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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 제4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02 조회수1,253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2일 (일) - 부활 제4주일 (다해)

▣ 성소주일

 

  오늘 부활 제4주일은 41회를 맞는 성소(聖召)주일이다. 1964년 교황 바오로 6세께서는 심각한 사제부족으로 목자 없는 양떼가 너무 많아진 사실을 심려한 나머지,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니, 그 주인에게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달라고 하여라"(마태 9,37-38)라고 하신 그리스도의 말씀을 따라, 매년 부활 제4주일을 성소(聖召)의 날로 정하였다. 이 날은 세계의 온 교회가 한 마음으로 많은 젊은이들이 ’사람 낚는 어부’(마태 4,19)의 사제성소(司祭聖召)에 응답하도록 열심히 기도하고, 나아가 그리스도신자 모두가 각자 나름대로의 방법으로 수도(修道)성소, 결혼(結婚)성소, 평신도(平信徒)성소 등의 하느님의 부르심에 충실히 응답할 것을 촉구한다.

 

[오늘의 복음]  요한 10,27-30

<나는 내 양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27) "내 양들은 내 목소리를 알아듣는다. 나는 내 양들을 알고 그들은 나를 따라온다. 28) 나는 그들에게 영원한 생명을 준다. 그래서 그들은 영원히 죽지 않을 것이고 아무도 그들을 내 손에서 빼앗아가지 못할 것이다. 29) 아버지께서 내게 맡겨주신 것은 무엇보다도 소중하다. 아무도 그것을 아버지의 손에서 빼앗아갈 수 없다. 30)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

 

[복음산책]  성소주일을 위한 메시지

 

  요한복음이 제공하는 그리스도론은 다른 어떤 복음서의 그리스도론보다 단연 우월하고 그 내용도 충실하다. 그것은 요한복음 전체(1-20장)가 장고(長考)의 성찰(省察)과 명상(冥想)에 의한 결론이기 때문이다. 예수가 누구이며, 어디로부터 왔으며, 왜 예수가 그리스도인지를 밝히는 일이 복음서의 목적이다. 그렇다고 복음서가 자체의 성찰과 명상으로 그리스도론에 이른 것은 아니다. 모두가 역사적 예수의 끊임없는 자기계시(自己啓示)와 이 계시를 이해하도록 도와준 협조자이시며 진리이신 성령 하느님의 이끄심 덕분이다. 요한복음이 탁월한 그리스도론을 펼 수 있었던 이유 중에 하나는 "나는 ~이다"는 도식으로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진리를 잘 파악한 때문인 것이다. 사람이신 예수께서는 동시에 하느님이신 당신을 인간의 이성이 파악할 수 있는 영역 안으로 표현해 주셨다. 요한복음에 나오는 그런 표현을 예로 들자면, 바로 "나는 생명의 빵이다"(6,48), "나는 세상의 빛이다"(8,12), "나는 문이다"(10,9), "나는 착한 목자이다"(10,14),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10,30),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다"(11,25)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14,6),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다"(15,5) 등의 표현들이다. 이런 표현들은 예수의 정체성을 표현하는 것으로서 사실상 단순한 표현 이상의 것들이다. 이는 곧 예수님의 자기계시인 것이다.

 

  부활 제4주일이자 성소주일에 들려주는 오늘 복음에서도 "아버지와 나는 하나이다"(30절)는 예수님의 자기계시적 표현이 등장한다. 이는 예수께서 하느님과 함께 일하며(5,17), 하느님과 일치하고(5,30; 8,16), 하느님의 뜻과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6,38; 8,26; 10,18)는 내용을 총체적으로 함축하는 말씀이다. 예수는 곧 하느님이시며, 아들로서 아버지와의 철저한 일치의 원리 속에서 모든 것을 말씀하시고 행동하신다는 것이다. 요한복음 10장의 자기계시적 진리에 속하는 오늘 복음(10,27-30)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필히 그 첫 구절부터 읽어보아야 한다. 예수께서는 누구나 잘 알아들을 수 있는 ’목자와 양’의 비유를 통하여 자신을 착한 목자와 양이 드나드는 문으로 계시하셨다. 뿐만 아니라 문이신 예수를 통하여 양우리에 들어오는 모든 양들을 지키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놓으실 것을 약속하셨다.(1-18절) 이 때문에 유다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고, 이 논란은 예루살렘 성전 구내에서 벌어진 예수와 유다인들의 사이의 논쟁으로 이어진다. 유다인들은 조급한 마음으로 예수께 "당신은 얼마나 더 오래 우리의 마음을 조이게 할 작정입니까? 당신이 정말 그리스도라면 그렇다고 분명히 말해 주시오"(24절) 하면서 대답을 요구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미 있었다. 그러나 유다인들이 그 대답을 외면한 것이다. 그들이 예수님의 양우리에 속한 양들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양우리에 속하지 않은 양들은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지 못하는 것이다.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의 목소리를 알아듣고 그분을 따라가는 양들에게는 영원한 생명이 보장된다. 이 생명은 아버지 하느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 아들인 예수께 맡겨주신 것이기에 아무도 그것을 빼앗아 갈 수 없다. 예수께서는 이 생명을 무엇보다도 소중하게 여기신다. 그렇다. 사람에게 생명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따라서 한 사람이 다른 사람에게 봉사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큰 것은 생명에 봉사하는 일이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소중한 생명에 봉사하는 방법으로 자기 생명을 내어놓는 방법을 택하셨다. 이것이 오늘 성소주일의 메시지이다. 특별히 예수님의 양떼를 돌보는 직분을 가진 사제들에게 들려주는 메시지인 것이다. 구약에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왕이나 지도자를 목자(牧者)라고 불렀다. 그러나 예수께서 자기 양우리에 속한 양들을 위하여 스스로 목숨을 바치신 이래로 목자는 착한 목자이신 예수님처럼 사는 사람을 말한다. 양들을 위해 목숨까지는 아니라 하더라도 그들의 삶에 기꺼이 봉사하며, 그들의 생명을 위해 진정으로 기도하고 일하며, 나아가 진리와 일치를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 되어야 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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