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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4주간 수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05 조회수1,334 추천수8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5일 (수) - 부활 제4주간 수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2,44-50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44) 예수께서 큰소리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를 믿는 사람은 나뿐 아니라 나를 보내신 분까지 믿는 것이고 45) 나를 보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도 보는 것이다. 46) 나는 빛으로서 이 세상에 왔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를 믿는 사람은 어둠 속에서 살지 않을 것이다. 47) 어떤 사람이 내 말을 듣고 지키지 않는다 하더라도 나는 그를 단죄하지 않을 것이다. 나는 이 세상을 단죄하러 온 것이 아니라 구원하러 왔기 때문이다. 48) 그러나 나를 배척하고 내 말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을 단죄하는 것이 따로 있다. 내가 한 바로 그 말이 세상 끝날에 그를 단죄할 것이다. 49) 나는 내 마음대로 말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무엇을 어떻게 말하라고 친히 명령하시는 대로 말하였다. 50) 나는 그 명령이 영원한 생명을 준다는 것을 안다. 그래서 나는 무엇이나 아버지께서 나에게 일러주신 대로 말하는 것뿐이다."◆

 

[복음산책]  제1부 예수님 공생활의 결론

 

  오늘 복음의 요한복음 안에서의 위치를 잘 살펴보면 이는 예수께서 오직 제자들과 함께 하신 최후의 만찬과 세족례의 틀 안에서 행하신 장구(長久)한 고별사 바로 직전에 위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오늘 복음이 세상을 향한 마지막 공적인 말씀이라는 뜻이다. 우리는 요한복음 전체를 내용상의 특성에 따라 제1부(1-12장)와 제2부(13-21장)로 구분한다. 따라서 오늘 복음은 제1부에 담겨있는 세상을 향한 예수님 자기계시(2-12장)의 마지막을 장식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늘 복음은 제1부 예수님의 공생활을 마감하는 결론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성서학자들은 오늘 복음이 예수님의 직접적인 발설에 기초하기보다는 통상 요한복음사가의 독자적인 편집으로 간주한다.

 

  오늘 복음이 요한복음사가의 독자적인 편집으로 간주되면서 예수님 공생활의 결론이 될 수 있는 이유는 앞서간 구절들에 이미 밝혀져 있다. 요한 12장을 처음부터 살펴보자. 라자로를 죽음으로부터 소생시킨 기적 때문에 대사제들과 바리사이파사람들의 예수께 대한 대대적인 수배명령이 이미 내려진 가운데(11,57) 예수께서는 과월절을 엿새 앞두고 소생한 라자로가 살던 베다니아 동네 사람들이 베푸는 만찬에 참석하셨고, 여기서 마리아가 예수의 발에 향유를 부어 예수의 장례를 예고한다.(12,1-8) 그 다음 요한복음에서도 공관복음에서와 같이 공생활 중 마지막 과월절 축제를 맞아 예루살렘에 입성하시는 예수님을 큰 군중의 무리가 환영하였다는 사실을 보도하고 있다.(12,12-19) 예수께서는 그들의 열정적인 환영을 받으셨으나, 이제 곧 더 큰 영광이 당신을 위해 준비되어 있음을 암시하셨다. 바로 수난과 죽음의 예고이다. 이 죽음의 예고는 서로 상반되는 놀라운 대조적 원리(原理) 안에서 시사된다. 그것은 밀알 하나가 땅에 떨어져 죽어야 열매를 맺는 것과 같이 죽음을 통한 생명의 원리, 아들의 고난을 통하여 아버지의 영광이 드러나는 원리, 빛과 어둠이 공존할 수 없기 때문에 빛이 세상에 있는 동안 그 빛을 믿고 빛의 자녀가 되어야 하는 원리이다.(12,20-36a) 이 말씀을 마치신 예수께서 사람들의 눈을 피하여 일단 몸을 피하셨다(36b절)는 구절을 미루어 생각해 보면, 이것으로 복음사가가 예수님의 세상을 향한 자기계시적 공적 생활을 마무리짓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제2부가 시작되기 전까지의 보도(12,37-50)는 자연적으로 저자의 독자적 편집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이다. 여기서 저자는 첫째로(37-43절) 예수께서 행하신 그 동안의 표징들을 종합적으로 설명하고 이에 대한 유다인들의 총체적인 불신(不信)을 지적하고 있으며, 둘째로(44-50절) 예수의 자기계시적 정체성과 파견사명을 요약하고 불신자들에 대한 피할 수 없는 심판을 선언하고 있는 것이다.

 

  큰소리로(44절) 말씀하시는 예수님의 어조는 자기계시적이고 종말론적인 분위기를 구사하는 것으로서 말씀의 내용이 선언문의 형식을 띠고 있음을 암시한다. 오직 아들을 믿음으로써 아버지까지 볼 수 있다는 것, 이는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따로 있으면서 일치(一致)하여 그런 것이 아니라 둘이 철저하게 하나라는 원리에 있다는 것, 빛과 어둠이 함께 공존(共存)할 수 없다는 것, 불신하는 자체가 불신자 스스로를 심판하리라는 것, 아들이 아버지의 명(命)을 따르는 것이 세상에 생명을 주고자 하시는 아버지의 원(願)을 따르는 것이 복음사가가 보는 예수님의 공생활의 요약이다. 누구든지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가 보통 사람과는 다르다는 점만을 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 안에 계시면서 예수를 파견한 아버지를 보게 된다. 그것은 예수께서 아버지의 빛으로 세상에 오셨기 때문이다. 요한복음에서 빛은 곧 진리요 생명이요 기쁨이요 구원이다. 이러한 예수의 신적인 기원과 파견의 목적을 깨닫고 그분께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 곧 믿음인 것이다. 그래서 믿음은 인간의 완전한 자유의지적 결단이며 관계 속에 실존하는 인간 존재의 의미(意味)인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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