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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사랑에 사로잡히는 것은 신비이다
작성자박영희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11 조회수1,481 추천수10 반대(0) 신고

 

"사랑은 결코 스러지지 않습니다." (1고린 13, 8)

 

사랑은 영원함이 이 시간 안에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다른 은사는 임시적인 것이고, 죽음 안에서 종말을 맞이하지만 사랑은 결코 끝이 없다.

 

바오로 사도의 사랑에 대한 말들을 대하자마자 즉시 이것 또는 저것을 해야만하고, 결코 화를 내거나 시기해서는 안되며, 자신을 생각하지 말고 언제나 다른 사람의 이익을 생각해야만 하는 것으로 생각해서는 곤란하다.

 

우리가 바오로의 서술을 읽으면서 우리가 행하기를 요구하는 것들만 생각한다면 사랑은 우리에게 지나친 요구를 하는 것이 되고 말것이다.

 

바오로는 사랑이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는지 서술하고 있다. 사랑은 고유한 힘이다. 때때로 우리는 사랑으로 가득차 있음을 느낀다.

 

어떤 부인이 나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그녀는 어느 날 자신안에 부드러움과 사랑의 깊은 감정이 가득찬 것을 느꼈는데, 그러면서도 모두를 사랑해야만 한다는 윤리적인 압박감 같은 것은 느끼지 않았다.

 

그녀는 단순히 사랑으로 가득차 있었다. 사랑은 그녀에게 모든 사람들에게로, 초원으로 꽃들에게로, 동물들에게로, 그녀의 방으로, 그녀의 몸속으로 흘러나갔다.

 

우리가 사랑의 힘에 사로잡히는 것은 언제나 신비이다. 그렇다면 사랑은 인위적으로 만들어낼 수 없는 일종의 체험이다. 사랑은 하느님의 선물이다. 사랑은 성령의 은사라고 바오로가 염두에 두고 있는 것도 바로 이것이다.

 

바오로는 사랑에 대한 서술로 우리에게 지나친 것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어떤 것이 우리가 참으로 살아가는 것인지, 우리의 삶이 어떻게 새로운 맛을 낼 수 있는지, 그것이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맛으로 충만할 수 있으며 경이를 가져 올 수 있는지에 대해 하나의 길을 알려 주려는 것이다.

 

우리는 어째서 바로 지금 사랑으로 충만해 있으며, 어떤 때는 사랑에 대해 몇 주간이나 지속적으로 말하는 데도 아무것도 느낄 수 없는지 잘 알지 못한다.

 

어떤 사람의 마음이 사랑으로 가득차게 된다면, 그것은 언제나 은총이다. 우리가 우리 안에서 사랑을 느끼기 위해 할 수 있는것을 이 책에 서술하려고 나는 여러모로 노력했다. 하지만 인간적인 노력은 사랑을 불러일으킬 수는 없다.

 

바오로와 그 이전에 에로스에 관한 신화를 서술했던 그리스인들은 결국 하느님이 사람 안에 사랑을 불어 넣는 것으로 생각했다. 사랑은 하느님의 신성의 표현이다. 사랑은 신적인 존재이다. 하느님이 사랑이시다. 그리고 이와 반대도 마찬가지로 유효하다.

 

 "사랑 안에 머무는 사람은 하느님 안에 머물러 있고 하느님도 그 사람안에 머물러 계십니다." (1요한 4, 16)

 

그러나 하느님의 선물인 사랑을 즐기기만 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가 않다. 우리는 이 사랑이 사람들에게로, 그리고 세상으로 흘러가도록 해야만 한다.

 

우리는 또 사랑에게 새로운 표현방법을 빌려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사랑은 죽어버리고 만다. 우리 자신이 사랑의 느낌으로 질식당하고 만다. 사랑은 흘러가야만 생생함을 유지할 수 있다.

 

                               <사랑의 집/안셀름 그륀>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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