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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하느님의 벗
작성자이한기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14 조회수1,370 추천수4 반대(0) 신고

 

 

평화!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마티아 사도 축일입니다.

마티아 본명을 가진 모든 분들께 축하드리며 마티아 사도를

본받아 끝까지 신앙생활에 충성을 다하시길 기도합니다.

비가 오고 바람이 불 때는 이것이 오월인가 하다가도 태양의 강렬한

빛을 받으면 확실히 오월이구나 싶은 도무지 알 수 없는 날씨입니다.

 

요한 복음 15,9-17 입니다.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나의 계명이다. 벗을 위하여 제 목숨을 바치는 것보다

더 큰 사랑은 없다. 내가 명하는 것을 지키면 너희는 나의 벗이 된다.

 

이제 나는 너희를 종이라고 부르지 않고 벗이라고 부르겠다.

종은 주인이 하는 일을 모른다. 그러나 나는 너희에게 내 아버지에게서

들은 것을 모두 다 알려 주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라 내가

너희를 택하여 내세운 것이다. 그러니 너희는 세상에 나가 언제까지나

썩지 않을 열매를 맺어라. 그러면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내 이름으로

구하는 것을 다 들어주실 것이다.

 

서로 사랑하여라. 이것이 너희에게 주는 나의 계명이다."

 

 

 

오늘은 어제의 복음의 뒷부분과 맞물려있는 곳은 지나서

묵상하지만 하느님의 사랑에 대하여 연속하여 묵상하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느님의 우정을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하느님과의 우정이란 하느님과 의리가 있는 관계라고 하면 어떻게

감히 하면서 노여워하실 분도 있으리라 생각됩니다만, 실제로

성서 안에서 하느님의 친구로 불려진 사례가 있지요.

뿐만 아니라 성서 안에서 보여 지는 하느님과 사람과의 친밀함을

표현하는 중의 하나가 “하느님의 친구”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느님의 벗으로 불려졌습니다.(이사야 41,8) 하느님께서

아브라함과 대화 하실 때는 마치 사람들 사이에서 서로 친구 간에 대하듯이

그렇게 아브라함을 대했습니다. (출애급33,11) 스승이며 주님이신

예수님도 당신 제자들을 종으로 부르시지 않고 친구로 부르셨습니다.

 

그럼 하느님의 벗이란 무슨 뜻입니까? 하느님과의 우정은 실제로 의무와

복종을 뛰어 넘는 것이 필연적입니다. 즉 둘 사이에는 의무보다는 사랑을

통하여 관계가 성립이 된다는 것입니다. 우정과 형제애 대한 예수님의

가르침은 잠언 17,7의 말씀을 반향 합니다.

 

“사랑이 한결같은 것이 친구다. 어려울 때 도우려고 태어난 것이 동기다.”

 

예수님의 제자들과의 인간관계를 맺는 방식의 특징은 개인적인

사랑을 통해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우리가 인격적인 만남을

통하여 우정을 이루는 것과 같지요.

 

예수님의 관계 맺기는 끝까지 사랑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은 조건이 없었고 그 사람을 향하여 오직 좋은 것만을

주는 사랑이었습니다. 물론 희생적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이

가진 최상의 것을 모두 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주셨습니다.

 

참된 사랑은 따지지 않습니다.

 

제가 사는 이곳에 뭉치라는 개가 살고 있는데 수컷입니다.

보통 숫캐는 암캐를 찾아 집을 나서는데 우리 뭉치는 그렇지가 않습니다.

집을 나온 지 오래된 개로 보여 지는 형편없는 암캐가 2마리가

뭉치를 쫓아 와서는 아예 터를 잡고 살기 시작했습니다.

 

갈수록 몸이 커가는 한 녀석이 새끼를 가졌구나 싶었는데

오히려 야윈 녀석이 엊그제 한 밤중에 귀여운 강아지를 3마리 낳았답니다.

도대체 경험이 없는 저는 놀라운 관찰을 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 중에는 이와 같은 경험을 하신 분도 있겠습니다만,

제게는 참으로 신기로운 일입니다.

 

모두가 잠든 한 밤중에 친구 개가 새끼를 낳느라 애를 쓰고 있을 때

친구를 대신하여 크게 짖어서 새끼의 탄생을 알렸고 놀러나가지도 않고

계속 개집 주위를 맴돌면서 친구와 새끼들을 지키고 있습니다.

전에는 맛난 것이 있으면 제가 먼저 먹으려고 난리더니,

요즘은 양보하고 꼭 친구가 먹은 다음에 먹곤 합니다.

 

개들끼리의 우정이라! 둘은 피도 섞이지 않았고 그저 우연히

만나서 한 지붕 밑에 살게 되었는데 서로 어찌나 위하는지,,,

개들의 우정을 보는 것이 참으로 감동적이었습니다.

개 안에서 공동체성을 봅니다. 함께 산다는 것은 바로 이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그저 이웃의 필요에 마음을 나누는 것

그래서 둘 이나 셋이 모여 기도하며 살아가는 그곳에 살아계신

예수님께서 함께 하시겠다고 하시지 않았습니까? 무척 쉬운 것이지만

사는 것은 쉽지가 않네요.

우선 기도하고 그리고 나서 살아야겠습니다.

 

 

"Teach us, good Lord,

to serve you as you deserve,

to give and not to count the cost,

to fight and not to heed the wounds,

to toil and not to seek for rest,

to labor and not to ask for any reward,

save that of knowing that we do your will;

through Jesus Christ our Lord."  (Prayer of Ignatius Loyola)

 

출처 : 성심수녀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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