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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복음산책(마리아 방문축일)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5-31 조회수1,188 추천수11 반대(0) 신고

◎ 2003년 5월 31일 (월) -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방문 축일

 

[오늘의 복음]  루가 1,39-56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39) 며칠 뒤에 마리아는 길을 떠나 걸음을 서둘러 유다 산골에 있는 한 동네를 찾아가서 40) 즈가리야의 집에 들어가 엘리사벳에게 문안을 드렸다. 41)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을 받았을 때에 그의 뱃속에 든 아이가 뛰놀았다. 엘리사벳은 성령을 가득히 받아 42) 큰 소리로 외쳤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43)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44)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45)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 46) 이 말을 듣고 마리아는 이렇게 노래를 불렀다. "내 영혼이 주님을 찬양하며, 47) 내 구세주 하느님을 생각하는 기쁨에 이 마음 설렙니다. 48) 주께서 여종의 비천한 신세를 돌보셨습니다. 이제부터는 온 백성이 나를 복되다 하리니, 49) 전능하신 분께서 나에게 큰 일을 해 주신 덕분입니다. 주님은 거룩하신 분, 50) 주님을 두려워하는 이들에게는 대대로 자비를 베푸십니다. 51) 주님은 전능하신 팔을 펼치시어 마음이 교만한 자들을 흩으셨습니다. 52) 권세 있는 자들을 그 자리에서 내치시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높이셨으며, 53) 배고픈 사람은 좋은 것으로 배불리시고, 부유한 사람은 빈손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54) 주님은 약속하신 자비를 기억하시어, 당신의 종 이스라엘을 도우셨습니다. 55) 우리 조상들에게 약속하신 대로, 그 자비를 아브라함과 그 후손에게 영원토록 베푸실 것입니다." 56) 마리아는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 가량 함께 지내고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복음산책]  두 여인의 노래에 담겨진 세상과 하느님의 만남

 

  가장 아름다운 계절 5월,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인 오늘은 복되신 동정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을 기념하는 축일이다. 이 축일은 주님을 잉태하신 마리아께서 세례자 요한을 잉태 중에 있는 친척 엘리사벳을 찾아가신 루가복음의 보도(1,39-56)에 근거한다.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만남은 그들의 태중에 있는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상봉(相逢)이기도 하다. 성모 마리아의 문안으로 세례자 요한이 엄마의 뱃속에서 성화(聖化)된다. 이 상봉을 보도하는 성서의 이야기는 많은 신자들에게 큰 감동을 주게 되었고 이 사건을 전례 안에서 기념하려는 움직임이 있었다. 우선 5세기경 비잔틴 동방교회가 "성모님의 거룩한 옷"(블라쉐르느)을 안치한 것을 기념하는 미사에서 성모님이 엘리사벳을 방문한 복음을 봉독하면서 시작되었다. 그 후 동방교회는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6월 24일)의 팔일축제 다음 날인 7월 2일을 축일로 지냈다. 서방교회에서는 1263년 보나벤투라(1221-1274) 성인이 성모님의 중재로 시대적 어려움을 극복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프란치스코 수도회에 이 축일을 도입하면서 파급되었다. 100년 후 우르바노 6세(1378-1389)와 보니파시오 9세(1389-1404) 교황에 의해 축일이 공인되었고, 바젤공의회(1431-1447)는 축일 고유미사 기도문을 제정하여 더욱 장려하였고, 비오 5세(1566-1572) 교황을 통하여 가톨릭교회의 공식 전례축일로 자리를 잡게 된다. 17세기에 와서는 이 축일이 "성모의 엘리사벳 방문 축일"이라는 정식 명칭을 얻게 된다. 1969년 개정된 로마 전례력은 이 축일을 시기적으로 합당한 "주님 탄생예고 대축일"(3월25일)과 "세례자 요한 탄생 대축일"(6월 24일) 사이에, 즉 성모성월의 마지막 날인 5월 31일로 옮겨 놓았다.

 

  두 여인의 만남을 보도하는 오늘 복음은 두 곡(曲)의 아름다운 노래를 담고 있다. 하나는 마리아의 문안을 기뻐한 엘리사벳이 성령을 가득히 받고 마리아를 칭송하는 노래와 이에 응답하는 마리아의 노래이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의 문안을 받고 다음과 같이 칭송한다: "모든 여자들 가운데 가장 복되시며 태중의 아드님 또한 복되십니다. 주님의 어머니께서 나를 찾아 주시다니 어찌 된 일입니까? 문안의 말씀이 내 귀를 울렸을 때에 내 태중의 아기도 기뻐하며 뛰놀았습니다. 주님께서 약속하신 말씀이 꼭 이루어지리라 믿으셨으니 정녕 복되십니다."(42-45절) 이 노래는 예수의 탄생을 예고하던 가브리엘 천사의 인사말(1,28)과 함께 후에 가톨릭교회의 주요 기도문 중 "성모송"의 첫 부분으로 자리를 잡게 된다: "은총이 가득하신 마리아님, 기뻐하소서. 주님께서 함께 계시니 여인 중에 복되시며, 태중의 아들 예수 또한 복되시나이다." 엘리사벳의 마리아에 대한 칭송은 구약성서에도 같은 유형으로 발견된다.(신명 28,4; 판관 5,24; 유딧 13,18 참조)

 

  "마리아의 노래"(막니피캇, Magnificat)에 대한 학설은 분분하다. 신약성서 학계의 통설은 "마리아의 노래"가 실제로 마리아의 노래라기보다는 루가복음이 집필되던 시기에 유행하던 노래라는 것이며, 내용상 많은 구절이 구약성서를 본 딴 것이라고 한다. 막니피캇의 전체적인 구조는 한나가 사무엘을 야훼께 바친 후 불렀던 감사찬양 노래와 흡사하다. 그때에 한나가 이렇게 기도를 올렸다: "내 마음은 야훼님 생각으로 울렁거립니다. 하느님의 은덕으로 나는 얼굴을 들게 되었습니다. 이렇듯이 내 가슴에 승리의 기쁨을 안겨 주시니 원수들 앞에서 자랑스럽기만 합니다. 야훼님처럼 거룩하신 분은 없으십니다. 당신밖에는 없으십니다. 우리 하느님 같은 바위는 없으십니다. 잘난 체 지껄이는 자들아, 너무 우쭐대지 말아라. 거만한 소리를 입에 담지 말아라. 야훼는 사람이 하는 일을 다 아시는 하느님, 저울질하시는 하느님이시다. 힘있는 용사의 활은 꺾이고 비틀거리던 군인은 허리를 묶고 일어나게 되리라. 배불렀던 자는 떡 한 조각 얻기 위하여 품을 팔고 굶주리던 사람은 다시 굶주리지 않게 되리라. 아이 못 낳던 여자는 일곱 남매를 낳고 아들 많던 어미는 그 기가 꺾이리라. 야훼께서는 사람의 생사를 쥐고 계시어 지하에 떨어뜨리기도 하시며 끌어올리기도 하신다. 야훼께서는 가난하게도 하시고 가멸지게도 하시며 쓰러뜨리기도 하시고 일으키기도 하신다. 땅바닥에 쓰러진 천민을 일으켜 세우시며 잿더미에 뒹구는 빈민을 들어 높이셔서 귀인들과 한 자리에 앉혀 주시고 영광스러운 자리를 차지하게 하신다. 땅의 밑동은 야훼의 것, 그 위에 세상을 지으셨으니 당신을 따르면 그 걸음걸음을 지켜 주시지만 불의 하게 살면 앞이 캄캄해져서 말문이 막히리라. 사람이 제 힘으로는 승리하지 못하는 법, 야훼께 맞서는 자는 깨어지리라. 지존하신 이께서 하늘에서 천둥소리로 우렁차게 호령하신다. 야훼는 땅 끝까지 심판하신 분, 당신께서 세우신 왕에게 힘을 주시며 기름 부어 세우신 임금의 이름을 떨치게 하신다."(1사무 2,1-10)

 

  이와 같이 "마리아의 노래"는 구약성서에 기록된 "한나의 노래"를 그 기본구조로 하고 있다. 나아가 "마리아의 노래"는 이스라엘이 처한 시대적 위기상황을 안타까워하면서도 하느님의 이스라엘에 대한 신실함과 그분의 종말론적 통치에 의한 도덕적(51절), 사회적(52절), 경제적(53절) 혁명을 신앙(信仰)하고, 이스라엘의 남은 "가난한 이들"(아나윔)의 구원을 희망(希望)하는 노래라고 볼 수 있겠다. "마리아의 노래"는 내용상 전편(46-50절)과 후편(51-55절)으로 구분되는데, 전편은 개인(個人) 차원에서의 감사찬양이며, 후편은 집단(集團) 차원에서의 감사찬양이다. 루가복음사가는 이스라엘 백성의 마지막 신앙과 희망을 "엘리사벳-세례자 요한"을 통하여 "마리아-예수 그리스도"에 의해 성취될 것을 내다보며 마리아의 입에 담아 노래로 불렀던 것이다. 마리아는 석 달 가량 엘리사벳의 집에 머물면서(56절) 이미 만삭이 된 엘리사벳에게 봉사하였을 것이다. 만삭이 된 여인이 필요로 하는 것이 어디 한두 가지이겠는가. 그것도 한 번의 출산 경험이 없는 엘리사벳에게 있어서는 더욱 그랬을 것이다. 그렇다고 동정녀인 마리아가 무슨 경험이 많아서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말은 아니다. 그래서 엘리사벳과 마리아의 상봉은 인류의 역사 안에 더 큰 의미를 가진다. 마리아의 엘리사벳에 대한 봉사는 그녀의 뱃속에 있는 요한에 대한 봉사이기도 하다. 이는 예수를 잉태하심으로써 하느님의 어머니가 된 마리아와 인간이 되실 하느님 스스로의 인간에 대한 봉사이기도 하다. 얼마 있지 않아 요한은 하느님이신 예수께 빚진 은혜를 되 갚을 것이다. 결국 찬미의 노래로 엮어진 두 여인의 만남은 세상과 하느님의 만남, 죽음과 생명의 만남, 파멸과 구원의 만남, 절망과 희망의 만남을 의미하며, 이 만남은 세상의 구원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것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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