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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 제6주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16 조회수1,317 추천수4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16일 (일) - 부활 제6주일 (다해)

 

[오늘의 복음]  요한 14,23-29

<성령은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 주실 것이다.>

 

  23) 예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 24) 그러나 나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내 말을 지키지 않는다. 내가 너희에게 들려주는 것은 내 말이 아니라 나를 보내신 아버지의 말씀이다. 25) 나는 너희와 함께 있는 동안에 여러 가지 이야기를 들려주었거니와 26) 이제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주실 성령 곧 그 협조자는 모든 것을 너희에게 가르쳐주실 뿐만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한 말을 모두 되새기게 하여주실 것이다. 27) 나는 너희에게 평화를 주고 간다. 내 평화를 너희에게 주는 것이다. 내가 주는 평화는 세상이 주는 평화와는 다르다. 걱정하거나 두려워하지 마라. 28) 내가 떠나갔다가 너희에게로 다시 오겠다는 말을 너희가 듣지 않았느냐? 아버지께서는 나보다 훌륭하신 분이니 만일 너희가 나를 사랑한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는 것을 기뻐했을 것이다. 29) 내가 지금 이 일을 미리 알려주는 것은 그 일이 일어날 때 너희로 하여금 믿게 하려는 것이다."◆

 

[복음산책]  내 안에 하느님께서 사신다는 것은...

 

  우리가 요한복음에 기록된 예수님의 1차 고별사를 13-14장으로 한정할 때, 고별사 전체를 주도하는 가르침은 ①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새계명 선포, ② 아들의 자기계시적 정체성과 아버지와의 일치성 공개, ③ 성령의 약속과 오시는 성령의 정체성 공개로 요약된다. 이 세 가지 주제는 순서대로 다루어지거나 독자적인 단락 안에서 다루어지지 않고, 고별사 전체를 오가는 흐름을 주도한다. 2차 고별사(15-17장)에서는 이 주제들이 더욱 심화된다. 오늘 복음은 1차 고별사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된다. 오늘 복음으로 봉독되지는 않지만 14장의 마지막 두 구절을 들어보자. "너희와 이야기를 나눌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다. 이 세상의 권력자가 가까이 오고 있다. 그가 나를 어떻게 할 수는 없지만 나는 아버지를 사랑하고 아버지께서 분부하신 대로 실천한다는 것을 세상에 알려야 하겠다. 자, 일어나 가자."(14,30-31) 어떤가? 이만하면 예수님의 고별사가 얼마나 다급한 분위기 속에 있는가를 알 수 있다. 이는 고별사가 좀 길긴 하지만 예수님 공생활의 요약이며, 유언(遺言)과도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고별사가 위에서 언급한 주제들만 다루고 있는 것은 아니다. 이런 주요 주제들이 다루어지는 가운데 덤으로 주어지는 것들도 많다. 그 중에 하나를 언급한다면 오늘 복음의 첫 구절이 그렇다. "나를 사랑하는 사람은 내 말을 잘 지킬 것이다. 그러면 나의 아버지께서도 그를 사랑하시겠고 아버지와 나는 그를 찾아가 그와 함께 살 것이다."(23절) 제자들에게 사랑의 새계명을 내려주신 예수께서는 이 계명을 지키는 것을 당신께 대한 사랑으로 간주하신다. 이 말씀은 이미 앞서간 21절에서도 언급되었다. 새계명을 지킴으로써 아들 예수를 사랑하는 사람이 아버지의 사랑을 받게될 것은 당연한 이치다. 중요한 것은 아버지와 아들이 사랑하고 사랑 받는 그 사람에게 와서 함께 산다는 것이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일인가? 하느님께서 사람이 되어 세상에 오셨다. 그분이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사람으로서 자신의 파견임무를 완성하시고 이제 오셨던 곳으로 가려하신다. 물론 쓰라린 고통과 죽음이 남았다. 그분의 파견임무는 인간과 세상을 죄로부터 구원하여 그 본래의 품위를 돌려주시려는 것이었다. 그러나 영영 가시는 것은 아니다. 그분은 다시 돌아오실 것이며, 그 때까지 아버지와 함께 사람들 곁에 사시려는 것이다. 물론 영적(靈的)으로 말이다.

 

  오늘날 물적(物的)인 것을 더 좋아하는 인간들에게 하느님께서 영적(靈的)으로 함께 사신다함이 무엇을 의미하는 것인가? 하느님께서 내 안에 사신다. 아우구스티노 성인은 "하느님께서는 내가 생각하는 나의 가장 깊은 곳보다 훨씬 더 깊은 곳에 계신다"고 말한 적이 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요, 우리 신앙의 핵심이다. 여기서 부활은 시작된다. 우리의 생명이 죽음의 두려움으로 가득 차 있는 바로 그곳에서 부활은 시작되는 것이다. 이런 놀라운 체험에 큰 믿음이 필요하거나 대단한 수행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그저 하느님과의 인격적 만남에 자신을 내어 맡기는 것이다. 사랑함으로써 일어나는 그런 일에 순응하는 것이다. 사랑은 사랑한다고 해서 그것으로 끝나는 일이 아니다. 사랑은 지속적인 모험이며 늘 좋은 놀라움을 준비하고 있는 어떤 것이다. 사랑은 때때로 문제들을 해결하기보다는 그냥 둔다. 사랑의 호흡은 길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랑은 여정(旅程)이다. 하느님과 함께 하는 여정이다. 우리가 하느님을 다 아는 것은 아니다. 아니, 다 알 필요는 없다. 하느님께서 사람과 함께, 사람 안에 영적으로 함께 사신다함이 무엇을 의미하는가에 대한 물음은 왜 하느님께서 사람 안에 살려 하시는가에 대한 물음과 같다. 그것은 사람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며, 그 사람의 변화를 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분께서 아들 예수를 통하여 다시 가져온 인간 본래의 품위를 따라 사람들이 변화되기를 원하시기 때문인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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