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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06 조회수1,992 추천수3 반대(0) 신고

◎ 2004년 6월 6일 (일) - 삼위일체 대축일

 

[오늘의 복음]  요한 16,12-15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어라.>

12) "아직도 나는 할 말이 많지만 지금은 너희가 그 말을 알아들을 수 없을 것이다. 13) 그러나 진리의 성령이 오시면 너희를 이끌어 진리를 온전히 깨닫게 하여주실 것이다. 그분은 자기 생각대로 말씀하시지 않고 들은 대로 일러주실 것이며 앞으로 다가올 일들도 알려주실 것이다. 14) 또 그분은 나에게서 들은 것을 너희에게 전하여 나를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 1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나의 것이다. 그래서 성령께서 내게 들은 것을 너희에게 알려주시리라고 내가 말했던 것이다."◆

 

[복음산책]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우리는 지난 일요일 성령강림대축일을 기념함으로써 50일간의 부활시기를 마감하였다. 이로써 교회는 한 해의 전례주년 속에서 가장 중요한 하느님의 구원업적을 기념하고 경축하였다. 교회는 대림시기, 성탄시기, 사순시기, 부활시기와 성령 강림절을 통해서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과 성자의 강생과 부활을 통한 실제적 구원성취, 그리고 성령강림을 통한 구원은총의 배분과 그 효과를 실제 눈으로 보듯 체험하였다. 이렇게 성부와 성자와 성령, 각 위격(位格)의 고유한 업적을 시기적으로 기념한 교회는 오늘 인류구원업적의 총체적 주체이신 하나이신 하느님과, 그러나 동시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고유한 각 위격의 일치를 고백한다. 즉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이다. 성령강림으로 말미암아 진리의 성령을 선물로 받은 교회가 부활시기를 마치고 연중시기를 속계(續係)하는 첫 주일에 삼위일체의 하느님을 고백하는 것은 참으로 합리적이고 당연한 귀결이라 할 수 있다.

삼위일체 대축일(다해)에 봉독되는 오늘 복음은 예수님의 고별사 제2부(15-17장)에 해당하는 대목이다. 사실상 16장 전체는 아버지와 아들로부터 파견되는 성령 하느님에 대한 계시말씀이라 해도 무방할 것이다. 여기서 오시는 성령 하느님은 무엇보다 "진리의 성령"과 "협조자 성령"으로 계시된다. 사람은 아는 대로 행동한다. 다시 말하면 가지고 있는 지식을 기반으로 사고하고 생각하는 대로 행동하기 마련이다. 그렇다고 모든 생각이 다 행동을 유발시키는 것은 아니다. 때때로 의지와 용기가 모자라 행동하지 못할 수도 있다. 지식은 학습을 통하여 이루어지고 행동에는 의지가 따라야 한다. 여기서 지식학습 부분을 "진리의 성령"께서, 행동의지 부분을 "협조자 성령"께서 맡아 주신다는 것이다. 오늘 복음은 성령 하느님에 대한 학습적(學習的) 차원을 의미한다. 예수께서는 당신의 말씀과 업적에 대한 제자들의 이해와 학습능력을 감안하여(12절) 또 다시 "진리이신 성령"을 계시하시는 것이다. 이는 고별사에서 이미 두 번씩이나 언급된 바 있다.(14,17; 15,26)  그렇다고 "진리의 성령"께서 자기 고유의 무엇을 제자들에게 교수(敎授)하시는 것은 아니다.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을 진리에로 이끌어 깨닫게 해 주는 역할을 담당하신다. 여기서 진리는 무엇인가? 진리는 바로 길이요, 생명이신 예수님 당신이시다.(14,6) 그러므로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을 당신께로 이끌어 주실 자신의 성령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님은 하느님의 말씀인즉, 바로 하느님의 진리이시다. 그러나 제자들은 아직까지 진리를 온전히 파악하는데 여러모로 부족하다. 온전한 진리 파악이란 예수님의 인격 안에 나타난 하느님의 계시를 온전히 깨닫는 것이다. '진리의 성령'은 계시된 내용에 대한 올바른 해석자이시며, 이는 과거, 현재, 미래를 포함한 시간과 역사의 전부를 주관하신다.(13절)

진리의 성령은 제자들에 대한 학습을 통하여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실 것이다.(14절) 제자들이 진리의 성령을 통하여 열심히 학습한다고 해서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데 일조(一助)하는 것은 아니다. 예수님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은 원칙적으로 아버지의 영역에 속한다. 그러나 성령께서 계시된 진리(성자)를 위해 지속적으로 활동하심으로써 아버지께서 아들을 영광스럽게 하는 일에 기여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성령의 활동이 지니는 의미와 가치이다. 하느님 아버지께서는 세상에 대한 자기계시를 위해 아들에게 모든 것을 맡겨주셨으므로(요한 3,35), "아버지께서 가지고 계신 것은 모두 다 아들의 것"(15절)이며, "아들의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다.(요한 17,10) 이로써 우리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느님의 관계와 삼위일체 하느님의 내적 생명의 구조를 조금이나마 깨닫게 된다. 물론 우리의 깨달음은 세례와 견진성사를 통하여 우리를 자신의 성전(聖殿)으로 삼으신 "진리의 성령" 덕분이다.

신학(神學)이 논하는 하느님 삼위일체(三位一體, Trinitas, de Deo uno et trino)의 신비는 겉으로 보기에 한 분이신 하느님은 그 안에 세 개의 위격을 지니고 계시다는 것이다. 철학적 신론(神論)의 성과는 존재하는 모든 것 중 최고의 절대자가 필히 존재한다는 것이며, 그 존재가 바로 하느님(神)으로서 유일신(唯一神), 즉 유일(唯一)한 존재라는 것이다. 신학적 신론은 철학적 신론의 성과인 유일신을 바탕으로 삼위격(三位格)의 하느님을 피력하였다. 하나이신 하느님에 대한 삼위격적 고찰(考察)은 순전히 예수님 덕분이다. 육화(肉化)된 말씀이신 예수께서 하느님 내적 생명의 원리를 알려주신 것이다. 예수님의 삼위격적 하느님에 대한 계시(啓示)는 예수께서 자신의 죽음으로 값을 치러 알려주신 것이다.(이 대목을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요한복음을 잘 묵상하여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계시된 삼위일체를 "구원경륜적(救援經綸的) 삼위일체"라고 한다.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는 하느님 아버지의 구원계획(구약성서)과 실행, 사람이 되신 성자의 죽음과 부활을 통한 구원성취, 성령을 통한 구원은총의 배분과 효과라는 전체적인 구원경륜(oeconomia salutis)의 역사를 통하여 계시된 셈이다. 구원경륜의 총체적인 역사를 통하여 드러난 삼위일체의 하느님은 세상이 창조되기 이전부터 영원히 계셨던 바로 그 하느님과 같은 분이시다. 이 대목에서 신학적 신론은 "내재적(內在的) 삼위일체"를 언급한다. 내재적 삼위일체는 하느님의 원초적이고 본성적인 내적 삶의 구조이다. 따라서 구원경륜적 삼위일체는 곧 내재적 삼위일체이며, 내재적 삼위일체는 구원경륜적 삼위일체와 같다.(칼 라너) 자신의 죽음을 통하여 우리에게 삼위일체 하느님의 진리를 가르쳐 주신 예수님께 늘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면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하느님께 나의 신앙을 고백하며,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 안에서 살아가길 원한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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