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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성 마티아 사도)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14 조회수1,829 추천수9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14일 (금) - 성 마티아 사도 축일

 

[오늘의 복음]  요한 15,9-17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9)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처럼 나도 너희를 사랑해 왔다. 그러니 너희는 언제나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어라. 10) 내가 내 아버지의 계명을 지켜 그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너희도 내 계명을 지키면 내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11) 내가 이 말을 한 것은 내 기쁨을 같이 나누어 너희 마음에 기쁨이 넘치게 하려는 것이다. 12)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13)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14)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15)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17)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복음산책]  가리옷 사람 유다의 자리를 채운 마티아

 

  부활하신 예수께서 승천하신 모습을 지켜본 11 제자들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예수의 다른 형제들과 여러 여자들과 함께 마음을 모아 기도에 전념하였다. 그 무렵 베드로가 예수님을 잡아간 이들의 앞잡이가 된 가리옷 유다에 관하여 성령께서 다윗의 입을 빌어 예언하신 말씀을 들려준다. 베드로는 시편을 인용하여 "그의 집을 폐허로 만드시고, 아무도 거기에 드는 이 없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고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그의 자리를 차지하게 하여 주십시오" 하고 말한다. 시편 원문에는 "그들이 사는 부락을 돌밭으로 만드시고 천막에는 아무도 없게 하소서"(시편 69,25), 그리고 "이제 그만 그의 명을 끊어버리고 그의 직책일랑 남이 맡게 하자"(시편 109,8)라고 되어 있다. 사도들은 요한의 세례부터 예수님의 승천까지 줄곧 제자단과 함께 있었던 사람 중에서 바르사빠 또는 유스도라고 불리는 요셉과 마티아를 놓고 제비뽑기를 통하여 마티아를 뽑아 사도직분을 맡기고 예수부활의 증인 되게 하였다.(사도 1,12-26/제1독서) 따라서 마티아는 베들레헴 출신으로 일흔 두 제자단(루가 10,1)에 속하였을 가능성이 크다. 마티아 사도에 대한 기록은 어느 것도 정확하지 않으나 유다지방을 두루 선교하다가 의회에 고발되어 돌에 맞은 뒤 도끼에 목이 잘려 순교했다는 기록도 있고, 그리스와 에티오피아에서 선교하다 순교했다는 기록도 있다.

 

  오늘 주님의 사도단에 새로운 멤버가 되어 주님의 부활을 증언한 마티아 사도의 축일을 지내면서 예수님과 제자의 관계를 자세히 살펴봄으로써 우리의 "제자 됨"을 다시금 생각해 볼 필요를 느끼게 된다. 오늘 복음(요한 15,9-17)이 바로 그 관계의 정체성을 잘 대변해 주고 있다. 사랑이란 끈으로 예수님과 제자들의 일치를 도모하는 오늘 복음은 앞서간 참 포도나무의 비유(1-8절)를 통하여 일치의 기원이 하느님 아버지 안에 있음을 보게 된다. 스승이신 예수님과 제자들의 관계는 바로 하느님과 예수님, 즉 아버지와 아들의 사랑을 통한 일치를 그 원형으로 한다는 말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당신과 어떤 관계에 서 있는 지를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말씀을 통하여 놀라운 방법으로 쉽게 차근차근 가르쳐 주시는 것이다.

 

  예수께서 포도나무와 그 가지의 비유를 통하여 하신 말씀을 다시 한번 요약해 본다면, 예수님은 참 포도나무요 아버지는 농부이시며(1절), 제자들은 그 가지이며(5절), 포도나무의 가지인 제자들의 본분은 나무에 잘 머물러 있는 것이고, 잘 머물러 있을 때 "무슨 소원이든 구하는 대로 다 얻을 것"이며(7절), 그렇게 하여 많은 열매를 맺을 때 "하느님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을 것이다"(8절)는 것이다. 이렇게 요약된 내용을 오늘 복음에 도입시키면 ’예수와 제자의 관계’ 및 ’제자의 정체성’을 조명(照明)해 볼 수 있다. ① 우선 1절, 5절, 9절을 함께 생각한다: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포도나무인 예수를 가꾸고 사랑하신 것처럼 포도나무인 예수도 그 가지인 제자들을 사랑하였다. 그러므로 가지인 제자들은 나무인 예수의 사랑 안에 머무는 것이 제자로서의 본분을 다하는 것이다. ② 다음은 4절, 7절, 12절을 연관지어 생각한다: 포도나무에 붙어 있지 않는 가지는 어떤 열매도 맺을 수 없듯이, 제자들이 예수를 떠나지 않고 또 예수의 말을 잘 간직한다면 무엇이든 원하는 것은 다 이룰 수 있는 많은 열매를 맺을 것인데, 이렇게 열매를 맺을 수 있는 조건은 "예수께서 제자들을 사랑한 것처럼 제자들도 서로 사랑해야 한다"(9절)는 것이다. ③ 마지막으로 8절, 16절, 17절을 함께 생각한다: 제자들이 자신의 본분을 다함으로써 맺게 되는 많은 열매를 통하여 예수의 아버지는 영광을 받게 된다. 먼저 아들이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었고, 제자들이 드러내는 영광은 아들의 영광에 포함된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친히 제자들을 선택하여, 이들을 벗으로 삼아 파견하기 때문이다. 파견 중에 행하는 모든 행위의 원리는 사랑이다. 이 사랑은 1차 고별사(13-14장)에서 이미 새계명으로 선포되었고, 2차 고별사(15-17장)에서 재차 강조되어 선포된다.(12절, 17절) 여기서 강조되는 사랑의 새계명은 <아버지→아들→제자>의 범주를 넘어 <제자→세상>의 범위로 확충됨을 의미한다. 아버지의 영광을 드러내는 일에서는 이 범주를 역순으로 <세상→제자→아들→아버지>와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예수께서 내리시는 사랑의 새계명은 스승이 제자들을 사랑한 모범적 사랑에 근거한다.(12절) 사랑에도 등급(等級)이 있다. 사랑은 추상적인 것이어서 "사랑한다"는 말만으로는 가장 작은 사랑을 실천하는 것이다. 그래서 사랑은 구체적인 옷을 입고 드러나야 한다. 예수께서는 가장 큰 사랑으로 "벗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바치는 것"을 제시하신다.(13절) 그렇다고 사랑이 벗을 위한 목숨을 늘 요구하는 것은 아니다. 사랑은 자유로이 이루어지며 가장 큰 사랑은 "친구를 위해 목숨을 바침"으로 드러나는 것이다. 이것도 예수께서 이 고별의 밤을 지낸 다음 날 실제로 보여주실 모범적 사랑에 근거한다. 예수께서는 아들이 아버지와 공유하는 지식을 제자들에게 알려주었다는 이유로 제자들을 ’종’이 아닌 ’벗’으로 부르기로 하신다.(15절) 물론 예수님과 제자들의 ’친구관계’는 예수께서 아버지의 계명에 충실한 것처럼 제자들도 예수님의 계명에 충실해야 한다는 조건으로 성립된다.(14절) 이는 포도나무의 가지가 스스로 붙어있을 나무를 마음대로 선택할 수 없는 원리와 같다. 당연히 나무가 가지를 선택하는 것이며 가지는 철저하게 나무에 종속된다. 즉 나무와 가지는 ’주인-종’의 관계에 있다. 그러나 가지가 사랑의 계명을 통하여 영원히 섞지 않는 열매를 맺는다면 이 관계는 ’친구-친구’의 관계로 전환된다. 이것이야말로 인간이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하느님 앞에 ’예수의 이름을 통하여’ 구할 수 있는 최고의 값진 것이 아니겠는가?(16절) 종이 할 일을 다했다고 주인이 영광을 받지는 않는다. 종은 주인에게 복종하여 그저 해야 할 일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우리를 택하여 벗으로 삼아주셨다. 친구가 좋은 일을 하면 다른 친구의 어깨도 함께 우쭐거려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 아닌가. 이것이 바로 예수와 제자간의 우정(友情)인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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