접적인 믿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비록 사람들이 ’메시아 왕’으로서의 예수를 원하고 육적 양식으로서의 빵 맛을 보았기에 예수를 추종할 수도 있다. 동시에 사람들의 기대와 추종이 예수의 원의(願意)에 어긋날 수도 있다. 그렇다고 이들이 불신자로 매도될 수는 없는 일이다. 따라서 예수 주위의 군중은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로 대별된다.

 

  믿지 않는 사람들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 주신 사람들에 속하지 않는다. 이는 거꾸로 아들에게 맡겨진 사람은 누구나 (자동적으로) 예수께 올 것이며, 예수께 오는 사람 결코 외면 당하지 않고(37절), 예수께서 이들을 하나도 잃지 않고 마지막 날에 모두 살려서(39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신다(40절)는 것이다. 이것이 아버지의 뜻이고 이 뜻을 이루기 위해 예수께서 세상에 오셨다. 이 대목에서 유의할 점은 ’아들에게 맡겨지지 않은 사람’들은 자동적인 불신자(不信者)들로서 영원한 생명으로부터 철저하게 배제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 점은 거꾸로 예수님을 믿는 자들은 누구든지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주신 사람’ 대열에 들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비록 유다인들의 총체적인 불신을 지적하시지만, 앞서 요한복음의 ’믿게 되었다’라는 표현을 사용한 기록들에서 보았듯이, 매번 당신이 행하시는 기적과 말씀을 통하여 신자(信者)를 얻으셨다. 그러므로 ’믿는 행위’와 ’아들에게 맡겨짐’은 동시(同時)에 일어나는 사건으로 보아야 한다는 결론을 얻을 수 있다. 따라서 누구든지 예수를 하느님의 아들로 믿는 자는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맡겨주신 자들이며, 이들을 예수께서는 지켜주시고 ’생명의 빵’으로 길러주시어 영원한 생명에로 인도하여 주시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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