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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5주간 목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13 조회수1,314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13일 (목) - 부활 제5주간 목요일

 

▣ 파티마의 복되신 동정 마리아 기념

 

  제1차 세계대전이 절정에 달했던 1917년 5월 13일부터 10월 13일까지 6차례에 걸쳐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 파티마에서 성모 마리아는 10살의 순박한 목동 루치아와 그녀의 사촌 동생들인 7살의 히야친타와 9살의 프란치스코에게 발현하였다. 발현 때마다 성모 마리아의 모습은 약간의 차이를 보였지만 흰 옷에 흰 망토를 걸치고 묵주를 든 양손을 가슴에 모으고 맨발로 구름을 밟고 선 모습이었다. 성모님은 자신을 "로사리오의 여왕"이라 칭하고 세계평화를 위해 매일 묵주기도를 바칠 것, 죄인들의 회개를 위해 희생할 것, 그리고 성모신심을 공경할 것을 요청하였다. 특히 소련(현 러시아)을 당신 성심께 봉헌하고 매월 첫 토요일에 영성체를 할 것을 요청하면서 끊임없는 기도와 희생과 보속을 통해서만 세계평화와 소련의 회개 및 교회의 안정과 화목이 이루어질 것이라 예언하였다.

 

[오늘의 복음]  요한 15,9-11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도록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나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1)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복음산책]  사랑실천과 계명준수는 동시사건

 

  포도나무의 가지가 나무에 붙어있지 않고서 포도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렇게 누구나 쉽게 알아들을 수 있는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예수께서는 당신과 제자들의 관계를 정립하시고, 제자들이 열매를 맺을 수 있도록 예수께 끝까지 머물러 있으라고 당부하셨다.(15,1-8) 오늘 복음에서도 전체의 흐름을 꿰뚫고 있는 모티브는 열매를 맺기 위한 포도나무와 가지의 뗄 수 없는 관계이다. 포도나무인 예수께 가지인 제자들이 머문다는 것은 곧 예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조건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물라고 하시는 것은 아니다. 스승인 예수께서 먼저 제자들을 사랑하셨고, 그 사랑은 아들을 사랑하신 아버지에게서 배운 것이었다. 따라서 스승의 제자들에 대한 사랑은 아버지의 아들에 대한 사랑이 그 기초가 된다.(9절)

 

  이제 예수께서는 당신의 사랑 안에 머무는 방법을 구체적으로 가르쳐 주신다. 그것은 계명을 지키는 것이다. 이것 또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무조건 요구하는 것이 아니다. 당신이 먼저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을 모델로 제시하신다.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10절) 예수께서는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는 사실을 대단히 기뻐하신다. 제자들이 스승을 따라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문다면 마찬가지로 기쁨이 보장될 것이며(11절), 이 기쁨은 아버지께서 아들을 통하여 주시는 것이다.

 

  계명을 지킴으로써 사랑 안에 머문다는 것은 사실상 동시에 일어나는 사건이다. 예수께서는 이미 제자들의 발을 씻겨주시고 난 뒤 새계명을 선포하셨다. "나는 너희에게 새계명을 주겠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13,34) 이렇게 계명과 사랑은 서로 묶여 있다. 구약성서의 사람들은 하느님의 계명과 사랑이 서로 별개의 것이며, 사랑이 계명에 종속되어 계명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신약성서 후기에 사는 우리에게도 구약의 율법은 있고, 이 율법으로부터 물려받은 십계명도 여전히 효력을 발생한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사랑을 계명에서 솎아내어 계명 위에 세우셨다. 모든 율법과 계명 중에 어느 계명이 가장 큰 계명인지를 묻는 율법학자의 질문에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이신 너희 하느님을 사랑하라(신명 6,4), 그리고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레위19,18), 이 두 계명이 모든 율법과 예언서의 골자이다."(마태 22,37-40) 이렇게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사랑의 이중계명)이 곧 계명의 전부이다.

 

  이제 계명을 지킨다는 것은 곧 사랑하는 것이다. 따라서 사랑하는 사람은 계명의 전부를 지키는 것과 같다는 결론이다. 그런데 사랑이 추상적이라는 데 문제가 있다. 사랑의 구체적인 모델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13,34) 안에 들어 있다. 여기서의 사랑은 낙관주의(樂觀主義)자들이 생각하는 안일하고 달콤한 로맨스(romance)에 등장하는 낭만이 아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모델은 곧 예수께서 아버지 앞에 "당신 자신을 낮추셔서 죽기까지, 아니, 십자가에 달려서 죽기까지 순종하심으로써"(필립 2,8) 세상에 내어놓은 사랑이다. 그렇다고 예수께서 제자들의 목숨까지 요구하면서 사랑하라는 것은 아니다. 우선 "예수님이 사랑하신 것처럼" 사랑하라는 것이다. 사랑의 교과서는 예수님이시다. 그러나 그 책 안에 들어 있는 사랑을 구체적으로 배워 실천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숙제이다. 숙제를 하면서 늘 지켜야 할 최소한의 규칙이 있다. 그것은 바로 "너희는 남에게서 바라는 대로 남에게 해 주어라"(마태 7,12)는 황금률이 아니겠는가? 결국 사랑하는 동시에 계명준수가 이루어진다. 물론 사랑한다는 것이 늘 추상적이기 때문에 구체적으로 사랑을 실천했을 때 계명준수가 이루어지는 것이다. 만약 사랑의 실천이 잘 되었는지, 그래서 계명준수가 잘 이루어졌는지 알아보고 싶다면 자신의 마음을 들여다보아야 한다. 그리고 그 마음속에 기쁨이 동(動)하고 있어야 한다. 이 기쁨은 바로 예수께서 나누어주시는 기쁨이다.(11절)◆[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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