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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부활6주간 토요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22 조회수1,277 추천수6 반대(0) 신고

◎ 2004년 5월 22일 (토) - 부활 제6주간 토요일

 

[오늘의 복음]  요한 16,23b-28

<너희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23) "정말 잘 들어 두어라. 너희가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하는 것이면 아버지께서 무엇이든지 주실 것이다. 24) 지금까지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무 것도 구해 본 적이 없다. 구하여라. 받을 것이다. 너희는 기쁨에 넘칠 것이다. 25) 내가 지금까지는 이 모든 것을 비유로 들려주었지만 이제 아버지에 관하여 비유를 쓰지 않고 명백히 일러 줄 때가 올 것이다. 26) 그 날이 오면 너희는 내 이름으로 아버지께 구할 것이다. 따라서 내가 너희를 위하여 따로 아버지께 구하지 않겠다는 말이다. 27) 너희는 이미 나를 사랑하고 또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왔다는 것을 믿고 있다. 그래서 아버지께서는 친히 너희를 사랑하시는 것이다. 28) 나는 아버지께로부터 나와서 세상에 왔다가 이제 세상을 떠나 다시 아버지께 돌아간다."◆

 

[복음산책]   예수의 이름으로 - 100% 보장

 

  예수의 죽음이 초래할 세상의 기쁨과 제자들의 슬픔을 완전히 바꾸어 놓을 대 역전극이 예고된 가운데, 예수의 부활이 가져올 제자들의 기쁨은 성령의 강림으로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영원한 기쁨이 될 것이라는 사실이 시사되었다. 성령 하느님은 부활하신 예수님의 영속성을 보장해 주실 분이다. 이는 제자들이 세상 끝날까지 그리스도의 복음을 선포하는 사명에 성령께서 협조자로서 그리고 진리로서 함께 해 주심으로써 가능하게 된다. 오늘 복음은 예수께서 ’청함’과 ’얻음’에 대하여 하신 말씀으로 시작된다. 청함과 얻음에 대한 말씀은 고별사 중에 이미 한 번 있었다. 처음은 예수께서 포도나무와 가지의 비유를 마무리하시던 즈음에 당신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은 무엇이든 다 들어주신다고 하신 말씀이다.(15,16) 정말 청하는 것이 무엇이 되든 예수의 이름을 통하면 다 받아들여지는 것인가? 딱 잘라 말하면 꼭 그렇지는 않다. 청하는 대로 들어주시는 데는 나름대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바로 "세상에 나가 영원히 썩지 않을 열매를 맺는 것", 즉 "서로 사랑하라"는 새계명을 지키는 것이다.(15,16-17)

 

  예수의 이름으로 아버지께 청하는 것이 무엇이든 다 수용되는 조건은 곧 구체적인 ’사랑’과 ’믿음’에 근거하는 것이며, 더 구체적으로는 ’아버지로부터 오신 예수님께서 다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것’에 근거한다. 이는 곧 예수님을 통하여 세상과 하느님 아버지 사이에 직항로(直航路)가 개설된 셈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님을 통하여 어떤 길이 마련된 것이 아니라, 예수님 스스로가 바로 그 직항로의 길이신 것이다. 물론 예수께서 가시적으로는 세상을 떠나신다. 그러나 세상의 배경에 비가시적으로 머물러 계신다. 하느님 아버지와 성령 하느님, 그리고 아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세상은 더욱 더 밝아졌고 따뜻하게 되었다. 예수의 말씀이 더 이상 질문을 필요로 하지 않을 만큼 명확해졌으며, 협조자이시고 진리이신 성령의 약속도 두터워졌기 때문이다. 이제 하느님의 충만한 기쁨이 ’예수님의 이름으로’ 제자들이 구하는 모든 것 안에 경험될 수 있는 그 무엇으로 보장되었다. ’예수님의 이름’은 세상의 그 무엇보다도 높은 이름이 되었다. 이 ’이름’을 통하여 하느님은 자신을 세상에 계시하셨으며, 세상을 위하여 자신을 내어놓으셨다. 따라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구하는 모든 것은 하느님에 의해 주어질 것이며, 이는 하느님께는 기쁨과 영광이 되며, 우리에게는 하느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확신이 된다. 그 안에서 우리의 기쁨도 충만히 성취될 것이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한다는 것은 하느님께서 아들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 인간성(人間性)을 수용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며, 하느님께서 우리 인간 안에 자신의 거처(居處)를 마련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는 곧 다름 아닌 성령께서 우리 안에 자신의 궁전을 마련하셨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 모든 것은 하느님의 예수님 안에 이루신 육화(肉化)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하느님은 지속적으로 우리 안에서 자신의 얼굴을 가지려 하신다. 그것은 바로 우리의 생명이 그분 자체가 되시는 것과 같은 것이다. 이제 인간의 모든 정신과 영혼과 육체의 원동력은 하느님 성령이시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모든 것이 바로 이러한 신비스러운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며, 나아가 성령으로 새로 태어남을 의미하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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