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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산상설교의 첫계단 : 진복선언
작성자박상대 쪽지 캡슐 작성일2004-06-07 조회수1,475 추천수7 반대(0) 신고

◎ 2004년 6월 7일 (월) - 연중 제10주간 월요일

 

[오늘의 복음]  마태 5,1-12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1)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시자 제자들이 곁으로 다가왔다. 2) 예수께서는 비로소 입을 열어 이렇게 가르치셨다. 3)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4) 슬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위로를 받을 것이다. 5) 온유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땅을 차지할 것이다. 6)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만족할 것이다. 7) 자비를 베푸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자비를 입을 것이다. 8)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을 뵙게 될 것이다. 9)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은 행복하다. 그들은 하느님의 아들이 될 것이다. 10)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은 행복하다. 하늘 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11) 나 때문에 모욕을 당하고 박해를 받으며 터무니없는 말로 갖은 비난을 다 받게 되면 너희는 행복하다. 12) 기뻐하고 즐거워하여라. 너희가 받을 큰 상이 하늘에 마련되어 있다. 옛 예언자들도 너희에 앞서 같은 박해를 받았다."◆

 

[복음산책]  산상설교의 첫 계단 : 진복선언

 

  오늘부터 연중 10주간이 시작된다. 연중시기는 예수님의 공생활을 따라잡는 시기라는 말을 했다. 예수님의 공생활을 따라 잡는다는 말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행적을 통해 공생활의 철학과 정신을 배워 익힌다는 것이다. 지난 연중 9주간까지 해서 마르코복음(1,14-12,44)을 들었고, 오늘 연중 제10주간 월요일부터 연중 제21주간 토요일까지는 마태오복음(5,1-15,30)을, 그 다음부터 연중34주간까지 토요일까지는 루가복음(4,16-21,36)을 듣게된다. 오늘 복음은 마태오복음이 전하고 있는 예수님의 가르침 중 백미(白眉)라고 말할 수 있는 산상설교(5-7장)의 첫 장으로서 "진복선언(眞福宣言)"이다. 예수님의 일상은 말씀과 행적, 가르침과 기적으로 이어진다. 산상설교에서 예수님은 새로운 모세로 등장하여 "더 나은 정의"를 선포하신다. 산상설교와 비슷한 평지설교가 루가복음에도 보도되는데 이는 산상설교에 비해 그 분량이 매우 적고 간단하다.(루가 6,20-49) 루가의 평지설교는 행복선언(20-23절), 불행선언(24,26), 원수사랑과 보복금지(27-36절), 형제에 대한 판단금지(37-42절), 본성을 따르는 행위(43-45절), 그리고 말과 행동의 일치(46-49절)의 순서로 엮어져 있다.

 

  마태오복음이 산상설교의 첫머리에 "9개의 행복선언"을 보도하고 있는 반면, 루가는 4개의 행복선언과 4개의 불행선언을 들려준다. 원전(原典)이 되는 예수어록에는 4개의 행복선언이 전해지는데, 마태오는 5개를 추가하여 9개로 편집하였고, 루가는 4개를 충실히 옮겨 쓰면서 4개의 불행선언을 덧붙인 것으로 추정된다. 행복(불행)선언의 짜임새를 보면, 우선 대상(對象)이 언급되고, 다음에 행복(불행)선언이 따르고, 마지막으로 그 이유가 될만한 보상(補償)이 언급되는 구조를 이룬다. 예를 들어 "가난한 사람들아!"는 대상을, "너희는 행복하다"는 선언을, "하느님 나라가 너희의 것이다"는 그에 합당한 보상을 말한다.(대상->선언->보상) 이 구조를 따라 선언문을 살펴보자. 마태오복음의 9개 행복선언: ① 마음이 가난한 사람 -> 행복 -> 하늘나라, ② 슬퍼하는 사람 -> 행복 -> 위로, ③ 온유한 사람 -> 행복 -> 땅, ④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마른 사람 -> 행복 -> 만족, ⑤ 자비를 베푸는 사람 -> 행복 -> 자비, ⑥ 마음이 깨끗한 사람 -> 행복 -> 하느님 대면, ⑦ 평화를 위하여 일하는 사람 -> 행복 -> 하느님의 아들, ⑧ 옳은 일을 하다가 박해를 받는 사람 -> 행복 -> 하늘나라, ⑨ 예수님 때문에 모욕, 박해, 비난을 받는 사람 - 행복 - 하늘의 큰 상. 루가복음의 4개 행복선언: ① 가난한 사람 -> 행복 -> 하늘나라, ② 굶주린 사람 -> 행복 -> 배부름, ③ 우는 사람 -> 행복 -> 웃음, ④ 예수님 때문에 미움, 추방, 모욕, 누명 받는 사람 -> 행복 -> 하늘의 큰 상. 루가복음의 4개 불행선언: ① 부유한 사람 -> 불행 -> 위로 끝, ② 배부른 사람 -> 불행 -> 굶주림, ③ 웃는 사람 -> 불행 -> 슬픔과 울음, ④ 칭찬 받는 사람 -> 불행 -> 거짓 예언자와 동급.

 

  예수께서 행복하다고 선언하는 대상은 바로 사람이다. 그런데 행복한 사람이 되기 위해 그 사람이 지녀야 할 덕목과 받아들여야 하는 처지(환경)가 있다. 그것은 바로 마음의 가난함, 슬퍼함, 온유함, 옳은 일에 주리고 목말라함, 자비를 베풂, 마음의 깨끗함, 평화를 위한 노력, 옳은 일 때문에 당하는 박해, 예수님 때문에 받는 모욕과 박해와 비난이다. 그러나 이 중에는 그 자체로 긍정적이지 않고 부정적인 것도 있다. 부정적인 대상이나 그런 상태가 행복일 수는 없다. 이런 대상이나 이런 상태에 처한 사람이 복된 자로 선포되는 이유는 이런 경우에 예수님의 복음이 더 잘 수용될 수 있기 때문이다. 나아가 이곳에 하느님의 강함이 더 잘 드러나기 때문이다. 사람들 속에서 드러나는 약함은 곧 하느님의 강함이다.

 

  "부른 배로는 기도할 수 없다"는 브라질 카마라(1909-1999) 대주교의 말이 참으로 옳다는 생각이 든다. "가난한 이들의 형제"라 불리는 카마라 대주교는 브라질 동북부의 거대 빈민지역인 레시페-올린다 대교구에서 평생을 찢어지게 가난한 이들과 함께 살면서 군부독재에 맞서 가난한 이들의 고통에 대한 관심을 끊임없이 촉구했다. 나나 우리 가족만이 굶지 않고, 웃으며 편히 사는 것이 진정한 행복의 삶인가? 아니다. 찢어지게 가난해도 웃음과 울음을 함께 나누며 더불어 사는 삶 속에 예수님도 함께 계심을 잊지 말아야 하겠다. 사회·경제적 구조 속에서 가난과 배고픔, 슬픔과 억압받음 자체가 참 행복은 아니다. 이는 단지 참 행복을 위한 조건으로 제시되고 있으며, 이러한 조건에서 자신을 하느님께 전적으로 의지할 때 참 행복은 시작된다. 하느님께 자신을 내어 맡긴다는 것은 무위(無爲)가 아니라 정의(正義)와 평화(平和)를 위해 일하고 노력하는 것이다. 따라서 진복선언은 단순히 그런 처지에 있는 사람들이 행복해지기를 바라는 예수님의 바램이나 원의(願意)라기보다 도래한 하느님나라에 들기 위한 더 나은 정의로서 모든 사람을 향한 요구인 동시에 행복의 약속인 셈이다.◆[부산가톨릭대학교 교목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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