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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6주간 금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21 조회수1,831 추천수15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21일 (금) - 부활 제6주간 금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6,20-23a

<너희의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0)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는 울며 슬퍼하겠지만 세상은 기뻐할 것이다. 너희는 근심에 잠길지라도 그 근심은 기쁨으로 바뀔 것이다. 21) 여자가 해산할 즈음에는 걱정이 태산 같다. 진통을 겪어야 할 때가 왔기 때문이다. 그러나 아이를 낳으면 사람 하나가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그 진통을 잊어버리게 된다. 22) 이와 같이 지금은 너희도 근심에 싸여 있지만 내가 다시 너희와 만나게 될 때에는 너희의 마음은 기쁨에 넘칠 것이며 그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가지 못할 것이다. 23) 그 날이 오면 너희가 나에게 물을 것이 하나도 없을 것이다."◆

 

[복음산책]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기쁨

 

  세상의 기쁨은 예수님을 죽임으로써, 예수님을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볼 수 없는 존재로 제거했다는 데 있다. 세상의 기쁨은 곧 제자들의 슬픔과 근심이요 참혹함과 비통함이다. 예수님을 수난과 죽음으로 몰아 부친 세상은 승리에 취해 기뻐하겠지만 제자들은 눈물을 흘리고 고통과 좌절을 맛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세기의 대 역전극이 벌어질 것이다. 좀 더 기다려야 하겠지만 제자들의 슬픔과 근심은 머지 않아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뀔 것이다.(20절) 제자들이 기뻐하게 되면, 세상은 슬퍼하게 될 것이 뻔하지만 예수님은 그렇게 말씀하시지 않는다. 그것은 성령의 몫이다. 협조자이시며 진리이신 성령께서 오시면 "예수님을 믿지 않은 것이 죄라고 지적하실 것"(9절)이고 "이 세상의 권력자가 이미 심판을 받았다는 사실로써 정말 심판을 받을 자가 누구인지를 보여 주실 것"(11절)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맞닥뜨리게 될 상황을 마치 해산을 앞둔 산모의 걱정과 고통에 비유하신다.(21절) 하느님 백성이 당하는 고통을 해산하는 여인에 비유하는 것은 예언문학에도 자주 나타나는 일이다.(호세 13,13; 이사 27,17-18; 예레 6,24 참조) 아이가 태어나면 사람 하나가 세상에 태어났다는 기쁨에 산모의 모든 고통은 사라지듯이 제자들의 고통과 슬픔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바뀔 것이다. 예수께서는 이 기쁨의 때와 그 이유를 말씀하신다. 바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다시 보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22절) 부활의 기쁨은 산모의 기쁨에 비유되었다. 아이가 태어나면 산모의 근심과 걱정은 사라지듯이 예수님의 부활도 마찬가지로 제자들을 기쁨에 넘치게 할 것인즉, 부활은 새로운 생명에로의 탄생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의 부활과 성령의 강림으로 말미암아 죽음으로부터 생명이 살아나고, 고통으로부터 기쁨이 태어난다. 이 생명과 기쁨은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다. 그 때가 오면 더 이상 의문도 질문도 없을 것이다.(23절) 그러나 오직 믿음의 눈으로 예수부활과 성령강림사건을 보는 자만이 생명과 기쁨을 누리게 될 것이다. 슬퍼하거나 울고 있는 자는 부활의 좋은 증인이 될 수 없다. 부활의 진정한 기쁨을 누리는 자만이 참다운 부활의 증인이 된다. 반대로 예수를 죽이고 기뻐했던 세상은 예수를 믿지 않은 잘못으로 말미암아 부활하신 예수를 볼 수도 없을뿐더러 그 기쁨을 알 수도 없을 것이다.

 

  결국 세상의 기쁨과 상대적인 제자들의 슬픔은 죽음과 부활 사이의 잠시 동안이겠지만 대 역전극이 벌어진 후에 맞이할 세상의 슬픔과 제자들의 기쁨은 영원할 것이다. 여기서 잠시 기쁨에 대하여 살펴보자. 기쁨이란 인간의 기본 정서 중의 하나로서 슬픔과 대비되는 감정(感情)이다. 중요한 것은 감정이란 어떠한 대상에 대하여 가지거나, 어떤 분위기에 따라 일어나는 마음의 상태나 현상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기쁨의 감정은 노여움, 슬픔, 두려움, 쾌감, 불쾌감 등과 같은 마음의 표현이다. 마음의 표현은 외적으로 드러날 수도 있고 내적으로 머물러 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외적으로 표현되거나 내적으로 머물게 되는 기쁨의 다음 단계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기쁨은 마음의 현상이나 상태이기 때문에 필시 다음 단계의 동작을 유발시킨다. 즉, 기쁨을 맛보거나 누리는 주체(主體)는 일반적으로 자랑 또는 교만, 아니면 감사의 행동을 보이게 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대학진학을 원하는 고등학생에게 응시한 대학의 경쟁이 심할수록 합격했을 때의 기쁨이 커지는 것이다. 이 때 고등학생의 기쁨은 다음 단계로 자랑, 아니면 감사를 유발시킨다. 자신의 힘으로 예수와 하느님을 죽인 세상의 기쁨도 다음 단계로 자랑과 교만과 자만에 가득 차 우쭐댈 것이다. 이럴 때의 기쁨은 오히려 육체가 성취한 쾌락에 가깝다. 그러나 죽음으로부터 부활하신 주님을 뵙게 된 제자들의 기쁨은 다음 단계로 감사의 정동(情動)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이 때의 기쁨은 정신적인 쾌감이다. 우리 자신도 늘 그렇다. 따라서 기쁨이 있을 때 자만과 교만에 빠지지 말고 겸손하고 감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럴 때 기쁨은 분명히 두 배로 커질 것이다. 감사할 줄 아는 사람이 누리는 주님 안에서의 기쁨을 누가 빼앗아 갈 수 있겠는가.◆[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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